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만다라
티벳 스님들 네 분이 오셨습니다.
푼속스님,
딘츄타쉬스님,
랍덴스님,
남걀스님.
남걀스님
랍덴스님
딘츄타쉬스님
푼속스님
"짜루"라는 이름의 만다라 장업도구
돌을 빻아서 가루를 만들고
그 가루에 물감을 염색한 돌가루 입니다.
흡사 우리나라의 단청안료 같습니다.
물을 부으면 금방 시뻘건 물이 배어나올 것 같은.
나는 대번에"석채"로군요. 했는데
아무도 알아먹는 사람이 없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석채"란 돌가루 안료인데
같은 의미입니다.
딘츄타쉬스님이 삼매에 빠졌습니다.
만다라는 소유의 개념이 아닙니다.
없었던 것을 생성했으니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이고
아무리 아름다운 만다라라도
본래 그 자리로 되돌려놓는 회향.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허무함으로부터
애초에 아무 것도 없었고
눈에 보이는 있는 것 또한
눈에 보이는 있는 것 또한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저 황홀지경의 만다라를 제작하는데 바치고도
다 마치고 난 다음에는 언제 우리가 만다라를 장엄했더냐,
하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남긴다는 그 마음조차 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만다라 수행법의 하나입니다.
돌가루 담긴 저 짜루를 긁는 소리는
만트라음악입니다.
짜루긁는 소리를 들으면서 만트라를 생각한 것은
나도 전생의 전생 언젠가 저런 짜루를 긁었을까, 하는
아득한 무위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다라를 장엄하는데 저 분 스님네들은
바쁘다거나 덥다거나 하는 일체의 망상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고지순의 경지에서 행위되어야할 만다라에
헛된 망상 하나라도 일어나면
만다라는 곧 만다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짜루 끝에서 뿌려지는 저 꽃그림을 보십시오.
마음에 촉수가 있다면 저러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나는 짜루가 되고싶었습니다.
내 몸의 혈관을 타고 뿌려지는 수많은 돌가루로 인해
하나의 연화세계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짜릿한 상상입니까.
유년의 무지개떡을 본듯 하였습니다.
색색이 고문 물감으로 물들여져
솥단지의 단내나는 훈김에 익은 무지개떡도
바로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
배고픔과는 또 다른 장엄이었습니다.
영혼의 무지개떡이 눈 앞에 펼쳐지니
아득하여 그만 이승을 하직해도 좋을 듯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항하의 저 많은 모래 수는 그 모래가 많다고 하겠느냐, 적다고 하겠는냐."
"많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세상 살면서 헤아릴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망상이며 번뇌며 하는 것이니
마땅히 그 것 소멸되게 하는데 마음을 써야겠습니다.
나무 만다라불.
출처 : | 흔적(痕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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