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은 천연기념물 왕벚나무자생지를 비롯하여 후박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등의 온대림을 구성하는 상록활엽수와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등 온대림을 구성하는 많은 양의 낙엽활엽수로 구성되어 잘 보존된 삼림지역이므로 그 경관이 매우 뛰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흥사는 대둔산 북쪽 기슭에 위치하며, "대둔사" 또는 "한듬절"로 불리우는 사찰로서 백제 무령왕 14년(514)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며,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북원」과 천불전,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남원」으로 구분되는 독특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경내에는 13 대종사와 13 대강사를 비롯한 역대 고승들의 부도와 비석을 봉안한 비전이 있으며, 호국선사인 서산대사의 의발을 보유하고 있는 서산종의 종찰로 선교 양종의 대도량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지정문화재 현황으로는 총 15점(국가지정 5점, 시도지정 10점)인데, 국가지정문화재(5점)로는 보물 제48호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 보물 제88호 탑산사동종, 보물 제301호 대흥사북미륵암삼층석탑, 보물 제320호 대흥사응진전전삼층석탑, 천연기념물 제173호 대둔산 왕벚나무자생지(64,793㎡)가 있고, 시·도지정문화재(10점)로는 도유형 제48호 대흥사천불전, 도유형 제52호 대흥사천불상, 도유형 제57호 대흥사서산대사부도, 도유형 제93호 대흥사용화당, 도유형 제94호 대흥사대광명전, 도유형 제166호 대흥사서산대사유물(일괄; 6종 3점), 도유형 제167호 대흥사정조친필서산대사화상당명, 도유형 제179호 대흥사관음보살도, 도기념물 제19호 표충사(일원), 문화재자료 제78호 대흥사가 있다.
국보 제308호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大興寺北彌勒庵磨崖如來坐像)
본존불의 육계(肉髻)가 뚜렷한 머리는 언뜻 머리칼이 없는 민머리(素髮)처럼 보이나 나발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목구비의 표현이 단정한 얼굴은 살이 찌고 둥글넓적하여 원만한 상이다. 그러나 눈 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입을 굳게 다물어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귀는 큼직하니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으며, 유난히도 굵고 짧아진 목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삼도(三道)를 나타내었다.
손(手印)과 발은 항마촉지인에 오른 발을 왼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를 하였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냘픈 듯 섬세하고 가지런히 묘사하여 사실성이 엿보임과 더불어 곱상한 느낌을 준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通肩衣)로 그 주름은 거의 등간격으로 선각화(線刻化) 하여 사실성이 뒤떨어지고, 무릎 사이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마치 키를 드리운 것처럼 늘어지는 등 도식적(圖式的)인 면이 강하다. 이는 통일신라 말기로부터 고려시대로 이행해 가는 변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대좌(臺座)는 11엽의 앙련(仰蓮)과 12엽의 복련(覆蓮)이 마주하여 잇대어진 연화대좌로 두툼하게 조각되어 살집 있는 불신(佛身)과 더불어 부피감이 두드러져 보이며, 다른 예에서와는 달리 자방이 높게 솟아올라 있어 특징적이다. 머리 광배(頭光)와 몸 광배(身光)는 세 가닥의 선을 두른 3중원(三重圓)으로 아무런 꾸밈도 없이 테두리 상단에만 불꽃무늬(火焰紋)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위·아래로 대칭되게 4구의 천인상을 배치하였다.
