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국화는 고려시대부터 술에 이용된 것으로 추측되며, 국화주는 음력 9월 9일 중앙절의 세시주로 내려오고 있다.
“연명국주설(淵明麴酒說)”이란 게 있다.
옛날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당시의 정치에 환멸을 느껴 시골로 들어간 후,
오막살이집의 담 밑에 국화를 심어 즐겨 심었으며, 그 이유가 자신이 술을 매우 즐겼으므로,
술 속에 국화를 넣기 위해 또는 술안주로 국화를 먹기 위해 재배한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이 설의 진의는 접어두더라도 국화가 예로부터 술에 이용되어 온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국화에는 진통작용이 있어 두통, 복통을 가라앉히며 진정, 해열의 목적으로도 쓰인다.
또한 식욕을 증진시키고 건위 정상, 피로회복에도 효과를 나타내며, 오래 복용하면 눈이 밝아지고 건강에 좋다고 한다.
사대부들과 시인들의 완상의 대상이었던 중양절의 세시주
국화는 국화과에 딸린 다년생 풀로서 전세계에 약 200종이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수국, 산국, 울릉국화 등의 야생종이 10여종 있으며 개량품종이 매우 많다.
예로부터 불로장수 및 상서로운 영초로써 상용되고 있으며 약용 및 양조용 향료로 쓰여 왔다.
[본초강목]에도 국화를 이용한 술은 “두풍을 낮게 하고 이목을 밝게 하며, 위비를 제거하고 백병을 없앤다.”고 수록되어 있을 만큼 국화는 동양 특유의 꽃으로 알려졌으며, 근대에는 유럽에서도 재배량이 급속히 늘어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에서는 훌륭한 국화 전시회가 개최되는가 하면, 특히 벨기에서는 국화를 쓴 리큐르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려시대에 국화주가 사대부들과 시인들의 완상의 대상이었음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의 세시주로 깊게 뿌리내렸음을 알 수 있다.
중양절 은 ‘중구(重九)’라고도 하는데, 9(九)는 양(陽)의 수로 이 양의 수가 겹쳤다는 뜻에서 중양, 중구라고 한다.
따라서 이 날은 양기(陽氣)가 아주 강한 날이라고 여겨 명절로 삼았다.
이날 산에 오르는 등고풍속(登高風俗)이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는데, 양의 극치인 태양에 보다 가까이 감으로써 강한 양기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또 이날 산에 올라 만산만야 붉게 물든 단풍을 즐겼으며, ‘상국(賞菊)’이라고 하여 주위에 피어 있는 국화를 감상하는 풍속이 있다.
마을에서도 노인들을 모셔 잔치를 크게 베푸는 동시에, 친족끼리 조상에게 시제(時祭)를 지내기도 한다.
이날 민가에서는 시식을 즐겼는데, 찹쌀가루 반죽에 산에서 채취해 온 국화꽃잎을 얹어 화전(花煎)을 부쳐 먹기도 하고, 잘 익은 술에 국화꽃잎을 띄워 만든 국화주를 마셨다.
이때의 산에 핀 들국화는 향기가 매우 강하여 술을 빚기에 적격이었다.
작고 노랗게 핀 들국화는 감미가 있어 감국(甘菊)이라고 하는데, 이 감국을 따서 씻어 말린 다음 베주머니에 담아 술 위에 띄우는가 하면, 고두밥과 누룩을 버무릴 때 직접 넣어 숙성시킨 방법이 이용되었다.
예를 들어, 활짝 핀 국화(감국, 들국화, 황국)을 채취하여 햇볕이나 그늘에 말려서 숙성된 술에 넣는 것인데, 꽃을 고운 보자기에 싸서 술독에 쑤셔 박거나 주머니에 담아 술독의 술 위에 매달아 하루나 이틀 뒤에 꽃을 들어내면 꽃향기가 술에 배어 가향(佳香)의 국화주가 되는 것이다.
이 외에 현재 경남지방의 토속주로 빚어지고 있는 국화주는 침출법을 이용하고 있는데, 백설기에 누룩을 섞어 만든 밑술에 찹쌀 고두밥과 누룩을 섞고 여기에 감국을 비롯 생지황, 구기자 뿌리와 껍질을 달여 만든 침출액을 넣어 발효 숙성시킨 것으로, 가향주라기 보다는 약용약주류에 속한다.
국화주의 재료들
국화가 없을 경우 구절초를 넣기도 한다.
아름다운 때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백주(白酒)에 노란 국화를 띄워 마시네
국화주를 마시는 풍속은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478년(성종 9)에 서거정(1422~1492)이 신라 때부터 조선 숙종 때까지의 시문(詩文)을 모아 엮은 시문집 [동문선]에 ‘경인 중구(庚寅重九)’라는 시가 있는데, 내용인즉,
“서울에서 병란이 일어나,
사람 죽이기를 삼을 베는 듯하네.
그래도 아름다운 때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백주(白酒)에
노란 국화를 띄워 마시네”
라고 하여 몸에 배인 국화주음의 풍습을 알 수 있고,
[목은선생문집]의 ‘초파일(初八日)’이란 시에도
“노란 국화와 흰 막걸리가 하염없이 생각나니,
내일 중양절이 또 다시 돌아오겠네.
옮겨 심는 것이 늦었으나,
오히려 푸른 꽃술을 따는 것이 낫네.
