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성,탑

나홀로 탑돌이 여행

영지니 2010. 4. 6. 22:26

 


 

우리나라는 석탑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수와 종류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탑이 많다. 경북 내륙에 산재한 전탑 외에도 이 땅을 대표할 만한 탑들을 소개한다.

여행은 주제를 안고 떠날 때 더욱 풍성해진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각별한 관심을 갖고 본다면 훨씬 진하게 감동이 와 닿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의 것과 같지 않으리라”는 조선 후기의 문장가 유한준의 글귀가 가슴에 와 닿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경북 내륙의 안동, 영양 일대는 역사 기행이란 주제로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인 터라 지역의 독창적인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안동은 ‘양반 문화의 고장’이라는 개성 있는 문화 외에도 불교 문화의 의미 있는 성지다.


 

 

영주 부석사에서 시작된 의상의 화엄종이 봉정사를 교두보로 번성하는데, 화엄종의 번성과 때를 같이해 등장한 ‘전탑’이 안동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라 불렸다. 화 강암이 많이 나는 지리적, 재료적 특성상 화강암으로 쌓은 탑을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안동 일대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이 지역에서만은 유독 석탑이 아닌 흙으로 빚어 구워낸 벽돌을 정성껏 쌓아 만든 전탑이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전탑은 모두 5기, 이 중 여주 신륵사와 칠곡 송림사의 것을 제외하면 3기가 안동에 모여 있다. 돌을 벽돌처럼 잘라 전탑을 모방해 만든 모전탑도 영양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학자들은 재료상의 문제로, 풍수설 등의 이유로 안동 일대에 전탑류가 집중됐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정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속 시원한 해답은 아직 들을 수 없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전탑은 존재하되 그 진실을 알 수 없는 1,000년의 비밀을 간직한 수수께끼인 셈이다.

1,000년의 세월을 견뎌오면서 신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전탑을 찾아 나서는 길은 역사와 조우하는 특별한 여행길이다. 여행은 떠나는 것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다. 그 속에서 얻어지는 과거와 현재의 아름다운 만남은 역사 기행이 주는 매력의 하나다. 이 땅 어디를 가도 선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의 솜씨를 만나게 된다.

역사 기행이라고 하면 따분하고 어려울 거란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문화유산을 알면 알수록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역사 기행은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양해진 여행 문화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여행인 것이다. 1 중부권에서는 유일한 전탑인 여주 신륵사다층전탑. 2 목조오층탑인 법주사 팔상전. 웅대한 크기에 비해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축소율이 커서 지나치게 안정감이 강조돼 있다. 3 우리나라 최초의 전탑계 석탑인 경주 분황사모전석탑. 1층 몸돌 4면에 감실을 두고, 감실 입구 양편에 인왕상을 조각해 놓았다. 원래 9층탑이었으나 현재 3층만 남아 있다. 4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초기 석탑의 전형이다. 웅장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각 층의 비례가 적당해 안정감이 뛰어나다.

 

 

 

Day 1>> [영양] 물길은 탑을 끼고 돈다

- 삼지동모전삼층석탑-현이동모전오층석탑-봉감모전오층석탑

 

 

 

영양은 아직도 내륙의 오지다. 고속도로가 열리고 국도가 시원스레 뚫렸지만 내세울 만한 여행지 하나 없는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지로 둘러싸진 척박한 지리 조건 속에서도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지녔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 그중 하나.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석탑 양식이다.

영양에는 삼지동모전석탑, 현이동모전석탑, 봉감모전석탑 등 총 3기의 모전석탑이 있다. 이들을 차례로 돌아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탑들이 한결같이 물길을 끼고 있다는 것. 영양뿐 아니라 안동의 전탑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가람 배치상 탑은 법당 앞에 세워지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법당과 떨어져 물가에 있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전탑과 물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전탑의 위치에 화엄사상의 교리가 숨어 있다는 해석은 매우 흥미롭다. 불교에서도 의상의 화엄사상은 우주론적 인식이 필요한 어려운 종파다.

