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유산

중요민속자료 제8호 구례 운조루

영지니 2007. 3. 4. 21:40

 

집에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라는 제하(題下)의 그림 한 폭이 있다. 이 집의 창건(創建) 당초의 형상을 그린 계화도(界畵圖)이다. 이 그림은 집이 완성된 뒤에 그렸을 것이므로 집과 같은 연대로 볼 수 있는데 사랑채(운조루(雲鳥樓))의 상량대에는 숭정기원후삼병신추구월기사십육일갑술진시입주상량(崇정紀元後三丙申秋九月己巳十六日甲戌辰時立柱上樑)이라 썼다. 환산하면 헌종(憲宗)2년 (1836)에 해당한다. 이 그림은 배산(背山)과 뒷동산의 숲과 집 앞의 큼직한 연못과 흐르는 내와 저멀리로 보이는 안국(安局)의 형국을 그려 금환락지(金環落地)의 명국(名局)을 묘사한 뒤에 그 중앙에 방구(方區)를 이루고 지은 집을 착실하게 묘사(描寫)하였다.

그림에선 큰 연못을 지나면 오향(午向)한 솟을대문과 바깥 행랑채가 있다. 이 행랑채는 ㄷ자형인데 중간에 익랑이 하나 더 있어 산형(山形)이 된 독특한 평면을 보인다. 지금은 이 익랑 부분의 돌출부는 다 보이지 않는다. 변형이 생긴 것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반듯한 앞마당이 되며 좌측에 사랑채가 있다. 그림의 사랑채는 4칸의 몸채에 뒤쪽으로 꺾이어 이어진 2칸의 날개가 달렸다. 몸채 왼쪽 끝의 1칸은 내루형(內樓形)이고 기둥 밖으로 난간을 돌렸는데 주인이 거기에 앉아 무엇인가를 즐기고 있다. 그 루하(樓下)의 마당엔 학 한마리가 꺼욱꺼욱 거닐고 오동나무 아래에 봉황 한쌍이 노닐며 괴석(怪石)과 화분(花盆)에 심은 기화요초(奇花瑤草)들이 늘어서 있다. 마당 한구석에 버드나무가 섰고 거기에 노새 한마리가 매어져 있다.

그림에 보이는 뒷마당에도 꽃과 화분과 수석(壽石)들이 늘어서 있다. 사랑채의 실제적인 구조는 매우 인상적이다. 전퇴(前退)를 두지 않았다는 점, 두툼하고 장중한 쪽마루를 설치한 점, 통나무로 만든 디딤대가 쪽마루 아래 있다는 점, 사랑방 2칸의 앞쪽 가운데 기둥을 생략하여 주간(柱間)의 넓이가 배가 되었다는 점등은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개성적인 구조이다. 지리산에서 좋은 나무를 구하여 골라서 쓴 목수의 자신있는 구조기법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림엔 사랑채 뒤로 2칸인듯이 보이는 건물 한 채가 후원별당인듯이 자리잡고 있다. 그 동편 마당에 샛담이 있고 중앙부에 일각문이 있어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의 오른편이 안채이다. 사랑에 비하여 안채의 규모가 훨씬 큰 것은 다른 집에서와 마찬가지이나 평면이 트인 ㅁ형이면서도 중행랑채를 ㄱ형으로 만들어서 전체의 윤곽이 몸채 뒤편의 날개부분까지 합쳐 ■형이 되었다. 아주 독특한 평면인 것이다. 지금은 약간의 변형이 있어서 그림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중행랑채는 일자형 고간채의 좌단(左端)에서 2칸이 앞쪽으로 돌출하여 ┌자형이 되는데 이 2칸은 내루형으로 처리되어 1칸은 방이 되고 앞쪽 1칸은 판상(板床) 을 고설(高設)한 다락이 되었다. 머름들이고 문짝을 달았는데 서벽(西壁)밖으로는 한가닥의 쪽마루와 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루하주(樓下柱) 서측에서 안채로 들어가게 된 길이 났는데 죽담에 오르는 것을 층계로 하지 않고 경사진 답도(踏道)로 하여 역시 특색을 보였다.

중문에 들어서면 앞을 막는다. 다시 우행하면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내정(內庭)으로 들어서게 된다. 안채의 중심부분, 양명(陽明)을 흠뻑 받는 자리가 역시 대청이 되어 주간이 개방되어 있다. 대청 좌우로 안방과 건넌방들이 자리잡았다. 그림엔 안채 동북측에 따로 담장을 둘러 일곽을 이룬 가묘(家廟)가 있고 그 남쪽 마당에 샛담과 일각문이 있으며 다시 더 남쪽으로 오면 중행랑채 끝에 작은 사랑방이 있어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나 지금은 이 부분이 달라졌다.

입향하여 이 집을 창건(創建)한 분은 가주 유증교(家主 柳曾敎)의 7대조인 유이주(柳爾胄)이다. 이분은 삼수부사(三水府使)와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지낸바 있었다. 원래 경북에 살다가 고을살이 지내는 중에 여기 명국을 발견하고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복거(卜居)하여 후손들의 세거지지(世居之地)가 되었다. 이 집에는 여러가지 세간, 수레등과 청주성도(靑州城圖), 상당산성도(上黨山城圖)등의 유품도 상당수 보존되어 있다.

 

 

출처 : 누리의 취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