집이 가난하니 묵은 술을 마셔도 무방하네”
라고 하여, 이미 고려시대 이전부터 국화주음 풍속이 뼛속 깊이 뿌리내렸음을 알 수 있다.
국화주에 대한 또 다른 기록으로 고려시대의 문인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과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국화주가 수록되어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이상국집]에
“추위 견디며 어찌 홀로 꽃피워 낼 줄을 아는가,
차라리 말라붙을지언정 모래에 떨어지지 않네.
모두가 중양절에 술잔을 띄우기 위해서이니,
그렇지 않으면 삼월의 봄꽃이 되었을 것이네.”라고 하였다.
국화주는 이후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데,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요록], [고사십이집], [고려대 규곤요람],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농정회요], [조선세시기] 등에 세시주, 가향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 문헌에 수록된 국화주의 대부분은 ‘화향입주법(花香入酒法)’을 기본으로, 꽃향기를 술로 침출해 내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국화주는 국화꽃을 넣어 빚은 술을 일컫기도 하지만, 운치있게 현장성을 즐기려는 멋에서 술에 국화꽃을 띄워 ‘국화주’라 부르기도 하기도 했다.
특히 문사들 사이에서는 국화주를 벗삼아 시를 짓고, 풍월을 읊는 시주풍류(詩酒風流)를 한껏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의 문신이었던 성삼문(1418~1456)의 [성근보선생집]에 수록된 ‘무계수창시(武溪酬唱詩)에 차운하다’라는 시에,
“세상 번뇌는 스러지고 도의 의미는 깊은데,
하늘은 또 가을 기운으로 내 마음을 맑게 해주네.
술동이엔 중추절 밝은 달빛이 잠기고,
술잔엔 중양절의 국화꽃 향기기 가득하네.
서리에 물든 단풍가지는 임야를 수놓았고,
바람으로 우는 솔잎은 산의 풍류를 보내네.
동문을 일찍이 잠가두지 않았으니,
포로 만든 버선과 짚신 또한 한번쯤 찾아올 것이네.
”라고 하여, 중구에 국화주를 마셨음을 알 수 있고,
김종직(1431~1492)의 [점필재집]에도
대관림에서 술을 받아 마시니 깊은 가을에 초목들은 푸른빛이네.
어찌 꼭 그대 즐기는 것이 관현악 소리뿐이겠는가?
단풍소리도 쓸쓸하고 계곡도 쌀쌀하다네.
푸른 항아리엔 아직도 중양주가 남아 있으니,
국화꽃을 띄워서 그대에게 축수하려하네.
세간의 온갖 일은 이내 사라지는 것이니
숲속의 청풍아래서 술잔을 주고받을 만하네.”
라고 하여 선비들 사이의 국화주음 풍속에 대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또 시인으로 유명했던 고죽 최경창(1539~1583)의 [고죽유고]에 수록된 ‘중양’이란 시에서는
“왼손으로 국화꽃을 잡고, 오
른 손으로 백주(白酒)를 따르네.
용산 서쪽에서 모낙하니,
9월 9일 좋은 날이네.”
라고 읊고 있어 국화주가 시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양입주법 재현 모습. 꽃을 주머니에 담아 술독의 술 위에 매달아 하루나 이틀 뒤에 꽃을 들어내면 꽃향기가 술에 배어 가향(佳香)의 국화주가 된다.
하루에 세 번 한잔씩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고 장수한다
이렇듯 국화주는 우리 조상들이 가장 즐겼던 대표적인 계절주의 하나이다.
국화주는 누룩, 물을 섞어 빚은 곡주에 국화향기를 넣는 화향입주법(花香入酒法)의 국화주를 근간으로 하고, 술을 빚을 때 만개한 국화를 함께 넣어서 빚는 직접혼합법의 가향(加香) 국화주, 국화 외에 여러 가지 생약재를 달인 물을 함께 넣어 빚는 약용(藥用) 국화주,
그리고 국화는 넣지 않으면서도 국화주와 같은 술빛깔을 띤다는 뜻에서 이름을 얻은 ‘황금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국화주는 아름다운 향기 외에 뼈와 근골을 튼튼히 해주며, 몸이 가벼워지고 말초혈관확장과 청혈해독의 효능이 있어 장수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화향입주법의 국화주는, 숙성되면 황금색이 술빛깔과 함께 향기가 좋으며, 말간 개미가 떠서 구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약용약주로서의 국화주는 엷은 암갈색의 술빚깔을 띠는데, 여러 가지 약재로부터 오는 그윽한 향기가 있어,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세시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세간에서는 ‘국화주를 하루에 세 번 한잔씩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고 장수한다.’고 전해지면서 너나 없이 국화주를 즐겨 마셨던 것 같다.
국화주를 빚기 위해서 국화를 선택할 때는 황국(黃菊) 중에서도 향기가 좋고 맛을 보아 감미가 도는 감국(甘菊)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꽃 필 때 채취하여 술을 빚을 때 씻어서 그늘에 말렸다가 술 위에 띄우거나 매달아두어 향을 즐기기도 한다.
국화주를 빚을 때 국화를 지나치게 많이 넣으면, 그 맛이 쓰고 신맛이 강해지므로 적당량 사용해야 한다.
최근 함평에서 400년전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현한 국화주가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고구려인들의 양조기술을 오늘에 다시 되살린 듯 하여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거니와, 잘 익은 국화주는 은은한 국화향과 함께 황금빛깔을 자랑, 취흥을 절로 일으키므로 상비해두면 국화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