그만큼 대중성을 띠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포교 측면에서 민중과 가장 밀접한 관음보살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에 나오는 관음보살은 불자들의 입에서 쉼 없이 나오는 소리이자,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화엄사상에 등장하는 관음보살은 언제나 물과 함께 하는 수월관음보살이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창건한 낙산사도 바닷가 절벽에 있다. 고려의 대표적 불화인 <수월관음보살도>를 보면 이해가 한결 빠르다. 구도의 길에 나선 선재동자가 수월관음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 그림인데, 관음보살은 물가 벼랑에 앉아 동자에게 설법한다. 이처럼 관음보살은 물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과연 그렇다면 관음사상을 구현해 표현한 게 전탑은 아닐까?

 

 

1 산 중턱에서 세상을 보듬은 듯 내려다보는 삼지동탑. 2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가공 솜씨를 자랑하는 봉감탑. 3 현이동탑은 감실의 문주석에 세밀한 솜씨로 당초문을 새겼다. 4 봉감모전탑의 감실과 주변 풍경.

Travel Point 삼지동모전삼층석탑 규모도 작고, 훼손이 심해 초췌한 모습이다. 그러나 커다란 자연석을 탑신으로 삼은 것이 이채롭다. 이는 바위가 단순한 받침대가 아니라 탑의 일부라는 뜻. 바꿔 말하면 탑이 거대한 산을 자신의 몸통으로 삼은 셈이다.

현이동모전오층석탑 높이에 비해 체감률이 완만해 둔한 느낌이 강하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곡선미가 떨어지는 밋밋한 체형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절 한가운데에 잘 모셔져 있어 귀한 집 자식처럼 단정한 자세는 잃지 않았다. 불상을 모시는 감실의 문주석에 도식화된 문양이기는 하나 세밀한 솜씨로 당초문을 새긴 것은 매우 드문 예다.

 

 

봉감모전오층석탑 국보 제187호라는 사실이 증명이라도 하듯 크고 잘생겼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았기 때문에 모전의 폭과 높이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석재가 정렬된 모양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맵시를 보인다. 특이한 점은 2층 이상의 옥신부부터 층마다 중간에 모전 석재로 약간 넓게 턱을 만들고 그 밑에 가공하지 않은 크고 작은 돌로 쌓은 다음 위에 모전 석재를 쌓았다는 것이다.
Day 2>> [안동] 전탑의 도시가 된 안동

- 신세동칠층전탑-동부동오층전탑-조탑동오층전탑

 

이른 아침부터 피어 오른 안개 때문에 지나온 길도 운무에 덮이고 가야 할 길도 흰 안개에 가린다. 천지간이 그쯤 되어 하늘과 땅이 모두 분별을 잃었으니 길 위의 나그네 마음만 애가 탄다. 해가 짧아져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일정대로 움직이기 쉽지 않은 탓이다.

처음 찾아간 신세동칠층전탑은 안개 속에서도 제 위용을 자랑한다. 높이 17m에서 풍기는 웅장함이나 고층임에도 안정감 있는 외형, 각 층 처마의 부드러운 선은 최고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준다. 거기에 기단부에 장식한 팔부중상이나 사천왕상의 정교한 조각은 탑의 가치를 한층 높인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기단 일부를 보수한다고 발라놓은 시멘트의 흉측한 모습과 철길이 생기면서 공간이 부족해져 제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는 모습도 마음에 걸린다.

본래 모습대로라면 지금쯤 당당한 모습으로 안동의 상징이 되었을 탑인데…. 동부동전탑도 마찬가지다. 안동역의 부속물인 것처럼 옹색한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안쓰럽다. 그나마 너른 들판 한복판에 서 있는 조탑동전탑은 사정이 낫다. 산과 들을 아우르며 주인인 양 당당한 모습이 여행객의 마음도 밝게 만든다.

사실 전탑은 중국의 탑이다. 중국에는 우리 것과 비슷하지만 연대가 훨씬 앞서는 전탑이 많다. 아마도 당나라에 유학했던 신라의 승려들이 경주로 돌아와서 선진 문화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크고 화려한 전탑을 모방해 탑을 만들었을 게다.

