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七支刀) 2
일본 나라현(奈良縣) 덴리시(天理市)의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 소장
칠지도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특별한 전시가 있기 전에는 쉽사리 관람할 수 없는 고대의 유물이다. 쇠로 만들어진 긴 몸체 좌우에 여섯 개의 가지가 엇갈리게 배열되어 몸체 부분을 포함하면 모두 일곱의 가지를 가진 창과 같은 형상이다. 칼날에 해당하는 가지의 가장자리가 얇고 중심부는 두꺼워, 칼(刀)이라기보다는 검(劍)이라 불러야 좋을 듯하지만, 몸체에는 금상감(金象嵌)으로 칠지도라 새긴 뚜렷한 명문(銘文)이 있다.
칠지도 몸체의 양면에 홈을 파고 금실을 박아 글자를 새긴 이 금상감 명문은 백제에서 칠지도를 만들 때 새긴 것으로, 백제(百濟)가 왜(倭)에 전달하였던 일종의 외교문서였던 셈이다. 따라서 이 명문은 그 당시의 역사적 사실, 특히 고대 한일관계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칠지도 명문은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질 때부터, 금상감의 글자가 심하게 떨어져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그 내용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칠지도의 상태와 자료적 가치로 인해 그 해석과 역사적 의미의 규명을 둘러싸고 거의 100여년에 가까운 한일간의 뿌리 깊은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동안의 연구를 통하여 명문의 판독에 관해서는 한일 고대사학계가 의견 일치에 도달하였던 부분도 적지 않으며, 칠지도 명문의 해석과 의미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칠지도 연구를 한 지 100여 년이 된 지금이라고 해서, 칠지도 명문 전부가 확실하게 판독된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 이와 같은 연구성과를 계승하면서, 명문의 판독에서 한일 양국이 일치하고 있는 내용을 기초로 칠지도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칠지도 명문이 백제에서 제작되어 왜에게 주어졌던 것이 분명한 만큼, 이를 바탕으로 백제와 왜의 관계, 나아가서는 고대 한일관계사의 역사적 일면을 밝혀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철검. 나라 텐리시 이소노카미 신궁의 신역에서 출토. 이 칠지도는 <일본서기>의 神功 황후 52년조 기록에 보이는 칠지도에 해당한다고 여겨진다. 전체 길이 약 75cm, 칼몸 좌웅[ 각 세 개씩 양날의 가지칼(支刀)을 번갈아 뻗쳐 나오게 만든 생김새로 실용적인 칼은 아니다. 칼 몸체의 양면에는 금으로 상감된 60여 字의 銘文이 새겨져 있다.
이 칠지도는 당시 동아시아 각국의 이해와 깊이 관련되어 해석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369년 백제 근초고왕이 왜왕을 위해 만들었다고 추정되며, 일본의 왕에게 선물한 사람은 백제왕자 [기생성음]이라고 한다. 또한 [기생성음]은 근초고왕의 아들로서 제14대 근구수왕이라고 한다. 銘文에서의 泰和 4년은 서기 369년에 해당하는 연도이다.
백제에서 온 '헌상품'으로 보는 설이 있고,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물건'이라는 설, 그 밖에 동진에서 백제왕을 통해 왜왕에게 '하사한 물건'이라는 설이 있으며, 명문을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왜왕에게 '바쳤다(貢上)'는 기사와 단순하게 연결 짓는 점이 비판되고 있다. 일본의 국보
명문
[앞면]
泰(和?)四年 五月 十六日 丙午正陽 造百練鋼七支刀 豈避百兵 宜供供侯王 □□□□作
(태화사년 오월 십일일 병오정양. 조백연철칠지도. 개피백병.의공공후왕.□□□□작.)
[뒷면]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故僞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미유차도.백제왕세자기생성음. 고위왜왕지조.전시후세)
『「태화사년 오월 십일일 병오정양」에 백번(百番)이나 쇠붙이를 단야(鍛冶)하여 이 칠지도를 만들었다. 어찌 「백병」을 피하겠느냐. 마땅히 「후왕」을 받들고 받들라. 선사 이래로 이와 같은 칼은 아직 없었다. 백제왕세자는 신령스럽게 태어난 샘님이다. 그래서 왜왕이 되는 것이고 그런 취지에서 이 칼을 만들었다. 후세에 전하여 보이도록 하라.』
이 칼을 1천6백여년 동안 잘 보존해 오고있는 석상신궁은 백제근초고왕을 시조로 하는 물부수(物部首)로부터 연원이 시작한다. 이 신궁은 물부씨(氏) 그 후손들인 삼(森=모리)씨들이 명치유신 이후 일제시대를 빼고는 그 이전부터 지금 까지 궁사로 신불인 칠지도를 지키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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