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크리닉

섹스의 기원과 역사

영지니 2007. 3. 11. 20:35
 

한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영화, “헤드윅(Hedwig)”엔 “사랑의 기원(Origin of Love)”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오래 전,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등을 맞대고 붙어 있었던 때가 있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붙은 채, 머리도 두 개, 팔 다리도 두 쌍씩, 거대한 통 마냥 굴러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힘이 강한 이들은 오만을 부렸고, 분노한 제왕 신 제우스는 번개 불을 던져 그들 몸을 반 토막 냈다.

 

렇게 갈라진 반쪽 선조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나머지 반쪽 연인을 찾아 세상을 헤매는 운명이 됐고, 이것이 사랑의 기원이 되었다.

 

 

이 노래 가사는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에 나오는 내용을 차용한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우화 같지만 이는 (놀랍게도) 학문적으로 사실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몸이 쪼개져 두 개의 몸이 되었다”는 것은 10억년 전쯤 원생생물이 감수 분열을 통해 암수 두 개의 성으로 나뉘어진 것을 상징합니다.

 

원래 원생생물은 남녀의 구분도 종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더 효율적인 번식을 위해 자신의 생식세포를 반으로 나누고(수가 반으로 줄어들어 감수 분열이라고 합니다.) 암수의 역할을 구분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기원, 즉 성의 기원인 셈이죠. 

 

 

 

인간의 경우 46개의 염색체가 23쌍으로 붙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남녀가 등을 맞대고 붙어있는 모습. 하지만 생식을 할 때는 이 등을 맞댄 염색체가 서로 떨어진다. 정자와 난자로 갈라져 각각 23개의 염색체가 되는 것.

 

성교를 하면 이 정자와 난자가 합쳐져 다시 46개(23쌍)의 염색체의 새 생명을 만들어 낸다.

 

 

최근 이론에 따르면, 지구 최초의 섹스는 10억년 전 원생 생물의 감수분열 이전에, 그리고 종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박테리아에 의해 시작됐다고 합니다.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라는 생물학자가 내놓은 "박테리아 섹스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억년 전, 지구상에서 처음 박테리아라는 유기체가 탄생했을 때 이들은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구는 살인적인 자외선에, 고열, 혹한, 가뭄, 기아가 혼재하는 혹독한 환경이었고, 이런 환경에 허덕이던 박테리아들은 살기 위해 서로를 삼키고 잡아 먹었죠.

 

문제는 잡아 먹힌 박테리아가 잡아 먹은 박테리아 몸 안에서 소화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통째로 남거나 합쳐졌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없던 세포 핵이 생겨나거나, 핵과 세포막이 합쳐지고, DNA 염색체 수가 늘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포식 행위를 통해 새 생명을 탄생시킨 셈입니다. 먹는 것이 번식이고, 식욕이 곧 육욕인 아주 기묘하고 원시적인 섹스의 기원입니다.

 

원론적으로 섹스이긴 하지만 이때는 성의 구분도, 종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무조건 잡아먹고 합쳐지고 염색체가 불어나는 것이 전부 였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생명체의 기능은 더 새롭고 다양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산소로 호흡하는 세포를 삼킨 박테리아는 산소를 활용하는 미토콘드리아로, 엽록체를 잡아먹은 박테리아는 산소를 내뿜는 원생 식물로 "진화"한 것이죠.

 

이렇게 서로 간의 마구잡이 결합으로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 형태가 생겨났고 20억년 전쯤 원시 원생생물이 등장하면서 생명체에는 "종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즉, 생명체에 종(種, species)이 생겨난 것이죠. 

 

 

 

종(種, species)이란, 쉬운 개념에서 이해하자면, 서로 짝짓기를 해 번식할 수 있는 동식물의 분류다. 예를 들어, 시베리아 호랑이와 벵골 호랑이는 서로 짝짓기를 해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같은 종이다. 그러나 뱅골 호랑이와 사자는 서로 아무리 짝짓기를 해도 번식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종에 속한다. (사자와 호랑이의 사이의 교배종인 라이거는 인간의 강제적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것으로 자연 상태에선 존재하지 못한다.)

 

 

세포 결합은 또 다른 경이적인 생명체의 기능을 탄생시켰습니다. 바로 자신의 몸을 암과 수, 두 몸으로 나눌 수 있는 생명체 였죠.
 
지금으로부터 약 10억년 전쯤에 나타난 이 생물 종은 겨울과 같은 험한 시기에 자신의 몸 염색체를 둘로, 즉 암컷과 수컷으로 나누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식물들이 씨앗이나 홀씨, 포자 등의 형태로 오랜 세월 생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따뜻한 여름이 오면 암수로 나뉜 세포들이 다시 합쳐 본래의 생명체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이는 변화하는 환경에 지극히 효율적인 기능으로 점차 대부분의 생명체의 생존수단으로 널리 "보급"됩니다.

 

결국, 원래 몸의 염색체 수를 절반으로 나누어 만들어진 암수 생명체는 생식세포(인간으로 말하면 정자 난자, 그 당시엔 곰팡이의 홀씨에 더 가까운 형태)로 발전했고, 각각의 생식세포를 가진 개체는 암컷과 수컷, 남자와 여자와 진화를 했습니다.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동식물은 남녀가 짝으로 지어 번식하는 감수분열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생명체는 자신의 몸을 둘로 나누어 번식하는 "유사분열"로 번식을 했으나, 이들은 암과 수, 두 가지의 생식세포가 한데 합쳐져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킵니다.

 

 

 

오늘날의 박테리아, 아메바, 유글레나는 아직도 자신의 몸을 그대로 나누어 번식하는 "유사분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유사분열로 번식하는 생명체는 모든 개체의 유전자 구조가 "붕어빵처럼" 똑같다.

 

 

 

효율성으로 보자면, 언제든 자기의 몸을 둘로 나누어 무한히 번식하는 유사분열 방식이 훨씬 우월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동식물은 남녀가 서로 다른 몸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번식을 위해선 서로 만나서 섹스를 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불편한" 방식을 고집하고 있을까요?

 

이유는 자명합니다. 유사분열의 경우 아무리 세대를 거듭해도 유전적인 구조가 바뀌질 않습니다. 변화도, 발전도, 진화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녀가 나뉘어 번식하는 유성생식은 정자와 난자가 서로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냅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계속 새롭고 다양한 개체가 만들어집니다. 즉 변화하고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죠.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가 수정하면 배(胚 embryo)가 만들어진다. 남자 염색체와 여자 염색체가 결합된 배에선 교차 분열이 일어나 남자가 가진 모든 (잠재) 유전자와 여자가 가진 모든 (잠재) 유전자가 랜덤하게 선택돼 섞인다.

 

이 때문에 우리 인간은 무한히 다양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이런 유성생식에 의한 진화는 매우 강력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류 중에는 치사율 100%라는 에이즈 같은 질병에도 선천적인 면역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이즈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무서운 질병에도, 그 어떤 극악한 환경에서도 죽지 않는 사람들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남녀 간의 섹스, 그리고 진화가 선물해준 경이적인 다양성 덕분이죠.

 

(물론 무성생식-유사분열을 하는 박테리아나 기타 단세포 동물들도 적대적인 환경이나 물질에 대항할 수 있는 개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유성생식을 하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다.)

참고자료

"섹스란 무엇인가? (What Is Sex?)" 린 마굴리스/도리언 세이건 지음, 지호 1999년, ISBN 89-86270-36-6

 

 

 

 

원본: 야후! 웹진구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