 

 

 

최초의 것이 경주의 분황사모전석탑이다. 당시는 벽돌을 제작하기 어려웠던 탓에 돌을 벽돌처럼 잘라 탑을 세웠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전탑 역사가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에 전탑이 세워지는 시기는 의상의 화엄종이 번성하던 때와 일치한다. 의상이 중국에서 배워온 화엄사상은 민중적 성격이 강해서 경주의 귀족 세력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의상은 신라의 변방에 속했던 영주에서 부석사를 창건하고 교리를 펼쳤다.

그리고 안동에 봉정사를 세우면서 봉정사를 교두보 삼아 본격적으로 화엄사상을 전파했다. 안동은 화엄종의 거점인 셈이다. 전탑은 바로 화엄종의 번성과 때를 같이 하여 등장한다.

5 동부동전탑 옆에는 당간지주가 오랜 벗처럼 함께한다. 6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신세동전탑. 7 동부동전탑은 지붕돌에 기와를 얹은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8 안정되고 기품 있어 보이는 조탑동탑.
Travel Point 신세동칠층전탑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외형을 지녔다. 다만 각 층의 지붕돌 너비가 석탑에 비해 많이 짧아져서 풍성하거나 수려한 멋은 줄어들었다. 지붕돌 낙수면의 일부에 기와를 입혔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각 층 낙수면에 모두 기와를 입혔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탑에 앞서 목탑이 존재하였고 전탑은 목탑을 모방한 것임을 보여준다.

동부동오층전탑 안동역 수화물취급소 옆에 다소곳이 있다. 기단이 높고 지붕돌의 처마 너비가 좁아 안정감이 떨어진다. 마치 엉덩이가 뚱뚱한 여인을 연상케 하는 전탑이다. 2층 탑신에는 2구의 인왕상을 조각한 화강판석을 끼우는 이례적인 표현을 했다. 낙수면에는 처마 끝에 목조 건축물처럼 4층까지 기와를 입혔다.

조탑동오층전탑 형식이 동부동전탑과 같지만 전체적으로 그보다 떨어진다. 벽돌의 생김이 거칠고 처마도 휘었다. 기왓장도 남아 있는 게 없다. 그렇지만 흙으로 쌓은 기단을 쌓은 점이나 초층 몸돌을 화강암으로 축조한 것이 독특하다. 1층의 감실을 지키고 서 있는 이 인왕상은 친근한 모습으로 적지 않은 이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있다.
Day 3>> [칠곡] 탑이 주는 교훈

 

 

 

사람이든 탑이든 잘생긴 녀석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반대로 상처 받고 소외된 것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칠곡의 송림사오층전탑과 만난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넓은 지붕돌이 보여주는 안정감과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는 외형은 보는 이를 기쁘게 한다. 더욱이 한국전쟁 이후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기는 해도 금동제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 다른 전탑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안동·영양에 있는 탑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미아 같았는데, 비로소 제집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영양에서 안동을 거쳐 칠곡까지 전탑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이 탑들도 사람처럼 감정을 지녔구나!’하는 것이다. 전탑 앞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탑도 외로움을 탄다. 1,00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홀로 남겨진 것에서 오는 외로움. 그리고 홀로 계속 먼 길을 가야 하는 고독감에 사무쳐 마주 흘러오는 세월을 붙잡고 한참 동안 헤어지기를 싫어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시간의 흐름은 한순간도 머무를 수 없는 세상의 율법인 것을.

 

 

탑도 어느 때는 쉬고 싶어 하염없이 한숨을 내쉰다. 텅 빈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닌 터다. 그렇기에 탑은 자신의 진면목을 깨닫기 위해 숨을 고른다. 마치 수도승들이 도량에 모여 정진에 힘쓰듯. 때로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고민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전탑 기행은 참으로 매력이 있다. 여러 차례의 복원 공사로 잃어버린 본 모습과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도시의 외딴 곳에 서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는 해도 길 위에서 만나는 탑은 그 속에 많은 옛 이야기를 품고 있어 좋다.