둔중한 체구로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본존불과 달리 경주 석굴암 내부 감실(龕室)의 보살상을 연상케도 하는 4구의 천인상은 날렵한 모습으로 부드러움과 함께 세련미가 엿보인다. 천인상들의 조각표현은 이 당시의 거의 유일한 예이자 우수한 조형미를 반영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거대한 암벽을 다듬어 불상을 조각한 뒤 목조전실< 木造前室 >을 세운 마애석굴의 주존불< 主尊佛 >이다. 둥글고 넓적한 얼굴은 근엄하게 표현되었으며, 신체는 두터운 법의< 法衣 >에 싸여 있으나 비교적 양감< 量感 >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옷주름은 신라< 新羅 > 말기< 末期 >에 유행< 流行 >하던 얇게 빚은 듯한 옷주름의 전통을 잇고 있으나 도식적< 圖式的 >이며, 왼쪽 어깨에 있는 가사< 袈裟 >의 끈이 이색적이다. 하체로 내려올수록 신체는 빈약해져 있는데, 항마촉지인< 降魔觸地印 >의 손은 힘이 빠져 있고 결가부좌< 結跏趺坐 >한 발의 표현도 부자연스럽다. 신체 전반에 걸쳐 상당한 양감이 있으나, 신체의 비례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조각수법도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어 제작시기는 고려< 高麗 > 전기< 前期 >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거구< 巨軀 >의 마애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크게 주목된다.
보물 제88호 탑산사 동종
고려 시대 만들어진 높이 79㎝, 입지름 43㎝의 종으로 신라 형식을 계승하면서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종 꼭대기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고, 매다는 곳인 용뉴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어깨부분에는 연꽃으로 띠를 둘렀고, 그 아래는 덩굴무늬를 새겼다. 사각형의 유곽 안에는 가운데가 돌출된 연꽃을 9개 두었는데, 신라 때의 유두보다 훨씬 납작해진 모습이다.
종의 몸체에 있는 글과 양식으로 보아 종의 제작시기는 고려 명종 3년(1173)이나 고려 고종 20년(1223)으로 추정된다.
전체 형태는 상원사 동종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 선을 갖고 있으며, 각종 조각 수법이 빼어나 고려시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보물 제301호 대흥사북미륵암삼층석탑(大興寺北彌勒庵三層石塔)
두륜산 정상 부근의 북미륵암에 세워진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밑면의 단의 수가 층에 따라 다른데,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다.
한반도의 남쪽 끝인 해남에 이처럼 구성이 가지런한 탑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양식에서 일부 간략화된 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보물 제320호 대흥사응진전전삼층석탑(大興寺應眞殿前三層石塔)
탑의 형태는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신라의 일반형 석탑이다. 아래·위층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처마가 두껍고 윗면은 경쾌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정상에는 머리장식으로 몸돌로 보일만큼 큰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 등이 올려져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의 몸돌 높이가 크게 줄었으나, 넓이는 거의 줄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의 가운데기둥수가 하나로 줄어들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4단인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작품으로 추측된다. 대둔산 정상부근에 세워진 대흥사북미륵암삼층석탑(보물 제301호)과 함께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이 서남단 지방에까지 전파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석탑은 신라석탑(新羅石塔)의 전형양식(典型樣式)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이중기단(二重基壇)에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각면에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구성되고 각각 1석으로 되어 있으며 각 탑신석에는 4개의 귀기둥(隅柱)이 모각(模刻)되어 있다. 특히 2층탑신 이상은 체감률(遞減率)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추녀가 두꺼운 편이고 상면은 경쾌한 곡선을 이루었다. 받침은 각층 4단이다. 탑의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등이 있으며 특히 복발은 편구형(扁球形)이며 앙화(仰花)는 8각형으로 화판(花瓣)을 세우고 있다. 탑의 일부에서 약화되니 형식을 볼 수 있으나 신라(新羅) 석탑(石塔)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석재(石材) 결구(結構)의 수법이 단정 온아하며 정교한 이 석탑은 북미륵암(北彌勒庵) 석탑(石塔)과 아울러 한반도의 서남단에까지 신라 석탑 양식이 전파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중요한 탑이다. 조성년대는 신라(新羅) 하대(下代)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1967년 1월 보수 공사 때 기단 안에서 높이 12cm의 동조여래좌상(銅造如來坐像) 1구(一軀)가 발견된 바 있다.
출처 :
'문화재.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물 제439호 진전사지 부도 (0) | 2007.03.04 |
---|---|
보물 제406호 덕주사마애불 (0) | 2007.03.04 |
보물 제160호 유성룡종손가문적(柳成龍宗孫家文籍) (0) | 2007.03.04 |
보물 제150호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 (0) | 2007.03.04 |
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반가상(金銅彌勒半跏像) (0) | 2007.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