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오 산 연 원-별칭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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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종(文宗)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남숭산에서 수도(修道)하게 하였는데, 그 왕자는 훗날 대각국사(大覺國師)로 봉해져 호국불교의 포교와 국정 자문에 임하였으니 남숭산의 품격과 위상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금오산은 1,000m를 넘지 않는 산이지만 굳이 숭자(嵩字)를 붙여 중국의 유명한 숭산에 비겨 말하는 것은 이처럼 그 위용(偉容)과 품격이 비범한 데서 기인되었다고 여겨진다.
소금강(小金剛)과 수양산(首陽山)
또한 중국의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이야기와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의 충절을 기려 수양산(首陽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칠곡군 숭산리의 순국의사(殉國義士) 만송(晩松) 유병헌(劉秉憲)선생의 문집에 따르면 '선비들이 다 사모하는 수양산 기슭에다 내 시신을 묻어다오' 라고 유언(遺言)을 할 정도로 선비들 사이에서는 수양산으로도 통용(通用)되어 왔다고 전한다.
필봉(筆峯)
조선조 성종(成宗)때의 문신 성현(成俔)은 그의 저서 용재총화에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朝鮮人材 半在 嶺南이요 嶺南人材 半在 善山)'라 하였고, 그 후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서도 그와 같이 언급되었으니 이는 모두 금오산 정기(精氣)의 영험(靈驗)이라는 평가도 있다.
귀봉(貴峯) 거인산(巨人山)
노적봉(露積峯)
적봉(賊峯) 등 그 외의 별칭
이런 많은 별칭들은 금오산의 위용(威容)과 준엄(峻嚴)한 자태에 대한 선인(先人)들의 애정이 담겨진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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