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 지장보살삼존도)
▲ 지장보살삼존도(보물 제1287호) 고려 14세기, 98.9 x 50.2cm 개인소장.
보물 제1287호< 지장보살삼존도 地藏菩薩三尊圖 >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는 명작이다.
이쯤 되면 예배 대상으로서의 지장보살도가 아니라
회화적으로 재해석된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본래 지장보살은 지옥에 빠진 중생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하여 삭발한 스님이나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명부(冥府)의 세계를 주재하면서 염라대왕, 평등대왕 등
시왕(十王)을 거느리며 저승에 온 자를 49일간 심판하여 천상의 자리를 배정한다.
절에서 49재를 지내는 근거가 여기에 있으며
이 때문에 지장보살은 구복신앙으로 인기가 높았다.
대부분의 지장보살도는 독존상으로 표현되거나 20명이 넘는 권속(眷屬)들을
지장보살 무릎 아래에 밀집시킨 상하 2단 구도로 지장보살의 권위를 한껏 드높인다.
그러나 이 <지장보살삼존도>는 많은 권속 중 오직 비서실장격인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 둘만 거느린 간명한 구성이다.
고려불화로는 아주 예외적으로 좌우대칭에서 벗어난 동적인 구도를 하고 있다.
금강대좌 위에 반가부좌를 한 젊고 잘생긴 스님 모습의 지장보살이
오른손에 여의주를 들고 있는데, 왼편의 도명존자는 지장보살이 항시
지니고 다니는 고리가 6개인 육환장(六環杖)이라는 지팡이를 대신 받들고서
지장보살을 올려다보고 있다. 무독귀왕은 금으로 만든 경전합을 정중히 모시고
지장보살을 보필하고 있다.
화면에는 붉은색과 초록색이 주조를 이루는데, 복식에 두 색이 교차하며
어울리는 것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지장보살의 발아래 초록빛 연잎 위로
봉긋이 솟아오른 하얀 연꽃봉오리가 아주 인상적이다.
붉은색이건 초록색이건 짙고 묵직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지장보살이 받들고 있는여의주와 둥근 귀걸이의 흰색도 눈부시게 빛나 보인다.
화면 아래쪽에는 사자 한 마리가 혀를 길게 내밀고 넙죽 엎드려 있어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엄격하고도 경직된 불교 도상 체계를 스토리텔링으로풀어낸 작품이다.
이처럼 능숙하게 구도를 변형시킨 고려불화는 이 작품 외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유홍준의 국보순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