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크리닉

에나멜정의 애로여행

영지니 2007. 3. 17. 20:47

 

 

에나멜정의 애로여행 ) 야단법석 예식문화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유난했던 올여름 더위를 뒤로 하고 이제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올가을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커플들은 지금부터가 한창 바쁜 때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니 결혼 한두 달 전이 제일 분주할 때라고 한다.

필자가 사춘기였을 시절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천사의 날개옷처럼 마냥 눈부시기만 했다. 그러나 웨딩드레스에도 가격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됐다. 때묻고 낡은 웨딩드레스를 입을 것이냐 최고급 원단으로 나만의 웨딩드레스를 맞춰 입을 것이냐의 문제는 아름답고 성스러워야 할 결혼식의 이면에 상당한 현실적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결혼식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함은 물론이요,주변의 이목,전통과 절차까지 신경 써야 하는 쉽지 않은 숙제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함께 일생을 보내고자 마음을 합하여 작은 보금자리와 몇가지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평소 감사하게 생각했던 이들을 초청하여 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앞으로도 잘 보살펴주십사 따뜻한 식사 한끼 대접하는 것이 결혼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주인공 둘에게만 초첨이 맞춰져 있지 못하다. 고부 갈등의 시작인 예단문제부터 양식결혼식과 전통혼례를 뒤섞어 놓은 장황한 결혼 절차,본전 생각에 남발하는 청첩장과 축의금 문제 등 수도 없다.

결혼식은 어떤가? 무질서하고 시끌벅적한 모습이 미덕이라도 되듯 몰려다니는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역시 하객으로 참석한 필자이지만 슬슬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더구나 하객들 중 상당수는 신랑과 신부가 알아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돈이 많아 특급 호텔에서 여유와 호사를 부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는데,예식장에서는 신부 입장부터 사진촬영까지 채 30분도 안 된다. 아직 신부가 식장을 빠져나가지도 않았는데 식장 입구에는 다음 결혼식의 하객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주례 선생이 어떤 말을 남겼는지 누가 누구의 하객인지 관심 있는 사람도 또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신랑신부는 고마운 이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어디론가 끌려가 전통 혼례복으로 갈아 입혀지고 이내 절을 하느라 바쁘다. 누구에게 절을 올리는지 절을 몇 번 했는지 알 턱이 없다.

필자도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이지만 사춘기 시절에 느꼈던 가슴 설렘은 없다. 설렘 대신에 두려움이 자리잡았다. ‘정말 저런 식으로 결혼하고 싶지는 않은데…’. 친구의 결혼식에 가서 이런 혼잣말을 내뱉는다. 그래서 친구에게 문득 미안하기도 했다. 그녀 역시 얼마나 많은 포기와 타협을 거쳐왔겠느냔 말이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그제서야 짧은 한숨과 함께 여유를 되찾는 신부에게 필자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은 유쾌하지 못했다.

 

 

 

[에나멜정의 애로여행](85) 신혼의 행복보다 10년뒤를 생각해 결혼하라

결혼하기가 무서운 세상이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막상 그 수치를 접하고 나면 남 일이려니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결혼하는 커플이 약 800쌍인데,하루 평균 398쌍이 끝내 이혼으로 치닫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구 통계적으로 보면 1000명당 이혼 건수가 3건이다. 그러니 가정법원을 들른 이들이 빼놓지 않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이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는 말이라고 한다. 매일매일 두 쌍 중 한 쌍이 남이 되어가고 있었다니 그 말도 실감이 간다.

우리나라의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가 30.1세 여자가 27.3세이고 10년 전보다 남녀 모두 2살 정도 높아졌다. 또 한가지,2002년 이루어진 결혼 중 25.9%가 동갑이나 연상의 여성과 이뤄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평균 이혼 연령은 어떨까? 남자가 41.3세, 여자가 37.9세다. 이쯤 되면 왜 ‘10년만 버텨라’인지 알고도 남는다. 매일매일 혼인서약을 하는 800쌍의 커플 중 절반이 10년쯤 지나면 아이는 누가 키우느니,집은 누가 나가느니 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둘로 나누는 작업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결론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니지만 더 황당한 예도 있다. 미국의 팝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그의 연인 제이슨 알렉산더는 결혼 55시간 만에 ‘술’을 핑계로 이혼했다.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이 이혼율 50%라는 단순한 수치만으로도 ‘나는 과연 예외일까’라는 두려운 생각을 갖기에 충분하다. 사랑을 서약할 때는 ‘100%’도 모자랐을 터인데 어찌하여 10년 후에는 고작 ‘50%’란 말인가.

지금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혹은 결혼할 사람과의 10년 후를 생각해 보자. 10년 동안 알뜰살뜰 저축해 10년쯤 후에는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퇴근길 남편을 만나 외식을 하고,주말이면 가끔 계곡과 바다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아이는 건강하고,나는 고상하고 지적으로 중년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가장 보편적이고도 소박한 정서를 가진 우리들의 10년 후 그림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이 정도면 ‘소박’이 아니라 ‘대박’이다.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10년 후의 그림을 좀더 낮게 그려야 할지도 모른다. 100%의 사랑으로 결혼한다고 해서 항상 행복하고 설레는 감정만 샘솟을 수는 없다. 슬프고 어려운 일,감당할 수 없고 급박한 고비를 함께 넘어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쩌면 ‘우린 꼭 행복할거야’ 라는 최면이 면역력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 멜로드라마 속 사랑의 결과가 결혼이던 때는 이미 지났다. 사랑을 쟁취하고 지켜나가는 일은 결혼 후에 오히려 더욱 치열해야 한다. 오늘 결혼하는 800쌍의 부부들이 평생을 함께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namel_je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