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경계비의 진실-압록강과 두만강은 요하와 아무르강을 말한다.
이순신의 녹둔도는 두만강 하류가 아닌 사할린섬이다
[임상현 칼럼리스트]백두산 경계비의 위치를 두고 중국과 한국의 오래된 분쟁이며 간도문제와도 연결이 된다.이 문제에 대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아래 지도에 나온 것은 지리와 강이름을 표시한 것이다. 여기서 두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첫째는 조선 초 세종때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동북방에 6진을 설치하는데 그 설치지역이 한반도 두만강 안이 아니라 서북으로는 바이칼호에서 동북으로는 사할린까지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청나라와 영토분쟁이 일어나서 경계를 확정지은 것으로 유명한 백두산 경계비의 영역이 만주 일대라는 것이다.우리가 알고 있는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은 조작된 지명이며 원 지명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요하의 서쪽 상류 시라무렌강에서 거란제국을 세우다.
요하라는 강이름이 형성되는 계기는 거란족의 부흥지이기 때문이다. 요하(遼河) 상류이며 서요하의 끝인 시라무렌(Siramuren) 유역에서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거주하였는데 916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여러 부족을 통합한 다음 황제를 칭하고 거란을 건국하였으며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국호를 947년 국호를 요(遼)로 개칭한 것에서 유래한다.
시라무렌강 상류는 바이칼호와 몽고고원 아래에 있으며 내몽고 자치주에 해당된다.
압록강은 요하이며 난하가 요하라고 한다.
<삼국유사>와 <중국 요사지리지>에서 "요하를 일명 압록이라 하였다" 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서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난하가 '요수(요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동과 요서의 기준은 어디인가!
거란족이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요(堯)라고 하였으며 여진족이 나라를 세우고 금(金)이라 하였다.이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단군조선이후 대부여와 고구려까지 5부족 유목 연맹체를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역사의 뿌리는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요나라의 이름을 따서 국호를 요라고 한 것이다.요(堯)는 성이 이기(伊耆), 이름은 방훈(放勛), 호는 도당씨(陶唐氏)이며, 제요(帝堯)라고도 하고 당요(唐堯)라고도 한다.
그래서 서이족의 당(唐)이라는 나라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유목족은 대대로 부족 연맹에 의하여 나라를 세우고 동서양 스탭지역을 활동기반으로 하면서 실크로드를 상업기반으로 하면서 제국을 다스렸던 것이다.
요라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7회력인 월-화-수-목-금-토-일요일에 들어가는 요도 같은 유래인 것이다. 또한 중요하다는 말도 중앙의 요라는 뜻이며 모든 사물의 중심이자 상징을 요라고 한 것이며 이것이며 국호와 왕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란족도 같은 유목족 뿌리이기 때문이다. 고구려도 5부족 연맹체에서 비롯되었으며 고주몽 계열의 계루부를 중심으로 연합하였다.역사를 따라 추적해 보면 계루부가 거란족이 되었으며 그 연원은 그리이스 유목족까지 연결이 된다. (글안->거란->코란->카라->가야)
요라는 것은 거란족의 요나라를 세우는 중심지역이기도 하며 황제국의 중심을 요라고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준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각각 달라지는 것이다.요나라는 황제국이기 때문에 황제국이 중심이 되어 그 중심에서 동쪽을 요동이라하며 서쪽을 요서라 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시대에는 유프라테스와 티크리스강을 중심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것이며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것이며 황하의 중심 장안에서 요서와 요동을 나누는 것이다.시대 변천과 함께 각기 달라지는 것이며 제후국 나라에서는 방향이 바뀌어 나타나기도 한다.
요동과 요서라는 개념도 황제국이 사용하는 일명명사가 된다. 특히 수도를 칭하는 평양(平陽)이나 안(安)도 요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며 한수(漢水)나 압록수(鴨綠水)도 같은 개념이 된다.
압록강은 어디를 말하는가!
