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할한국사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꿈: 당나라를 멸망시켜라

영지니 2007. 12. 30. 22:14
글을 읽고 잊혀진 우리민족의 영웅 이정기 장군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정기가 당나라를 멸망시키려 했듯, 우리 또한 중국의 동북공정을 분쇄합시다.

 

소위 지나(중국)의 역사침탈의 핵심인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인정하는 우리나라 역사인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억지 주장하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지나의 동북공정을 보며 난 잊혀진 우리민족 최고의 영웅 이정기(李正己) 장군을 떠올렸다.

고구려가 망한지 약 100여년 후인 765년 이정기는 거병하여 평로치청을 장악, 그 곳의 절도사로 추대되었고, 얼마 안 있어 주변 15개주를 장악하여 명실상부 독립국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당시 이정기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정기 왕국이 붕괴된 후 당 조정은 너무 기뻐 3일 동안 잔치를 벌였으니, 이정기와 그의 왕국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알 수 있다.

 지나의 동북공정을 보며, 본인은 지나의 동북공정에 대응방안으로 이정기 장군을 떠올렸다.

짧은 시간 안에 당나라 15개주를 차지하여, 당나라를 압박한 이정기 장군이야말로 지나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대상이었으랴....

 이정기 장군은 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시다. 물론 그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김병호씨가 쓴 고구려를 위하여 라는 소설을 통해서이다. 소설을 보며, 우리민족에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을 했고, 한편으로는 이런 위대한 영웅이 잊혀진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니 민족적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그 후 본인 나름대로 이정기 장군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았고, 본인의 지식이 얕으나 이정기와 그가 세운 왕국(제)에 대한 역사를 간추려 올린다.

 

고구려 멸망 98년 후 당나라 심장부에 고구려 유민왕국이 세워졌으니 그 왕국은 제국이다.

제국은 55년간 당나라 심장부에 위치하며 천하를 호령한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인 이정기 장군이 당나라의 심장부인 지금의 산동반도에 치청국을 세웠다.
 원래 이정기는 15주를 다스리는 치청의 막강한 절도사였다.
 그런데 755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그 틈을 노려 고구려 유민 이정기는 옛 고구려 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지금의 산동반도 일대 당시 당나라의 심장부에 고구려 유민왕국 치청국을 세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관이자, 고모의 아들인 후희일을 죽이고 치청국을 세움으로써 고구려의 영광을 알렸다. 치청국은 765년에 건국하여 819년까지 약 55년간 당나라 심장부에 위치하여 당을 벌벌 떨게 만든 군사강국이었다.
 이정기 왕국 즉 치청국이 자리한 산동반도는 당시 당나라 경제의 물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금의 산지였습니다. 또한 당의 젖줄 강남과 연결된 통제거가 지나는 당나라의 요충지이자 심장부였다. 이처럼 이정기 왕국의 지리적 요건은 대단히 유리하였다.
이정기 장군은 49세 당나라 정벌 준비를 하던 중 등창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그의 아들 이납이 다음 왕으로 즉위하게된다.


 

 이납은 국호를 제(濟)라 선포하였으니 이는 당에게서 자립하여 독립국을 세운 것이다. (제국의 크기는 오늘날 한반도 크기 정도)
 이납이 국호를 정한 것은 치청 아니 제국이 당나라의 지방정권이 아니라 당과 대등한 국가임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이납은 당나라의 물자보급로를 끊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제나라가 위치한 곳은 당나라의 물자수송로를 지나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납이 당나라의 물자보급로를 끊음으로써 당나라 장안성의 주민들은 1년동안 굶주렸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납 때 당나라를 압박하여 당시 당나라의 황제 덕종은 수도를 장안에서 장안의 서북쪽에 위치한 봉천으로 도망가기도 하였다.
 한 나라의 임금이 다른 나라의 위협이 두려워 수도를 옮겼다?
 이는 당시 제나라가 당과 대등한 엄청난 군사강국이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겠다.

 

이납이 죽자 그의 첫째 아들 이사고가 제나라 2대 왕으로 즉위했다.
이사고는 당나라의 양주를 점령하였고, 그래서 당시 당 조정은 이사고에 사신을 보내 회유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은 제국에 꼼짝을 못했다.
 

