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삼국지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은 바람직한가?

영지니 2010. 4. 15. 18:59
[오마이뉴스 2005-09-17 11:21]


▲ 삼국지를 다룬 책은 많지만, 알고보면 삼국지를 제대로 조명하는 책은 드물다
ⓒ2005 삼인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삼국지>만큼 유명한 이야기도 없다. 무대의 기원인 중국을 넘어서 <삼국지는 동아시아 일대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불멸의 텍스트이다. 황석영, 이문열, 장정일, 정비석, 김홍신 등 국내에서 제법 이름을 알린 저명한 문인이라면 한번쯤 자신만의 삼국지를 편찬하는 것은 기본이고, 삼국지를 논하지 않고서는 고전을 읽었다고 명함을 내밀 수도 없을 정도다.

삼국지는 이제 단순한 고전을 넘어서 현대를 살아가는 처세술의 교본이자, 인생의 지침서이며, 젊은 세대의 게임과 오락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며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최고의 흥행 프랜차이즈로 인정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과연 삼국지를 바라보는 이런 열광은 바람직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타민족의 역사, 그것도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비추어보면 겨우 한 세기 남짓한 세월에 지나지 않은 혼란기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삼국지의 역사는 중국식 역사왜곡과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에 의해 꾸며진 환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대 교수이자 김운회 교수는 삼국지에 대한 비판적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다. 그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2004년부터 연재한 칼럼은, 우리 세대의 삼국지에 대한 비정상적인 열광과 환타지에 정면으로 일침을 가한다.

<삼국지 바로 읽기>(출판사 삼인 / 김운회 지음/전 2권)는 제목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시각 때문에 삼국지를 사랑하는 수많은 네티즌들로부터 극심한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저자의 시각은 일단 삼국지의 문학성 텍스트로의 가치는 인정할 만 하지만, '역사로서의 삼국지는 지나친 왜곡과 과대평가로 일관되었다'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흔히 삼국지의 전형으로 알고 있는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는 집필 당시의 중국인의 정치적 이해와 세계관에 의하여 편향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이 점은, 이문열이 집필한 <삼국지>를 비롯하여, 삼국지에 대한 비판적 주장에서 공통으로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삼국지의 역사적 허구성을 지목하는 것을 넘어서, 삼국지가 현대인들에게 인생과 처세술의 교본처럼 읽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드러낸다. 국내 대중들에게 알려진 삼국지의 최대 매력은 바로 잘 형성된 캐릭터의 힘. 명예와 신념의 무장 관우나, 신기에 가까운 책사 제갈량, 유연한 처세술의 기회주의자 유비에서처럼 손에 잡히듯 명쾌하게 설정된 캐릭터의 면면은 보기에는 이해하기 쉽고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소설적으로 과장된 캐릭터들 중심의 플롯은 단순한 대인관계와 속임수 위주의 전략을 대단한 것으로 포장한다. 이것은 곧 TV 드라마와 현실세계의 차이처럼 분명한 거리가 있다는 것.

특히 저자가 심각하게 문제를 삼고 있는 부분은, 삼국지연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촉한정통론'의 뿌리를 발굴하는데 있다. 저자는 삼국지연의가 출간될 당시의 중국민족(한족)들이 당시 북방민족들에게 끊임없는 침탈과 수난의 역사를 반복하며 민족주의 정서가 심화되었고, 중국인의 긍지와 역사적 정통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략적 프로젝트로 연의에서 '촉한정통론'이 활용되었음을 지적한다. 춘추사관을 바탕으로 나약하고 부패한 한 왕조에 집착한 반동적 인물이었던 유비와 제갈량이 필요 이상으로 미화되고, 북방민족 출신의 동탁, 여포나 한을 찬탈하게 되는 조조의 위나라는 악역으로 설정된다.

이른바 현대의 동북공정과 연결되어서 생각할 수 있는 '촉한공정'의 의미는, 우리에게 중국식 역사왜곡과 우익 민족주의의 근원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텍스트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곧 삼국지는 철저히 중국민족을 위한 정략적 텍스트일 뿐, 우리가 보고 배울 만한 교본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있다.

다소 딱딱하고 진부할 수 있는 내용을,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균형 잡힌 관점으로 풀어나가는 저자의 필력은 텍스트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불어 넣는다. 마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텍스트에 숨겨진 정치적 함의를 밝혀나가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물론 소설적 시각에 충실한 마니아들의 눈에, 정사와 실제 역사를 들먹이며 리얼리티를 따지는 저자의 시각이 마치 TV 사극을 보면서 내용보다는 일일이 고증을 논하며 딴지를 거는 경우처럼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소 건조하고 시니컬한 문체 속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삼국지의 사건들을 보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저자 특유의 섬세한 분석력이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넘나들며 소설 속에서 왜곡되었던 삼국지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은, 단순히 '삼국지 안티'를 넘어서 고전 텍스트를 보다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인 자극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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