길 옆에 원추리가 분홍빛 큰 꽃을 피웠다.
산에 있는 원추리는 대개 노란 꽃이 피지만 더러 큼직한 분홍빛 꽃이 피는 것도 있다.
훤칠하게 크고 시원스럽게 생긴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의 시름을 잊을 만하다.
원추리는 ‘근심풀이풀’, 곧 근심을 잊게 하는 풀로 널리 알려진 약초이다.
한자로는 훤초(萱草), 망우초(忘憂草), 금침채(金針菜), 의남초(宜男草), 황화채(黃花菜) 등으로 쓰며 어린 싹을 살짝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큼직한 꽃을 차로 우려내어 마시면 마음이 황홀해져서 근심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근심 많은 사람들이여 이곳에 와서 원추리꽃을 보고 온갖 시름을 잊을지어다.
원추리를 우리말로는 근심풀이풀 또는 넘나물이라고 하며 이른 봄에 올라오는 어린 싹을 나물로 무쳐 먹는데, 약간 달면서도 부드러우며 담백한 맛이 난다.
활짝 꽃을 따서 차로 달여서 마시면 은은한 꽃향기가 일품이다.
이른 봄철에 더러 재래시장에 할머니들이 원추리 나물을 채취해서 노상에서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원추리나물은 봄나물을 대표하는 산나물의 하나이지만 요즈음에는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 것 같다.
옛날,
한 형제가 한꺼번에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형제는 슬픔에 잠겨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형은 슬픔을 잊기 위해 부모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었다.
그러나 동생은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고 무덤가에 난초를 심었다.
그 뒤로 세월이 흘러 형은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일을 했지만 동생은 슬픔이 더욱 깊어져서 병이 되었다.
그런 어느날 동생의 꿈에 부모님이 나타나 말했다.
“사람은 슬픔을 잊을 줄도 알아야 하느니라.
너도 우리 무덤에 원추리를 심고 우리를 잊어 다오. ”
이 말씀에 따라 동생도 부모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고 슬픔을 잊었다고 한다.
이구화라는 사람이 쓴 「연수서(延壽書)」라는 책을 보면 “원추리의 어린 싹을 나물로 먹으면 홀연히 술에 취한 것 같이 마음이 황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풀을 망우초라고 한다”고 적혀 있다.
원추리는 백합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키는 80~90cm쯤 자란다.
뿌리부분에서 가늘고 긴 잎이 돋아나는데, 잎은 끝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져서 끝은 뾰족하다.
여름철에 잎 사이에서 긴 꽃줄기가 올라와서 백합을 닮은 노랗고 큼직한 꽃이 핀다.
꽃줄기 끝에서 날마다 예닐곱 송이의 꽃이 새로 피고, 이 꽃에는 꿀이 많아서 벌들이 많이 모여든다.
높은 산의 풀밭에는 더러 수많은 개체가 군락을 지어 자라기도 한다.
더러 붉은색 꽃이 피는 것도 있고 보랏빛이 섞인 붉은 색의 꽃이 피는 것 등이 있으며, 꽃이 유달리 큰 것도 있으며 꽃이 겹으로 피는 것도 있다.
가짓수가 꽤 많아서 왕원추리, 큰원추리, 애기원추리, 각시원추리, 골잎원추리 등이 있으나 어느 것이나 다 같이 쓸 수 있다.
원추리는 약초라기보다는 요즈음에는 원예식물로 많이 가꾸는 편이다.
원추리 뿌리에는 맥문동을 닮은 길쭉하고 둥근 괴경이 여러 개씩 달리는데, 먹을 수 있어서 옛날에는 중요한 구황식물의 하나였다.
원추리 뿌리를 멧돼지가 즐겨 파서 먹는다.
녹말을 비롯하여 단백질 같은 영양이 많고 맛이 괜찮아서 선조들은 허약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자양강장제로 흔히 먹었다. 녹말을 추출하여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과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원추리 꽃술을 따 버리고 쌈을 싸서 먹기도 하고 밥을 지을 때 얹어서 먹기도 한다.
원추리 꽃을 밥을 지을 때 넣으면 밥이 노랗게 물이 들고 꽃향기가 배어서 특이한 향기가 나는 밥이 된다.
중국에서는 활짝 핀 꽃을 따서 펄펄 끓는 물에 데쳐서 말린 다음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구례군에서는 원추리 꽃에서 향료를 추출하여 화장품이나 향수를 만들기도 한다.