압록강의 어원은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압록강의 물빛이 오리머리 빛과 같다(…水色如鴨頭…)고 하여 압록강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그리고 오리 머리 모양을 닮은 강이라고도 하며 오리의 음을 따서 오리->아리->아리수->우리수 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리는 알과 같은 말이며 알은 <안-한-우리-울-훈>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한수=압록강=한강=아리수 와 같다. 민족의 중심강을 아리수의 파생영역으로 발전되어 여러 이름으로 변형 발전된다.
중심강이기 때문에 황하강으로 부르기도 하며 문명의 중심이기 때문에 불->.파이어->페르->비류로 발전되어 비류슈=패수로 발전된 것이다.크게 보면 여러 강의 어원은 비슷한 메커니즘의 영역인 것이다.
크게 본다면 아리수나 압록수는 아랄해의 지류인 아무다리아강과 시르다리아강이 압록수이자 아리수이자 한강이며 요하의 여러 지류도 압록수이자 아리수이자 한강이 된다.
그리고 황하도 같은 개념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 민족의 흥망성쇠와 이동 그리고 영토의 확장과 축소에 따라 달리 불리워지며 자국과 경쟁국의 역사적 명분에 따라 왜곡되기고 하고 변형되기도 한다. 때문에 획일적인 적용과 해석이 곤란하며 그 당시 상황에 맞는 적용이 필요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9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세 개의 큰 물이 있는데
하나는 백두산(白頭山) 아래의 마죽동(馬竹洞)에서 나와 혜산진(惠山鎭)과 인차외(仁遮外)를 거쳐 최천이동(崔天已洞)의 물과 합류하여 군계(郡界)로 들어오고,
하나는 길성현(吉城縣) 북쪽 장백산(長白山) 서북보(西北堡)에서 나와 운총보(雲寵堡)를 거쳐 허천강(虛川江)과 합하여 강기(江岐)에 이르러 군계로 들어오고, 또 하나는 함흥부(咸興府)의 황초령(黃草嶺)ㆍ부전령(赴戰嶺)과 평안도 강계부(江界府)의 오만령(五萬嶺) 등의 물이 어면강(魚面江)과 합하여 군계로 들어온다.
세 개의 물이 합류하여 압록강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삼수(三水)라고 이른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군(郡)이 어면강ㆍ압록강ㆍ삼수동수(三水洞水)의 세 가닥 사이에 있기 때문에 삼수라 했다.” 한다.
삼수또는 삼수동수라는 지명이 있는 곳이 아무르강 삼강평야와 요녕성의 요하하류 지방 두개가 있다. 그 중에 요하가 압록강인 이유는 요하의 지형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 내용과 같다.
그리고 현 압록강은 전혀 내용이 틀리다.요하 하류에 싼장커우[三江口] 부근에서 창바이[長白]산맥에서 발원한 동랴오허강을 합쳐 랴오허강이 된 뒤, 그대로 남하하다가 훈허강[渾河]을 합치고 나서 잉커우[營口]에서 보하이해[渤海]로 흘러든다.그
리고 혼하는 원래는 랴오허강[遼河]의 지류였으나, 1958년 와이랴오허강[外遼河]을 가로막은 뒤부터 독립 수계가 되었다. 칭위안만주자치현[淸原滿族自治縣] 동쪽 군마링[滾馬嶺]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푸순[撫順]?선양[沈陽]?랴오중[遼中] 등을 지나 하이청시[海城市] 싼차강[三酒河] 부근에서 타이쯔강[太子河]과 합류한다.
《한서(漢書)》의 <조선전(朝鮮傳)>과 <지리지(地理志)>에 패수(浿水) ?염난수(鹽難水) ?마자수(馬水) 등의 이름으로 나온다.압록강의 한 지류에 소금강을 뜻하는 염난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금기가 있는 강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소금기가 있는 강은 요하의 서쪽 지류 상류인 시라무렌강에 소금강이 존재한다. 지금도 그곳은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소금기가 머금은 지역이며 내륙에 많은 소금이 산출되는 장소가 실존한다.
또한 염난수라고 일컬어지는 강은 아랄해 일대의 아무다리아강이며 아랄해가 염수가 있으며 서쪽으로 흐른다. <한서지리지>에는 “마자수는 서쪽으로 흘려 염택에 들어간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염택은 소금 연못이므로 아랄해를 지칭한다. 압록은 두 곳을 말한다. 또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에 들어가서, 서남쪽으로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라고 자세히 기술하였는데 서안평이 바로 서 투르크 평원인 파미르 고원을 넘어 존재하는 아랄해 일대 평원을 말한다.
