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유산

史跡 巡禮

영지니 2017. 5. 27. 23:56


史跡 巡禮

 

史跡 1호  慶州 鮑石亭址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이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따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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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跡 2호  水原 華城

정조 18년(1794)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과학기를 이용하여 실용적으로 쌓았다. 효심에서 근본이 되어 당파정치 근절과 왕도정치의 실현,  그리고 국방의 요새로 활용하기 위해 쌓은 화성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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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跡 14호  扶餘 陵山里 古墳群

부여 능산리산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 무덤들이다. 무덤은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뒤쪽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 전부터 왕릉으로 알려져 왔던 곳으로 일제시대에 1∼6호 무덤까지 조사되어 내부구조가 자세히 밝혀졌고, 7호 무덤은 1971년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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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8호  慶州 臨海殿址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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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20호  新羅 武烈王陵

신라 제29대 무열왕(재위 654∼661)의 무덤으로,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있는 5기의 큰 무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무열왕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661년 6월에 죽어, 죽은 왕에게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경사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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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21호  김유신 묘

김유신(595∼673)은 삼국통일에 중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춘추(후에 태종무열왕)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 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660년에 귀족회의의 우두머리인 상대등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668년에는 신라군의 총사령관인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신라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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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41호  경주 황오리 고분군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7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10여 기의 무덤이 흩어져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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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跡 73호  수로왕릉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재위 42∼199)의 무덤으로, 납릉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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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04호 황산 대첩비지

고려 말에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군을 무찌른 사실을 기록한 승전비가 있던 자리이다. 황산대첩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싸움으로, 당시의 승리 사실을 영원히 전하기 위하여 조선 선조 10년(1577)에 대첩비를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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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05호  칠백 의총 (충남금산)

임진왜란(1592)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700명의 병사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다. 조헌(1544∼1592)은 의병장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 예조좌랑, 감찰을 거쳐 보은현감으로 나갔으나, 여러 번 재등용되었는데 사직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1,7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와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였다. 이어 금산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남은 군사 700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그들이 전사한 후 조헌 선생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칠백의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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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12호  이충무공 묘 (충남 아산시)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무덤이다. 아산군 금성산에 무덤를 만들었다가 16년 후인 광해 6년(161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무덤 앞에는 정조 18년(1794)에 세워진 어제비(御製碑)의 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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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14호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완도)

정유재란 때 (1598년)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과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군사들이 힘을 합해 왜군을 물리쳤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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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16호  해미 읍성

해미는 태종 14년(1414)부터 효종 2년(1651)까지 군사의 중심지였는데, 이 성은 세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하여, 성종 22년(1491)에 완성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 1,000여 명을 처형시켰던 곳으로, 김대건 신부도 이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천주교인을 처형한 회화나무와 사형대 등이 남아 있는데, 이 회화나무에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서 고문을 하였으며, 그 흔적으로 지금도 철사줄이 박혀있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성지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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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18호  진주성

진주성(晉州城)은 진주시 남성동에서 본성동에 걸쳐 있는 석성으로, 1963년에 사적 제 118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성은 남강(南江)을 끼고, 외성의 둘레를 4km로 쌓고, 내성은 1.7km에 이른다.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지(居烈城址)였으며,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1379년 고려 우왕 5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7차례 중수되었고 주로 왜구를 방어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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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32호  강화 산성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을 당하자, 당시 실권자인 최우는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왕궁과 성, 그리고 관아 시설은 1234년에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이 때 개경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어 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지었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1637년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다시 파괴당하였고, 숙종 3년(1677)에 성을 보수하면서 모두 돌로 쌓고 넓혀 지었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 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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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133호  강화 고려궁지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39년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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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跡 136호  강화 참성단

참성단은 마니산에 있으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거행되며, 전국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붙이고 있다.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상고시대에 무시못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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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跡 225호  강화 초지진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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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 227호  강화 광성보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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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跡  226호    강화 덕진진(德津鎭)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로서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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