원추리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없애며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초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흉격(胸膈)이라고 하여 사악한 기운이 영혼에 침입하여 생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데 매우 좋은 약이라고 하였다.
원추리나물은 변비를 없애는데에도 훌륭한 효과가 있다.
장기능이 나빠 변상태가 고르지 않거나 여행을 할 때나 긴장했을 때 생기는 긴장성 변비에 원추리나물을 먹으면 곧 변을 잘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원추리 어린 순을 따서 지푸라기로 무시래기 엮듯이 엮어서 처마 밑에 매달아 말려두었다가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국을 끓여 먹는 풍습이 있었다.
정월 보름날에 원추리나물을 먹으면 한 해 내내 걱정거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원추리는 폐의 열을 내리고 진액을 늘리며 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갖가지 균을 죽이는 작용이 있다.
폐결핵, 빈혈, 황달, 소변이 잘 안 나오는데, 변비, 위염, 장염, 인후염, 각혈, 자궁출혈 등에 쓸 수 있고, 해독작용이 있어서 독초를 먹고 중독된 것을 풀어준다.
중국 송나라 때의 의학자 소송(蘇頌)은 「도경본초(圖經本草)」에서 원추리가 사슴이 먹는 아홉가지 해독약초 가운데 하나라고 하여 사슴이 먹는 파, 곧 녹총( )이라고 하였다.
원추리는 습기를 몰아내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열을 내리고 콩팥과 방광의 돌을 녹아 나오게 하며, 갈증을 멎게 하고 가슴이 답답한 것을 뚫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우울증을 낫게 한다.
그러나 약성이 온화하여 즉효가 있는 것이 아니라 효과가 천천히 나타난다.
원추리 잎은 뿌리와 거의 같은 효과가 있으며 독이 없다.
가슴이 답답하여 미칠 것 같은 증상을 없애고 소화를 잘 되게 하며, 변비를 없애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소변이 붉고 탁하게 나오는 것과 황달, 부종을 낫게 한다.
신선한 것 20~40g을 물로 달여서 먹는다.
마른 것은 5~10g에 물 1.8ℓ를 붓고 절반이 되게 약한 불로 달여서 차 마시듯 마신다.
원추리 뿌리와 잎은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과 화병,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데 좋은 효과가 있는 약초이다.
그러나 원추리 뿌리에는 독이 약간 있으므로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너무 많이 먹으면 콩팥에 심각한 탈이 생길 수 있다.
말린 것을 기준으로 하루에 40g 이상을 먹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옛 의학책에는 원추리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시력이 나빠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60℃ 이상으로 열을 가하면 독성이 완전히 파괴되거나 현저하게 줄어들므로 날로 먹지 말고 달여서 먹으면 안전하다.
부득이하게 날로 써야 할 때에는 황련즙이나 황백을 우려낸 즙에 하룻저녁 동안 담가두었다가 쓰면 독성이 줄어든다.
최진규의 약초산행중에서...
(중국에서는 꽃을 식용하는데 꽃봉오리에 끓는 물을 끼얹어서 빨리 건져 말린 것을 요리에 이용한다.
이것을 금침채(金針菜) 또는 황화채(黃花菜), 화채(花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꽃의 꽃술을 따 버리고 쌈을 싸 먹는 것이 옛날의 꽃 식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린 순과 함께 강희나 샐러드로 이용하며 꽃봉오리는 튀겨 먹어도 맛있다.
또 꽃은 밥을 지을 때 함께 넣고 지어서 색반(色飯)을 만들던 옛날의 풍습이 있었으므로 어린이의 색다른 도시락으로도 묘미가 있다.
원추리는 단백질, 포도당, 지방, 회분, 비타민, 무기질 등 영양소가 많이 함유된 이외에 아데닌, 코린, 아루기닌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이뇨, 해열, 진해, 진통 등의 효과가 있고 빈혈이나 종기의 치료에도 쓰인다.
마른 꽃은 소주에 담그어서 술을 만들기도 하는데 자양강장 피로회복에 좋다,
주독을 푸는데는 잎, 줄기, 꽃, 뿌리등을 다려서 먹는다.
또 어린 잎은 녹즙의 한가지 원료가 되고 늙은 잎은 이뇨제로 이용한다.)
<최영전, 약초이용과 재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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