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불회사(佛會寺)

영지니 2007. 7. 29. 12:50

 

 

 

 

위 쪽이 男장승. 아래 쪽이 女장승입니다. 부리부리한 눈의 남장승은 근엄하고 역시 같은 눈의 여장승은 웃는 모습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석장승이 일주문을 오랜 동안 대신하지 않았을까요? 사찰의 입구에 석장승이 서있다는 것은 불교가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동안 전통신앙과 융화되고 변화되어가능 과정을 보는 듯하여 흥미롭습니다.

남장승의 앞에는 "下元唐將軍"이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여장승의 앞에는 "周將軍"이라고 각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唐"은 사당가는길을 의미하며 "周"는 꼬불꼬불한 길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현지 안내판)

 

 

 

이 석장승을 지나서 절의 입구로 들어서면 전나무와 비자나무 숲길이 펼쳐 집니다. 금산 보석사나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같은 깊은 맛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벚나무길보다는 이런 길이 훨씬 더 정감이 있으며 산길을 걷는 기쁨이 큽니다.

 

 

진여문 바로 못미쳐 좌측에는 다 스러져 가는 부도 2기를 만날수 있습니다.  

 

비와 바람에 스러지고 무너지고.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하나 두울 올려 온 돌무지만이 지난 세월의 무정함을 말해 줍니다.

 

 

 

이것은 옥개석 두 개만 남아 있군요.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T자형의 건물과 마주 합니다. 불회사의 경내로 들어가는 진여문 입니다.

 

 

 

이 건물은 진여문과 천왕문이 하나의 건물로 합쳐진 것인데 앞의 진여문은 팔작지붕. 뒤의 천왕문은 맞배 지붕의 건물 입니다. 그러니까 두 건물이 건축양식을 달리하면서 하나의 T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위 편액에 쓰인 "덕룡산 불회사"라는 글귀는 南岡 李孝甲선생의 글귀인데 이효갑선생은 현재 광주시에 생존해 계시며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분 입니다.


천왕문안에는 사천왕상이 있는데 다른 사찰은 목조각품인데 비하여 이곳 불회사는 천에 그림으로 그려서 사천왕을 세웠습니다. 

 

 

 

 

 

진여문과 천왕문을 빠져 나오면 바로 가로막는 큰 건물과 마주합니다. 대양루 입니다. 지금 이곳은 사찰 종무소와 다실 그리고 강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양루를 지나서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과 마주하는데 계단을 다 오르면 바로 옆에 보이는 이것은 커다란 맷돌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연자방아에서 사용하던거라고 해야하나요. 연자방아라고하기엔 좀 작고 멧돌이라고하기엔 조금 큽니다.

 

하긴 이정도의 사찰에서 맷돌을 사용하려면 가정에서 사용하던 것 보담은 더 커야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이해가 빨리 옵니다. 어차피 많은 사람의 음식을 조리하기위해서는 더큰 도구가 필요했겠지요.


저 곳에 콩을 갈아서 두부도 만들고 고추도 갈아서 김치도 담그고.

 

 

 

지금은 사용하지않는 굴뚝 입니다.

 

아마도 다른곳 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서 조경물로 사용하는 듯 합니다. 돌로 쌓아서 받침대를 만들고 기와를 얹어서 지붕을 만들고 그리고 다시 길다란 돌을 얹어서 세웠습니다.

 

어느 스님의 작품인지 장난스럽게 하나 하나 돌을 쌓아간 스님의 손길을 느끼는 듯 합니다. 아니면 노스님께서 시간을...세월을....자신을 쌓아가 듯이 쌓았는지도 모르죠.

 

 

 

대웅전을 바라보고 우측에 있는 사운당(공양간) 입니다. 공양간이라기보담은 요사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낮의 적막함이 그대로 내려 앉은 듯 아니면 아침과 점심 공양이 모두 끝난 후의 뒷 이야기로 저녁공양을 준비하는 듯. 그렇게 나즈막히 깔리는 침묵 속에서 그림자가 길게 늘어 집니다.

 

佛會寺......


불회사 설립의 기원은 1978년 불회사 큰법당 번와 불사 때 발견한 상량문 입니다. 그 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불회사는 동진 태화 원년(서기 366년) 마라난타스님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상량문의 기록이 확실하다면 법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람인 동시에 우리나라 불교의 기원을 6년정도 앞당기게 된다고 합니다.

 

한낮의 따사로움이 사라지고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무렵. 정막과 바람 소리만이 사찰의 안마당을 헤집고 사라집니다.

 

 

 

2단의 돌계단위에 자리 잡은 대웅전은 전3, 측2칸의 팔작 다포집입니다. 처마의 휘감아 올라간 곡선이 예사롭지않습니다.

 

 

 

 
법회사 대웅전 앞에서 3종류의 괘불석이 있습니다. 괘불석은 괘불을 세울 때 쓰는 것인데 3종류나 있다는것은 그만큼 괘불을 많이 사용했다는 의미이며 그만큼 불사가 많았고 가근방의 대사찰임을 알려 줍니다. 대웅전 뒷전에 보면 괘불함이 지금도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대웅전 처마끝의 외출목과 용머리 장식 입니다.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 정조 22년(무오 서기 1798년)에 세워진 건물 입니다. 그렇다면 약 200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에 견디며 견고하게 이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 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님들이 저 문고리를 잡았으며 저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무슨 마음으로 도량으로 들어섰을까요? 이제는 녹슬고 닮아서 헤어진 저 문고리 하나로 지난 세월을 뒤돌아 봅니다.

 

 

 

 

또한 대웅전뒤에는 동백숲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휘돌아있습니다. 아직도 동백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실수 있습니다. 선운사의 동백 못지않군요.

 

붉은 동백이 하나 하나 떨어질 때마다 내 눈물과 피가 떨어진다고 어느 시인이 이야기 했던가요? 

 

 

 

 

 

명부전 입니다.

 

 

 

영산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 응향각 입니다.

 

 

 

깨끗하게 빗질 된 요사채 안에는 정막 만이 휘돌아 갑니다. 살그마니 발 한자욱을 들여 봅니다. 마치 금지된 구역을 들어가는 심정 입니다. 아니면 가서는 아니되는 구역을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응향각 기둥에 걸린 귀면상의 목가면 입니다. 무슨 용도로 사용하던 것일까요? 실제로 사람이 사용했을까요?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고 그 낡음으로 보아서는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무도 그 연유를 말하여 주지 않습니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앞 산에는 아직도 산벚꽃이 군데 군데 피어 녹음이 들어가는 봄날 뒷고리의 실록을 보여 줍니다. 

 

 

 

 

비로천이라 이름지워진 약수 한모금에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합니다.

 

 

 

자료참조:

http://www.bulhoesa.org/-나주불회사 공식 홈페이지

http://visitkorea.or.kr/-한국관광공사여행정보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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