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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부사 배설과 금오산성

영지니 2008. 4. 10. 18:12

 

 

  금오산 해운사에서 도선굴로 오르는길 커다란 바위  배설 금석문

 

 

  금오산 도성굴로 올라가는길 오른쪽 바위에 각자

 


                    
                       申丙洞金(신병동금)                       丙申은 1596년임

                    楔 裵使府山善(설 배사부산선)           

          0사공북0성오금축(0 士共北0城烏金竺)

 

 선조28년(1595) 선산부사 裵楔에 의한 금오산성 수축 완공(1596년)한 기념으로 새긴듯함


배설(裵楔 ?~ 1599).

1597(선조 30)년 정유재란때 경상도 우수사로서 통제사 원균의 휘하에서 칠천양 싸움에서 대패.
이순신의 막하로서 명랑싸움을 앞두고 적의 위세에 겁을 먹고 도주, 후에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後代에 와서 그가 쌓은 무공이 인정되어 原從一等功臣으로 贈職되었다.
1610년(광해군 2년)에 신원(伸寃, 억울함이 풀림)되어 가선대부, 병조판서에 추증,

1873년(고종 10년)에 다시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가중.

이처럼 사후에 벼슬이 높아졌으니

어쩌면 그의 죽음은 억울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외성 대혜문

 

 

 

 

 

 금오산성 중수기 

 

 

  금오산성 내성

 

 

  금오산성사적비 정면   김규련撰. 금인석書   1991년

 

 

 

금오산성   

경북 구미시 금오산 


금오산성은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성지(古城址)이다.

조선 중종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금오산은 고려 때에는 남숭산이라 불리었고,
선산부의 남쪽 43리에 위치하여 서쪽은 개령 동쪽은 인동,

북쪽은 부(府)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다.

 

금오산성은 석축의 둘레가 7644자(尺), 높이가 7자이고,

그 절반 이상이 암벽으로 이루어져 몹시 험준하다.

고려말에 선산, 개령, 인동, 성주 등의 많은 백성들이

왜구를 피하여 이곳에 들어와 살았으며

군사를 징발하여 이를 수비했다고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29권(新增東國輿地勝覽) 卷29 
조선 태종 10년(1410) 3월에 경상도와 전라도의 산성을 수축(修築)한 바가 있는데

수축된 12산성 중 창녕의 화왕, 청도의 조악, 경주의 부산성, 선주의 금오산성.

 

금오산성의 수원(水源)은 못이 3개소에 계곡이 하나이던 것이 선조28년(1595)

선산부사 배설(善山府使 裵楔)에 의한 수축 때는

9개소의 우물과 7곳의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인조17년(1639)에 이낙(李烙)에 의하여 수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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