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의 수중릉을 참배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견정(이견대)
백사장에서 바라본 대왕암과(상), 이견정에서 바라본 대왕암(하)
감포에는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있고, 대왕암이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이견정이 서 있다. 이견정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이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다. 당시에는 이견정이 아닌 이견대라고 불렀다. 이견대는 현재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에 소재하고 있으며, 사적 제159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신문왕은 해변가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고,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법당 밑에 동해를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다. 그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견대에서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도 한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을 포함한 말인데,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란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의 이견정은 1970년 이견대의 발굴조사 때, 건물이 있던 자리가 발견됨으로써 1979년에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오늘날 새롭게 다시 지었다.
이견정 현판과 이견대를 기록한 게판(하)
『고려사(高麗史)』 악지(樂誌)에 의하면, 어느 왕 시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 위에 건물을 지었다고 전한다. 이견대지(利見臺址)에 관하여는 현재 누정건물이 있는 장소라는 설이 오랫동안 전해 내려 왔다. 1968년 그 곳을 시굴한바 몇 기의 초석자리 비슷한 적심부가 나타났으나, 신라시대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이견대지로 확정짓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등 조선시대문헌에는 이견대지가 이견원(利見院) 옆에 있다는 기사가 있으므로 현 누정이 있는 자리는 조선시대의 이견원지로 추정하는 견해가 나오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 현재 누정이 있는 위치의 뒤 언덕 위에서 신라시대 와편이 출토되는 것을 근거로 이곳이 원래의 이견대지라는 견해도 있다.
대왕암에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현재 보수중인 감은사지 탑
출처 : | 누리의 취재노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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