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공간

내가 사랑하는 것들... / 피천득

영지니 2010. 4. 19. 14:00

 
내가 사랑하는 것들... / 피천득


우선 나는 아침 7시마다 울리는
내 핸드폰의 모닝콜 소리를 좋아한다.
따뜻함이 좋은 요즘같은 겨울에는 일어나기 싫은 마음에 침대속을
뒹굴지만 그래도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참 좋다.

난 나뚜루 녹차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달지 않으면서 약간 풀냄새마저 나는 그 아이스크림을 한입 떠 먹을 때
기분이 무지 좋아진다. 파인트크기의 아이스크림을
아무 생각없이 막 떠먹는 것도 좋고,
싱글콘이나 컵에 담아 길을 가면서 먹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그가 맛있어 하면 더없이 기분이 좋다.

난 안개를 좋아한다.
안개의 냄새를 맡고 있으면 뭔가 표현 못할 상쾌함이 느껴진다.
안개낀 도로를 달리는 것도 좋아한다.
물론 운전을 못하는 관계로
그런 기쁨을 맛볼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가끔 한번씩 주어지는 기회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나는 화려한 것들을 좋아한다.
길거리 네온사인도 좋아하고
가끔 밤기차 여행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멀리서 화려하게 반짝이는 러브호텔 불빛도 좋아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트리장식이
한창인 요즘은 밤 거리를 걷는 것이 즐겁다.

난 화려한 옷들도 좋아한다.
비록 몸매가 따라주지 않아서 입고 다니지는 못 하지만
누군가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바로크시대나 로코코시대 의상을 입고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난 빨간색 립스틱을 좋아한다.
약간은 도발적이면서도
그 속에 수줍음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커피를 즐기지는 않지만 어느 커피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인생에 커피가 필요한 순간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대 그 커피가 헤이즐넛 커피면 더 좋겠다.
대학교 1학년때 자주가던
까페에서 첨 마셨던 그 헤이즐넛 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가끔 까페에서 마시는 커피 중에 아이리쉬 커피가 있다.
쓴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쯤
컵에 묻어있던 설탕이 녹으면서 주는
달콤함이 짜릿하도록 좋다.

난 바나나 우유를 좋아한다.
특히 목욕후에 마시는 그 시원함이란 얼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리고 난 또 흔히들 좋아하는 모짜르트 음악도 좋아한다.
피아노 협주곡 21번도 좋아하고 특히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산들바람이 불어와 라는 곡을 무진장 좋아한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꿈을 꾸는 듯하고 잠시 일상 탈출을 꿈꾸게 된다.

난 이현우도 좋아한다.
아주 열광적인 팬은 아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 참 좋다.
콘서트 때 보여주는 열정과 팬들과의 어색한 대화도 좋아한다.

나는 특별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좋아한다.
일일이 열거하기엔 넘 많고 평범한 것들...
이곳에 다 적지 못하는 나의 사랑하는 것들에게
미안한 맘을 표한다.

그리고 난 또 좋아한다.
지금 내 핸드폰 속에 있는 어린 왕자를...


-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