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신비

동이족과 슈메르문명의 비밀 그리고 초대형 전구의 수수께끼

영지니 2008. 4. 22. 21:43

 

 

동이족과 슈메르문명

스핑크스가 만들어진 연대는 언제인가? 이집트 왕조가 수십년간 노예들을 동원하여 만든 것으로 학계에서는 소개하고 있으나 실상 그렇지 않다. 스핑크스에는 특징적인 풍화작용이 발견되는데 이런 풍화에의한 침식현상이 발생할만큼의 비가 마지막으로 내린시기는 BC7000~5000년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스핑크스의 나이는 7천년을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 이집트 왕조가 채 설립되지도 않았고 사회조직이 갖춰지기도 전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언제인가? 바로 슈메르 문명의 시기라고 봐야 합당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핑크스는 사자자리가 수평선에서 기울기 시작하는 동쪽의 지점을 응시하고 있다. 춘분에는 스핑크스가 태양이 뜨는 방위를 정확히 응시하게끔 되어있다.여러 가지 천문을 고려한 배치를 감안할 때 신의지문 저자 그레이엄 헨콕은 스핑크스의 제작 연대를 1만 7천년 이전으로 확신하고 있다. 또 피라밋의 채굴장소를 보면 가까운곳이 70 Km이고 먼곳이 900km거리이다. 사람의 힘으로 통나무를 아래에 깔아 굴리면서? 무슨 통나무가 수백톤 암석의 무게를 900km나 버텨낸단 말인가? 한마디로 헛소리란 말이다. 200톤 이상 나가는 화강암이야 말할 것도 없다

 

 

피라밋 속의 초대형 전구

정통 고대사학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관점에서 설명불가의 고도의 문명이 속출하자 수십만명이 수십년에 걸쳐 건설한 것이라고 공표하고 있다. 그당시 인구가 얼마이길래 수십만명의 인원을 수십년을 동원할수 있단 말인가? 설사 수십만명이 수십년 동원되더라도 그 이론가지고도 피라미드나 저거대한 고대건축물을 재현할 수가 없다. 더욱이 설명 불가능한것은 피라미드 내부에는 빛한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섬세한 벽화를 그리려면 당연히 밝은빛이 있어야 한다. 촛불가지고는 되지도 않는다. 횟불을 썻다면 장기간 사용으로 인한 그을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이에 대해 정통 고대사학자들은 설명자체를 회피해왔다. 할 수도 없으니까 당연하겠지만 쿠프왕의 무덤내부의 지하에서 초대형 전구를 사용한 벽화가 나와 버렸다. 정통 사학자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건 또 뭐냐? 작은 전구도 아니고 그것도 사람 크기만한 거대한 초대형 전구이다.

 

 

   

그림에 보이는 대로 거대한 유리관속에 필라민트가 보이고 소켓과 전선이 보인다.

오늘날 대형전구를 만들어도 이렇게밖에 만들 수가 없을 것이다. 초대형백열등이다.  슈메르 문명의 상형문자와 문명은 더 훗날 모세에 의해 유대교의 경전으로 엮어진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출발점인 슈메르족(머리가 까만 직모이고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있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셈족이 살기 전에 이 지역에 문명을 일으켰던 종족이다. BC 3000년 이전의 문명으로 설형문자를 쓴 사람들로 유명하다.형적인 수도승과 정신문화를 추구하는 이들이었다.12환국에서 전세계로 갈려져 나가 슈메르와 베링해를 건너간 마야,잉카문명,아메리카 인디언 문명과, 고대 이집트 등으로 문명이 전파되어 나갔다

 

 

 

 

슈메르와 동이족과 유대민족의 혈통

요즘 들어 특히 유대의 이스라엘민족이 동이족의 혈통계열임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데 슈메르 인들은 분명히 동이족 계열이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문화와 전통을 빌려간 경우이며 동이족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들 유대의 선조들은 상당수가 검은머리에 직모의 동양인이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은 거의 백인혈통이 아닌가? 구약성서에 유대인의 혈통과 모습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살펴보자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황색인만 사람에 뛰어나다. 머리는 정금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이다." [ 구약성서 아가서 5장]

위의 아가서뿐아니라  민수기에도 동양인이라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히브리인들이 고대슈메르족의 언어와 문화와 신화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사용한 것이지 그들의 혈통자체가 동이족이라고 보기엔 어려운점이 많다고 본다. 물론 노예생활을 하면서 상당수가 동이족의 혈통이 썩였을 것이다. 백인들중에서도 검은머리의 소유자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모계가 유대인이면 철저히 탈무드로 교육을 시키며 유대인의 일부피만 썩여도 유대인이라고 간주한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수천년사이에 인종이 동양인에서 백인으로 완전히 변화할수는 없다.

고대 슈메르인들은  확인한 바로, 그들은 문자를 사용하고 학교가 있었으며, 직업을 상당히 세분화하고 기능도 다양했으며 빈부격차가 있었다. 행정가, 외교관, 사원관리자, 장교, 선장, 세무공무원, 성직자, 감독, 십장, 서기, 기록보관인, 회계인 등이 그들의 직업이었고 학교에는 교수와 학생 외에 테스트 담당 조교수, 그림 담당 교직원, 수메르어 담당 교직원, 사감 등이 있었다.

이것들은 슈메르 점토판, 즉 점토에 슈메르 글자로 기록하여 그것을 구워놓은 그들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뒤를 잇는 바빌로니아 지식의 대부분은 이전 종족이던 슈메르 사람들의 것이다.이집트 인들은 바로 이 메소포타미아인들의 뒤를 잇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천문학과 수학, 문학, 공학에 능했고 우리가 알고있는 상당히 현대적인 사회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신석기시대를 운운하는 시절에 이런 문명이 존재하는 것과 오늘날 기계문명이 원시림의 야만부족과 공존하는 것은 특별히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런 공존은 아무 문제도 없다. 우리만이 문명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문제일뿐 초고대문명의 존재는 인류역사에 큰 누를 끼치지 않는다. 단지 우리의 착각에 상당히 큰 피해를 준다. 기존의 사고 체계가 뿌리채 흔들린다는 것이다. 알려지면 먹고 사는데 큰 피해를 입게될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출처 : 이선생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