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

청와대 이발사 朴秀雄씨가 본 「인간 朴正熙」(상)

영지니 2007. 3. 5. 22:38

청와대 이발사 朴秀雄씨가 본 「인간 朴正熙」(상)

 

 

 

어르신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대통령은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부속실로 하여금 이발하러 가겠다는 연락을 한 뒤 5분 정도만 늦어질 것 같아도 직접 이발관에 오셔서 「박군, 지금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거래이」하시면서 양해를 구하십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권의식 가진 사람을 유달리 싫어하셨습니다. 15년 동안 그분을 곁에서 모셨지만 권위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았습니다』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최고 권력자 4명의 이발을 한 진짜 권력자

 

『그분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자상하셨고 情도 많으셨습니다. 특히 절약 하는 데는 아마 그분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늘 윗옷을 벗고 러닝 셔츠 차림으로 이발관에 오셨는데, 해진 러닝 셔츠를 입고 계신 적이 많았습니다. 허리띠도 얼마나 사용 하셨던 지 허리띠 구멍이 사람의 새끼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크게 나 있었습니다. 절대권력자가 이처럼 검소 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머리를 15년간 만져 온 朴대통령의 전용 이발사 朴秀雄(박수웅ㆍ64)씨는 朴대통령을 모셔온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두 눈 에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陸英修(육영수) 여사가 北韓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계 文世光(문세광)의 총 탄에 맞아 유명을 달리한 1974년 8월15일 아침 그는 朴대통령의 머리를 빗겨드렸으며, 朴대통령이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 金載圭(김 재규)의 총에 맞은 그 날 아침에도 朴대통령의 머리를 만져 드렸다고 한다 . 朴대통령이 유달리 사랑한 외아들 志晩(지만)씨가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陸英修 여사의 안내로 志晩씨의 이발을 해주었고, 陸여사의 장례일에는 朴 대통령의 뜻에 따라 喪主(상주)인 志晩씨의 머리를 눈물로 만져 주었다는 것.

 

 

최고 권력자 4명의 이발을 한 진짜 권력자

 

朴正熙 대통령의 전용 이발사 朴秀雄씨는 朴대통령 이외에도 崔圭夏(최규하 )ㆍ全斗煥(전두환)ㆍ盧泰愚(노태우) 前 대통령의 이발도 잠시나마 맡아 해 전직 대통령 4명의 머리를 이리저리 주물러 온 별난 履歷(이력)을 가지게 됐다. 권력자로부터 無限(무한) 신임을 받았던 그 어느 누구도 朴씨만큼 권력자를 마음대로 움직여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발을 하기 위해서는 천하 없는 사람도 이발사가 의도하는 대로 머리를 이리저리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朴씨는 대한민국의 권력자 중 최고의 권력(?)을 누렸었다고 할 수도 있다.

 

朴씨는 2001년 9월27일 오후 3시부터 세 시간 여 동안 조선일보사 미술관 뒤 편 벤치에 앉아 기자와 얘기를 나눴다. 朴씨는 인터뷰 도중 世波(세파)를 대변하듯 투박하고 두툼한 손등을 눈으로 자주 가져가 좌우로 훔치곤 했다 . 그는 朴대통령이 돌아가신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朴대통령 묘소를 찾아 막걸리 한 잔을 올린 뒤 자신의 身邊( 신변)에 관한 보고를 드려 왔다고 한다.

 

朴씨가 대통령 전용 이발사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출신인 朴씨는 한림면 가산초등학교와 부산 금성고등학 교를 졸업한 뒤 부산과 제주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21세 때인 1958년 서울로 와 효자이발관에 취직했다. 당시 효자이발관은 청와대에서 볼 때 정문 大路 오른쪽 모퉁이에 있었으며, 서울에서는 최고급 수준이었다고 한다.

 

효자이발관에서 항상 청와대를 바라보며 근무하던 朴씨는 자신의 손으로 반드시 이 나라 최고 어른인 대통령의 머리를 한 번만이라도 깎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1963년 12월17일 오후 2시 중앙청 앞 광장에서 제 5代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朴正熙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오던 날 그는 자신의 후배 이발사와 면도사 13명에게 흰 가운을 입힌 채로 이발관 앞 도로변에 일렬로 도열시켜 朴대통령 부부에게 박수를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朴씨는 이 일이 있은 직후 효자이발관 바로 옆에 다른 이발관을 내 독립했고 이때 예쁘장하게 생긴 유치원생 남자 어린이의 이발을 하게 된다. 이 남자 유치원생이 朴대통령의 외동아들이라는 사실은 두 달 여쯤 지난 뒤에야 알았다고 한다. 당시 경복초등학교 부설 유치원 생이던 志晩 어린이는 이발 도중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바람에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을 부탁한 陸여사

 

朴씨는 보름 간격으로 이발소를 찾는 志晩 어린이의 이발을 별 탈 없이 하기 위해 동화책을 읽었고, 이 동화를 志晩 어린이에게 들려 주었다. 어린 손님은 이발사 아저씨가 들려 주는 동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가만히 앉아 있었고 이때를 틈타 이발사 아저씨는 귀한 어린 손님의 이발을 순식간에 마무리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발사 아저씨가 어린 손님에게 주로 들려 준 이야기는 「여우가 사람 잡아 먹는다」는 것 등이었다.

