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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대성당 [Stephansdom] 비엔나 - 오스트리아

영지니 2012. 1. 28. 21:23

 

 

 

11 슈테판 대성당 [Stephansdom]

비엔나의 명동이라는 거리에서 내려 세계의 내노라는 명품들을 눈요기 하면서, 따가운 태양을 차양으로 가린 노천 카페에서 여유로움을 즐기는 많은 선남선녀들을 보면서 한참을 걸어가니 멀리 뽀죽 탑이 높은 건물들 위로 보이기 시작 한다.

가이드가 일행을 Swarovski라는 크스탈을 전문으로 하는 보석상으로 안내를 한다.

보석과는 상관없는 나인지라 30분의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아까 꼭대기만 보이던 건물을 찿아 나섰다.

 

바삐 걸어가 보니 눈앞에 떠억 버티고 선 커다란 성당, 바로 스테판 성당이다.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테판(개신교에서는 스데반 집사라고 부른다.)을 기념하여 지은 성당으로 ‘비엔나의 혼()’이라고 부를 정도로 웅장한, 오스트리아 최대의 성당으로, 1147년 건설을 시작하였으나 1258년 빈을 휩쓸었던 대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263년 보헤미아 왕에 의해 재건되었다.

그 후 1359년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헐어버리고 지금의 고딕양식으로 개축하였으나, 1683년에는 터키군에게 파괴당하고, 1945년에는 독일군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던 불운의 성당이다.

허나 전쟁이 끝난 후 복구를 시작하여 대부분 옛 모습을 찾았으나 아직까지도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복구중인 외벽을 위해 설치된 철골물을 감싼 휘장이, 그냥 가림막이 아니라 그 가림막에 성당의 모습을 그려넣어 외관을 못보는 한시적인 관광객들을  배려한 점이 특이하였다.

 

건물의 길이가 107m, 천정 높이가 39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은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과 25만 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 오후의 태양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밝은 밖에 있다가 들어가니, 갑작이 어두워진 시야로 보이는 건물 내부에는 16세기의 조각가 안톤 필그람이 만든 석조 부조의 설교대를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성인들의 조각상들...그리고 곳곳에 만들어 진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답게 광채를 더 하고 있는 성당 안의 모습은 장엄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지하에1450년에 만든 유골 안치소 카타콤에는, 페스트로 죽은 사람의 유골 약 2,000구와 합스부르크 왕가 황제들의 유해 가운데 심장 등의 내장을 담은 항아리 및 백골이 쌓여 있단다.

왜 성당안에는 이렇게 무덤이 많을까?

 

모차르트의 결혼식(1782)과 장례식(1791)이 치러진 성당이며, 비엔나 시민들은 매년 12 31일이면 이 성당 앞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는것으로 유명한 스테판(스데반)성당.  성당을 돌아가면서 부조된 조각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이야기 하여 주고 있는데…. 그 사연을 다 들추어 낼 시간이 내게는 없으니 어이할꼬!

 

화려하기가, 그리고 고급스러움이 한국의 명동 같다는 것이지 이네들이 지어 놓은 건물들의 예술성이나 웅장함은 한국의 고적과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허기사 이네들도 요즈음에는 이런 옛 건물을 짓지 못하지만….

고색 창연한 건물에, 현대의 편리함을 도입하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다 한번은 갖이고 싶어 하는 고급스러운 명품들로 즐비한 소비의 거리였다.

그 거리의 중앙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게 서 있는 스테반 성당에는 예배자가 아닌 관광객으로 차 있고…..

 

아마도 요즈음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무슨 명동 타령이냐고 할 것이다.

강남에 명동보다 더 고급이 많은데….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1970년 대 말에 한국을 떠난 사람이기에 그의 머리 속에는 그 당시 유명한 명동이 대명사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60년대에 떠난 나에게도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비엔나의 관광이 끝나는 모양이다.

쉔브른정원과 요한스트라우스 공원, 비엔나의 명동과 성 스테판 교회.

가지수로 따지면 4가지나 된다지만…..

너무나도 아쉬움이 큰 비엔나였다.

결국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와서 음악에 관한 것이라고는 요한스트라우스의 동상을 보고 그 앞에서 사진 한장 찍은 것 밖에는 없이 비엔나를 떠나게 되었으니....

여행의 막바지에 들어 있는 짤즈브르크로 가면 좀 어떠려는지…..

어짜피 부족한 부분은 책에서 읽은 지식 속으로 빠져드는 환상의 여행으로 보충하여야 할 모양이다.그네들이 숨쉬고 살았던 그 도시에서 나도 숨을 한번 쉬어 보았다는 것으로 자위하면서 말이다.귀에 꼽은 MP3로 흥겨운 요한스트라우스의 멜로디를 들으면서 기분을 달래어야지….

 

점심 후에 버스는 또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우리들이 즐겨 먹는 크로산(Croissant), 즉 초승달빵의 유래가 이곳 비엔나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스만 터키군이 비엔나로 침공해 왔을 때 전 도시가 포위되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도시의 사람들이 오스만 터키의 국기에 있는 달 모양으로 빵을 만들어 씹어 먹으면서 이를 갈았다고 한다.그네들의 집념이 결국은 오스만 터키의 침공을 막을 수 있었던지도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