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크리닉

'간통죄' 폐지해야

영지니 2007. 3. 18. 14:03

 

 

'간통죄' 폐지해야

탤런트 김모씨가 ‘간통죄’로 고소 당한 사건이 이목을 끌고 있다. 언론에서는 김씨가 유부남인지 알았느냐 몰랐느냐, 이혼을 종용했냐 아니냐, 김씨가 피해자냐 아니냐를 둔 공방에 초점을 두고 선정적인 가십을 만들어내기 바쁜 듯 보인다. 그러나 현재 더욱 중요한 것은 특정 연예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넘어서 ‘간통죄’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점검해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간통죄, 여성의 ‘마지막 보루’?

몇 년 전만 해도 남자가 바람이 나서 집안 재산을 몽땅 다 가지고 나가는 바람에 여자와 자식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설정의 드라마가 심심찮게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광경이기도 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종속된 상황에서 남편의 외도란 그야말로 아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사건이었다.

간통죄는 이처럼 남성이 외도사태(?)에 맞서는 여성들의 마지막 무기로 여겨진다. 일부에서는 해묵은 간통죄 존치 논쟁이 일어날 때 이러한 맥락에서 조건부 존치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애정관계를 법으로 묶어두는 것은 위선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부부관계가 불평등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논리다.

그러나 간통죄가 ‘여성의 마지막 보루’라는 논리는 가부장제 결혼제도 하에서 여성이 불평등한 위치에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논리가 올바른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간통죄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남자 혹은 여자와 합의의 성교관계를 맺을 경우가 해당된다. 간통죄 고소는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나 가능하다.

불평등한 부부관계 해결이 관건

간통죄는 1953년 남녀쌍벌죄로 새롭게 제정된 이후 끊임없이 존폐 논쟁에 시달려왔다. 간통죄 폐지의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애정관계를 공권력으로 구속한다는 점이다. 부부관계 역시 하나의 인간관계다. 배우자에 대한 애정, 신뢰 및 책임감의 여부는 도덕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 스스로가 결정할 사안이지 공권력이 개입할 영역은 아니다. 간통죄는 애정이 사라진 경우에도 부부라는 이유로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부인하고 공권력을 통해 관계를 묶어두는 조치인 셈이다.

물론 부부관계는 개개인의 현실 생활을 좌우하는 것이기에 애정과 같은 감정적인 차원만으로 포괄할 수는 없다. 1991년 국회에서 간통죄 폐지를 결의했을 때 여성계와 유림계가 한 목소리로 간통죄 존치를 주장한 바 있다. 유림계야 당연히 무엇보다도 가족의 안정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존치를 외친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의 높은 이혼율을 고려하면 간통죄로 가족을 묶어두자는 유림계의 주장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여성들의 현실을 들여다 봤을 때 ‘간통죄’가 실제적으로 여성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이혼 시 여성의 재산기여도는 인정 받기 어려운 분위기다. 그래서 여성이 간통죄로 고소할 경우 보다 많은 위자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부부간 평등한 관계와 공평한 재산분할 등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 ‘간통죄’라는 죄목에 의존해 해결할 일은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경우 간통죄를 폐지하자는 쪽이다.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우회는 부부강간죄의 도입이나 부부의 재산 기여도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부부공동재산제를 통해 보다 평등한 부부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불평등한 부부관계가 ‘간통죄’와 같은 위선적인 족쇄에 대해 반대하지 못하게 하는 근원인 셈이다.

간통죄로 여성이 피소되는 경우

또한 실제 들여다보면 간통죄가 ‘히든 카드’라는 주장은 현실과 어긋나는 점이 많다. 간통죄 피소 비율은 남자 대 여자가 6 대 4 정도다. 예상 밖으로 피소되는 여성의 수 또한 만만치 않다. 간통죄는 이혼을 전제로 고소해야 하기 때문에 생계와 자식문제로 여자들은 남자가 ‘간통’을 해도 쉽사리 이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여성이 ‘간통’했을 경우 남편에 의해 즉각 고소되고 이혼당하기 십상이다.

그 외에도 간통죄 고소를 위해서는 증거 확보가 필요한데, 여성들은 경찰의 도움만으로 현장을 덮쳐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남성들의 경우 심부름센터 등을 이용하여 쉽게 증거를 잡아내는 편이다. 법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접근도가 다른 불평등한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이다. 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리는 간통죄에 그대로 적용된다. 돈이 많은 경우 충분한 위자료 지급으로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돈이 없는 경우에는 피하기 어렵다. 1998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간통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활수준이 중하류층이 75%인 반면 상류층은 0.7%에 불과하다.

‘정실’ 아닌 여성에 대한 단죄?

역사적으로 간통죄는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규제해 왔다. 여성의 성을 규제하여 부계혈통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부장적 법이었던 것이다. 1953년 여러 국회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통죄가 쌍벌죄로 규정되면서 비로소 간통죄는 남성의 외도를 막기 위한 당대 여성들의 수단이 됐다. 50-60년대에는 남성이 ‘첩’을 들였다는 이유로 고소 당하면 여성들이 법정으로 몰려가서 남성들을 비난하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과거의 축첩관행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다.

그런데 이것은 ‘정실’ 여성들의 권리만을 인정할 뿐,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도덕적 낙인을 찍고 처벌까지 가하는 억울한 결과를 낳았다. 50-60년대에 ‘첩’이 된 여성들의 경우만 해도 생활이 어려운 데다가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될 사회적 분위기였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첩’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한 여성들이야 남편의 외도로 인해 가정이 해체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정실’이 아닌 여성들은 애정을 비롯해서 나름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끝에 상대 남성과 관계를 맺었을 뿐인데 정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처벌 받게 된다.

1990년과 2001년 헌법재판소는 ‘가정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일부일처제의 유지가 개개인의 사적 관계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간통죄는 결국 국가의 가족 보호 장치의 하나로써 존속하는 것이지 결코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법이 아니다. 간통죄를 협박용으로 삼는 것은 개인의 사적 관계를 공권력으로 규제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며 여성에게 부당하게 작동할 소지 또한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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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