참고로 현 요하 지명에 역사 기록에 중첩이 일어나는 것은 압록강을 지칭하는 것을 한 곳에 모아 적용시키는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 나타나는 것은 민족의 이동과 함께 비슷한 자연환경에 같은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두만강은 어디를 말하는가!
두만강은 두만강(豆滿江)은 콩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콩은 태극이며 생명이며 시초를 말한다. 아무르의 <아>도 아사에서 나온 말이며 새로움이며 알파벳의 A도 감탄사의 의미도 있지만 생명현상의 명사를 의미한다.만은 마르로 연음이 되며 마르->무르로 연음이 된다.그러므로 아무르를 한자로 옮기면 두만강이 되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0권>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다.”
또 “여진 말로 만(萬)을 두만(豆滿)이라고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라고 기술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갈래의 물이 하나로 합류되는 것이 두만강이므로 현 압록강이 아닌 것이다.
또한 남으로 압록강이 흐르고 이 압록강이 요하라면 북으로 흐르는 것은 송회강과 여러 지류에 해당된다. 이 지류가 다시 동으로 흘러 하나로 뭉쳐 바다로 흘러간다고 하였다.바로 아무르강을 말하는 것이다.
두만강은 만주강을 말하며 만주 일대를 가득차게 채우는 강역을 의미한다.그리고 흑룡강이라는 별칭이 붙는 것은 동단국-조선족-고구려의 상징색이 흑색이기 때문에 붙은 명칭인 것이지 현 두만강의 짧은 강이 아니다.
이순신이 여진족과 싸운 두만강 하류에 녹둔도 전투지역은 어디인가!
녹둔도는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에서 방영되어 유명해진 전투와 지명이다.여진족인 야인의 습격을 막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인 녹둔도를 사수한다는 내용이다.실제 역사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었다. 1587년(선조 20) 여진족의 습격을 받고 큰 피해를 당해, 당시 책임자였던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이 그 책임을 지고 해임된 바 있다.
두만강이 현 한반도 두만강이 아니고 아무르강이라면 두만강 하류에 있는 녹둔도도 아무르 강 하류로 가야한다. 이 뿐만 아니라 녹둔도는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과 싸운 섬이며 이 섬이름을 따서 녹둔도 전투라고 한다.역사기록을 보면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공주를 거쳐 동류해 25리에 이르면 사차마도에 도달하고 여기서 강물이 나누어져 5리쯤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라고 하고 있다.세조 원년(1455년) 8월에는 이전까지 사차침도, 사차마도라 하던 것이 녹둔도 또는 녹도로 명명된다.>
현 두만강 하류에 삼각주로 된 지명이 녹둔도라고 한다.두만강 하구에 있는 둘레가 8키로인 타원형의 자그마한 땅이다. 직사각형으로 환산하면 가로 세로 2키로에 해당한다.과연 그곳이 녹둔도인가! 얼마가 그곳이 중요하길레 여진족이 목숨을 걸고 침범하였으며 얼마나 중요하길레 그 안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설치했을까!그 땅속에서 금이라고 나오는 비밀이 있는 것인가!
아무르 강을 두만강으로 옮기다 보니 아무르 강 하구에 있는 사할린 섬을 억지로 끼워 맟추다 보니 코메디를 연출한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사실인냥 우기는 식민지 사학이나 그것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다.
녹둔도가 두만강 하류의 작은 섬이 아니라 아무르 강 하류의 사할린섬이다.이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정황으로 보면 절대 녹둔도가 될 수 없다.
여진족은 유라시아 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며 훗날 금나라를 세우며 나중에 청나라로 발전하여 중국 대룩을 장악한 몽고제국이래로 가장 강력한 유목집단이다.여진족은 몽고 초원과 만주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다.