우리의 발길 닿는 곳, 눈길이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접하게 되는 것이지만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돌덩이요, 나뭇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랑을 가지고 대하면 그 속에서 우리 역사의 편린들을 하나씩 끄집어낼 수 있게 된다.

1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 전탑의 원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송림사전탑 2 층층이 역계단식으로 올린 지붕을 받침. 3 신세동 전탑의 기단부에는 팔부증상을 조각해 탑의 예술성을 한껏 높였다. 4 초탑동 전탑의 감실 입구에 조각된 인왕상은 무섭기보다 정감 있고 앙증맞은 표정이다.

 

Travel Point 송림사오층전탑 송림사 경내에 있어 찾기 쉽다. 겉으로 보기에는 감실이 보이지 않지만 복원공사 도중 탑 안의 감실에서 조선시대 목불과 파손된 석불, 동불이 발견되었다. 상륜부 복발 안에서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상감원형합이 발견됐는데, 이는 분묘가 아닌 곳에서 청자가 출토된 예가 드물기에 의미가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보수했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증거다.

 

 

낙동강철교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해 부설한 경부선 군용 철도의 교량이다. 한국전쟁 때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북한군의 도하 방지를 위해 미군에 의해 폭파된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때 긴급 복구하여 지금까지 인도교로 이용되고 있다.

 

 

Travel Info>>

가볼 만한 맛집

안동간고등어 간고등어는 안동의 대표적인 명물. 소금을 뿌린 고등어를 하루 정도 숙성시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난다. 간고등어 구이와 조림을 동시에 맛볼 수 있으면서 안동 특유의 밑반찬을 푸짐하게 차려내는 간고등어 양반 밥상이 인기 있는 메뉴다. 10:30~21:00 / 안동간고등어구이·조림·찜 각각 6000원, 양반밥상 1만원, 신용카드 가능 / 054-855-9900


낙동식당 30년 이상 봉감천에서 직접 잡은 민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낸다. 주메뉴는 메기매운탕이지만 피라미, 쏘가리, 매자가 들어가는 잡고기 매운탕도 인기 메뉴다. 매운탕은 걸쭉하고 구수한 맛이 특징. 영양고추로 담근 매운 맛의 고추장으로 얼큰한 맛을 내고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써서 맛을 유지한다. 10:00~20:30 / 메기매운탕 6000원, 메기조림 1만~2만원, 신용카드 가능 / 054-682-4070


>>잠자리 영양에는 특별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읍내의 여관을 이용해야 한다. 특별한 추억을 기대한다면 안동의 전통 한옥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게 좋다.

 


 

수애당 1939년 수애 류진걸이 지은 가옥이다. 황토를 올린 꽃담장과 한옥의 부드러운 처마선에서 옛 향기가 물씬 풍긴다. 아궁이 지펴 절절 끓는 온돌방인데도 이불을 덮고 누우면 코끝에 살짝 찬 기운이 돈다. 이곳이 어쩔 수 없는 한옥임을 말해 주는 듯하다. 손끝 야문 안주인 덕에 침구며 방은 언제나 깨끗하다. 054-822-6661 / 2만5000원, 3만원

 

 

 

 

 

지례예술촌 수애당에서 산중으로 더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조용한 휴식을 목적으로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하다. 방문을 열어 젖히면 임하호의 풍경이 한눈에 가득 담긴다. 지례예술촌에서는 숙박 외에도 시인인 주인과 안동 문화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매월 진행되는 전통 행사에 참여해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054-822-2890 / 2만~5만원


ㅁㅁㅁㅁ찾아가는 길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가장 쉽고 편리하다. 영동고속도로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제천-단양을 지나 서안동 IC에서 빠져 나오면 바로 안동 시내로 연결된다. 안동 시내를 거쳐 34번 국도를 따라 울진 방면으로 가면 영양에 이를 수 있다. 안동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다부 IC에서 빠져 나와 5번 국도 대구 방향으로 가면 송림사 이정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출처 : 올드뮤직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