 

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 1964년 5월10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쯤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잘 차려 입은 건장한 사람이 이발관으로 찾아와 『급히 이발을 해야 할 사람이 있다』 며 같이 가줄 것을 요청해 밖으로 나가 보니 잉크색 지프차가 이발소 앞에 대기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지프차에 오르자 지프차가 청와대 정문을 거쳐 한 건물 앞에 멈췄고 자신은 건장한 사람을 따라 건물(부속실)로 올라갔다.

 

떨려서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 『朴군, 왜 내가 싫은가?』

 

朴씨는 부속실로 들어가면서 평소 아침마다 자신의 이발관에 와 머리를 손질하던 李東元(이동원) 비서실장이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 李 실장이 1963년 12월 비서실장 직을 그만두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방안을 둘러보니 3평 남짓한 방안의 벽에는 조그마한 거울이 걸려 있고 한 가운데에는 낡은 의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이곳이 이발을 하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

 

―그때 朴대통령을 처음 대면하게 되었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대통령의 머리를 제 손으로 한 번만이라도 만져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이제야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조그마한 실수라도 할 경우 제 발로 걸어서 나가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지요.

 

방안에서 한 5분쯤 기다리고 있으니까 자그마한 사람이 하얀 러닝 셔츠 차림으로 혼자서 들어왔습니다. 직감적으로 이분이 朴대통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인사말은 건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저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자네 이름이 뭔가」고 물어 오셨습니다. 저는 제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이발사입니다」

말씀 드렸지요 .

 

조금 있으니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陸英修 여사께서 방안으로 들어오시면서 저를 보고 「朴 선생이시죠. 이발을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지만이에게 재미있는 얘기도 많이 들려 주신다면서요. 이 어르신을 잘 부탁 드립니다」고 인사를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朴씨는 이렇게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처음 하게 되었고, 가슴이 떨려 어떻게 이발을 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을 가누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陸여사가 밖으로 나가 두 개의 양동이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담아와 그 물로 朴 대통령의 머리를 감겨 주었다는 것. 陸 여사가 손수 물을 떠오는 바람에 더욱 황송했었다고 한다.

 

朴씨는 자신이 朴 대통령의 전용 이발사가 된 배경에는 陸英修 여사의 지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당시 朴대통령의 이발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이발사가 여성이어서 陸 여사는 여성 이발사를 남자로 교체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에 志晩 어린이의 이발을 정성스럽게 해주는 朴씨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陸 여사는 朴 대통령의 女이발사를 교체하기 위해 이날 이 女이발사를 집에서 쉬게 하고 대신 朴씨를 급하게 불러올렸다. 물론 朴 대통령에게는 女이발사 가 몸이 아파 이발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둘러댔다는 것.

 

朴씨는 이후 청와대 內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어 준공한 1969년 이전까지는 자신이 운영하던 이발관에서 일을 하면서 대통령이 찾을 때마다 청와대로 가 이발을 했다.

 

『朴군, 왜 내가 싫은가?』

 

―정식 직원으로 청와대에 상주하면서 이발을 하기 시작한 것은 朴正熙 대통령의 권유 때문이었습니까?

 

1969년 청와대 內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간이 이발관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15평 규모의 전용 이발관이 마련된 직후 하루는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시기 위해 저를 찾는다는 전갈이 부속실에서 왔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청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朴 대통령께서는 이발을 하시기 위해 이발관으로 들어오셔서는 저를 보고 「朴군, 이제 이발 시설도 갖추고 했으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이곳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떤가?」고 물어 오셨습니다. 제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대통령께서 재차 「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싫은가?」고 하시더군요. 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지시를 받들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죠.

 

朴 대통령께서는 제가 머뭇거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朴군, 왜 내가 싫은가?」고 다시 말씀이 계시길래 제가 「그런 것이 아니고 어르신을 모시려면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제가 청와대 앞에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발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방안이 언뜻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린 것이지 결코 어르신을 모시는 것이 싫어서가 아닙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말을 들으신 뒤 朴 대통령께서 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시더니 「걱정 했잖아, 자네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 줄 알고. 내일 당장 짐을 이곳으로 옮기도록 해」라고 하시면서 의자에 앉으시더군요. 이발을 마치자 「내일 보세」라고 짧은 한 말씀을 남기시고는 집무실로 돌아가셨습니다』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운영하던 이발소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는 그날로 이발관 문을 닫아 버렸다고 한다. 朴씨는 이날부터 1979년 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이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他界하는 날까지 항상 朴대통령 곁에서 생활했었다.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朴대통령은 주로 언제 이발을 했습니까?