그런 민족이 가장 작은 척박한 한반도 함경도를 노리고 두만강을 노리겠는가! 만주일대는 화북평야로 한반도 보다 몇배 넓은 농경지와 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만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래서 절대로 한반도로 넘지 않으며 넘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그것도 고작 작은 땅인 두만강 하류 작은 땅을 노린단 말인가! 여진족이 그렇게 바보 집단인가! 드넒은 화북평야와 송화강과 아무르강 그리고 흑룡강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버리고 어디에 붇어 있는지 모르는 한반도로 가서 그것도 아주 작은 섬 녹둔도를 노린단 말인가!
녹둔도는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한번만 읽어 보아도 안다.세종실록지리지 내용중에 중요한 것을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조선 세종 때 6진(鎭)을 개척한 이래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하여 섬 안에 길이 1,246척의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둘러 병사들이 방비하는 가운데 농민들이 배를 타고 섬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농민들은 상주가 금지되었고, 춘경추수기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가되었다.
여기서 녹둔도가 두만강 내에 섬이라면 성을 쌓고 군대가 상주하고 그리고 농사를 지을 땅면적이 나오는가! 그것도 직경 2키로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사할린 섬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녹둔도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자주 언급을 한다.<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인 양정과 도사 강효문에게 조산구자(造山口子) 녹둔도 농민이 들에서 일할 때 야인들이 배를 타고 침입, 약탈할 것이 우려되므로 진장(鎭將)과 만호들에게 엄중히 방비하라는 밀유(密諭)를 내리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중종 9년(1514년)에는 봄철 농사를 지을 때면 조산보의 군민이 녹둔도로 들어감으로 본보가 빌 정도라고 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사할린이 왜 녹둔도(鹿屯島)인가!
녹둔도는 한글로 풀어보면 <사슴+ 언덕+섬>이다.과연 사할린이 사슴언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사할린 내에 홀름스크는 사할린 남서안의 항구도시로 인구는 약 5만 2,000명이다. 러시아어로 '언덕'을 의미하는 이 마을의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즉 홀름이 언덕이라는 말이다.
홀름->할림->할린 이니 같은 음운 계열이다.그리고 스크는 섬을 의미하니 홀름(할림->할린-언덕)+스크(섴->섬-도)이니 언덕섬(둔도-屯島)가 된다.그러므로 사할린의 할린은 언덕인 것이다. 그렇다면 샤(사슴)+할린(언덕)이 된다면 샤가 사슴이라는 말인가!
샤할린은 영어로 Sakhalin(Sak+hill+lin)으로 표현되며 사슴이나 양 소고기를 뜻하는 영문은 다음과 같다.sheep(숫양) Stag(숫사슴)Caribou(순록)Steak(쇠고기)로 발음된다.일본어로 보면 鹿しか (시카)로 발음된다.즉 한글은 사슴이며 일본은 시카이며 영어는 샤가 공통으로 발음된다. 그러므로 샤는 사슴을 말한다. 샤할린은 사슴언덕이 되며 녹둔이 된다. 사할린은 완벽한 녹둔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할린은 목축으로 소와 사슴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사슴섬으로 부른 것이다. 녹둔도라는 이름을 지을 때에는 반그시 사물의 특성을 보고 지은 것인데 현 두만강 녹둔도는 전혀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녹둔도는 사할린섬이다.우리의 6진 최전방 연해주와 사할린은 반드시 찾아야 할 땅이다. 이순신의 젊은 시절 숨결이 묻어 있으며 우리 조상이 개척한 땅이다. 지금 사할린은 유전지대로 탈바꿈되어 황금의 땅이 되었다.
특히 사할린의 북쪽은 천연가스가 풍부하며, 1999년 7월부터는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러시아의 보고로 통하는 지역이다. 간단한 도표가 제일 첫 그림에 사할린이 소개되어 있다.사할린은 육지와 8키로 정도로 떨어져 있으며 겨울철에는 바다가 얼어 걸어서 사할린까지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여진족인 겨울철에 말을 타고 섬에 침공이 가능하며 평상시에는 배로 침공이 가능하다.사할린과 연결된 콤소모몰스크와 하바로프스키가 6진 중에 하나인 경흥인 것이다.그 곳에 조산만호가 존재한다. 사할린이 녹둔도라는 것도 필자가 최초로 주장한다.]
[임상현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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