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棺)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늙어지면 무용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유서 中에서>
*생가(충남 예산)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유서 中에서>
*생가(충남 예산)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들 계십시오."
<두 아들 앞 유서 中에서>
안녕히, 안녕히 들 계십시오."
<두 아들 앞 유서 中에서>
*상해 임시정부 청사 사적관 윤 의사 사적전시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을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어록 中에서>
*묘소(효창공원)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
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중국 상해 '홍커우' 공원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일본의 천장절과 승전기념일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일본의 천장절과 승전기념일
행사에 폭탄을 투척.
안타깝게도 매헌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엔 중국의 문학가 루쉰의 동상이...
* 거사 기념석
* * 최후 순국 장면
* 매장 장면
** 장제스 대만 전 총통의 친필
* 1967년 윤봉길 의사 유족들에게
전달해준 친필 붓글씨당시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을수 있었는데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정부의 지원을 받을수 있었는데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 냈다."고 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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