 

『이발을 하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이발은 주로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는 이틀에 한 번 꼴로 하셨는데, 아침 식사를 하시기 전에 하셨고 소요시간은 30분 정도였습니다. 물론 國事(국사)로 바쁘실 때에는 한 달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으신 적도 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히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뜨거운 물에 담가 그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른 다음 스킨을 머리에 바르는 것으로 이발을 끝냅니다. 대통령께서는 스킨 로션도 비싼 외제 같은 것은 싫어 하시고 그 당시 국산 중에서도 가장 값이 싼 특정회사의 제품을 좋아 하셨습니다. 향기가 마음에 드신다나요. 비서실 내에 전용 이발 공간이 마련되면서 직원도 저를 포함해 남자 이발사 3명, 여자 면도사 2명 등 5명으로 늘렸습니다. 비서실 간부들의 이발을 맡았습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제가 朴대통령의 이발도 하고 면도도 했지만 면도를 하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1968년 초에 대통령께 「어르신, 저는 면도는 못 하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직접 면도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 그래 알았네」 하시면서 면도칼을 손에 들고 거울을 보시면서 직접 면도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면도를 못 하겠다고 한 것은 실수가 두려워서입니다. 만약 면도를 하다 朴대통령의 얼굴에 상처라도 냈다고 가정해 보세요. 반창고를 붙인 朴대통령의 얼굴이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어르신의 수염이 일반인들처럼 한쪽 방향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엇갈리게 나 있기 때문에 면도하기가 그만큼 어렵기도 했습니다』

 

朴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朴正熙 대통령을 「각하」라고 하지 않고 꼭 「어르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朴대통령이 평소에 가까이서 도와 주는 사람들이 「각하」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해 어르신 」이라고 부른 것이 입에 익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朴正熙 대통령께 좋아하신 머리 스타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제가 朴대통령을 모시면서 대통령께서 저에게 머리 스타일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시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제가 하는 대로 맡겨 놓으셨습니다. 다만 머릿기름을 바르는 것과 중간 가르마를 타는 것은 싫어하셨습니다』

 

―이발을 하는 도중 朴대통령은 어떤 말씀을 주로 하셨습니까?

 

『평소에는 말씀이 없으십니다. 朴대통령께서 이발관으로 가셨다는 연락이 부속실에서 오면 저희들은 서둘러 이발관을 깨끗이 정돈한 뒤 출입구 안쪽에 도열해서 기다리다 대통령께서 이발관으로 들어오시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朴대통령은 「어 그래, 잘들 있었나」 이 한 마디만 하신 뒤 곧 바로 의자에 앉으십니다. 朴대통령은 의자에 앉을 때 허리를 직각으로 곧추세우신 채로 이발이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으셨죠』

 

―朴대통령이 이발을 할 때 陸英修 여사도 자주 이발관에 오시곤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랬습니다. 陸여사께서 자주 이발관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朴대통령 머리 만져드릴 수건을 적당한 온도의 물에 적셔 저에게 주시곤 하셨습니다.

 여름에도 절전운동 때문에 이발관에 에어컨을 잘 가동하지 않았는데, 陸여사께서 선풍기를 들고 오셔서 朴대통령에게 틀어 주신 적도 많았습니다』

 

 

『朴대통령은 곱슬머리』/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陸英修 여사께서 이발관에 오시면 朴대통령은 陸여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朴대통령께서는 참 무뚝뚝한 분입니다. 陸여사께서 선풍기도 틀어 주시고 하면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는 하셔도 흉이 안 되는데 그런 말씀도 없으십니다. 그냥 묵묵히 앉아 이발만 하시죠.

 

 

한 번은 제가 陸여사께「어르신의 머리가 곱슬이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스타일을 내기가 어렵습니다」고 말씀을 건넸더니 陸여사께서「결혼할 때는 곱슬머리가 아니었는데 나이를 드시면서 곱슬머리로 변하더군요. 참 이상도 하지요」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계시던 朴대통령께서「곱슬머리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그게 뭐 그리 이상하다고」하시며 웃으셨던 것이 기억 납니다.

 

곱슬머리 얘기가 나오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곱슬머리는 보통 머리보다 이발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꾀를 내 대통령의 머리를 야금야금 조금씩 짧게 잘랐습니다. 제가 이발을 편하게하기 위해서 였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朴군, 너무 짧게 자르지는 마래이」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하신 기억도 있습니다』

 

朴씨는 얘기를 하던 도중 한가지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소개해주었다. 신축한 비서실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966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때는 전용 이발 공간이 갖추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머리 감을 때 사용하는 샤워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더운물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이날도 陸여사가 더운물과 찬물을 양동이에 받아와 세면대에 담아 놓았는데 머리를 감던 중 朴대통령이 비눗물에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허리를 다쳐 몇 달을 고생한 적이 있다는 것.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 타일이 부착돼 있지 않은데다 세면대도 낮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는 것.

 

朴씨는 당시 이 나라 최고 권력자가 이처럼 낡은 시설에서 이발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계속>

 

 

출처 : 흙에서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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