이사고가 죽자 그의 이복동생 이사도가 아무도 모르게 제국의 3대왕으로 등극하였다
그의 영웅적 기상은 할아버지 이정기를 뛰어넘는 인물이었다.

 만약 그가 이정기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이정기는 자신이 죽었어도 그 대업을 이사도에게 맡겨 당을 정복할 수 있었으랴... 하지만 불행히도 시대가 달랐다. 이사도가 왕위에 오르는 시대에 당은 다시 도약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이사도는 낙양의 물자보관소 하음을 공략하였다. 여기서 낙양은 장안에서 동쪽으 로 얼마안되는 거리에 위치한 당나라 2번째 도시이다. 그런데이사도가 낙양을 공격했다는 것 그것은 이사도가 마음만 먹으면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공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나라의 낙양이 제나라에게 공략당했다는 것에 대해 당시 당 조정은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당나라 조정은 제국이 차지한 낙양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래서 당나라 황제는 낙양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듯 제국은 군사강국이었으며 제왕 이사도는 당 황제를 뛰어넘는 권력과 위세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강성한 제나라- 이정기 왕국- 또한 망국의 길을 벗어날 수 없었으니........

819년 제국의 도지병마사 유오가 이사도와 그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제국의 영광은 55년만에 끝나고 말았다. 제국의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당 조정은 기뻐서 3일 간잔치를 했다고 전해진다.
유오는 중국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반란을 꾸미려 한것을 입수한 이사도는 그를 소환했고 유오는 이사도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이가도 앞으로 가 칼로 이사도 를 죽였다.  그리고 당에 항복한 후 당은 제국의 고구려계 장군 1200명을 대량학살 했다.

여기서 당이 제국의 고구려계 장군을 학살했다는 것에서 제국이 고구려 유민이 세운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정통 역사서인 신,구당서,자치통감,책부원구,태평어람 등을 보면 제나라가 존재했다고 기록했으며 제나라를 세운 이정기가 "고구려인"이라고 뚜렷이 기록 되어 있다.
당시 제나라가 위치한 산동지방은 모든 경제의 물산이자 물자 수송통로 였고, 거기다가 소금의 산지였다. 이들 요소는 제나라의 경제를 살찌웠고 제나라는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나라를 압박하는 군사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55년 밖에 유지하지 못했지만 이정기와 그의 후손이 세운 치청왕국(제나라)은 당나라를 능가하는 국력을 가졌으며, 당이 두려워한 국가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치청 왕국은 자신의 선조 나라처럼 같은 동이족 계열인 신라가 이민족인 당나라와 손을 잡아 멸망시키고 말았으니, 한민족의 역사가 어찌 이리 기구한 것인가?

 

이정기는 고구려 멸망 후 당에 충성하며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들(고선지, 왕사레, 연남생, 연헌성)과 그 격이 달랐다. 그는 고구려 멸망 100년 후에도 고구려 정신을 잊지 않았으며, 다른 고구려 유민들이 당에 충성하여 출세하고자 할 때 그는 고구려를 부활시키고자 하였다.

그의 정신과 노력은 고선지,왕사례와 비할 바 못된다. 오히려 이 점이 이정기 장군의 위대함이요 뛰어남이라고 본다.

이렇듯 뛰어난 영웅이 우리민족의 뇌리 속에 지워지고, 잊혀진 것이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고선지는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 정작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고, 그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이정기 장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그 누가 있으랴.............)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선 단순히 고구려 역사만 아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정기 장군과 같은 잊혀진 영웅들을 기억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대대적으로 연구해야 함이 동북공정에 대응방안 일 것이다.

 

본인은 동북공정 대응방책으로 앞서 말한 바 대로 이정기 장군을 모델로 하여 대응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대응책이라 할 수 있겠다고 본다. 당나라가 이정기 장군을 두려워했듯이 우리도 고구려사를 연구하여 지나가 똑 소리 못하고, 우리 민족의 저력을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가 동북공정이라는 늪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이정기(李正己), 한민족이 낳은 위대한 영웅, 중원을 호령한 한민족 성웅

나는 오늘도 이정기 장군의 부활을 꿈꾼다.

이정기(李正己), 나는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많은 사람들에게 이정기를 알릴 것이다.

이정기 장군은 동북공정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안내자로써의 역할을 할 것이고, 이정기 장군의 부활은 한민족의 비상(飛上)이라 믿는다.

 

출처 : 이선생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