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할한국사

우리 상고사 왜곡 심하다

영지니 2007. 3. 11. 00:13

 

[영상]우리 상고사 왜곡 심하다

김산호씨가 새로운 책을 냈습니다.
아직 치우천황이 우리 역사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

 

 

 

<AM7><세븐초대석>"
베이징·바이칼호까지 옛 우리민족 활동무대"


[문화일보 2005-06-20 13:11]


(::'치우천황' 책 낸 재야 사학자 김산호 씨::)

만몽(卍夢) 김산호(65)씨는 한 때 잘 나가는 만화가였다. 18세 때 만화가로 데뷔한 이래 한국 최초의 SF만화인 ‘라이파이’를 비롯한 500여편의 작품을 냈다. 그는 또한 세계를 주름잡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2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산호 그룹’을 일으키고, 한 때 13개의 계열사와 26개국의 현지법인을 거느렸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역사가로 변신, 만주 대륙을 누비기 시작했다 .

 

평양에서 백두산으로, 백두산에서 비류호와 흥안령을 거쳐 바이칼호로, 다시 몽골 초원과 시베리아 벌판,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 그러기를 20여년, 김씨는 ‘치우천황(蚩尤天皇)’이란 역사책을 들고 세상에 나타났다.

총14권으로 계획하고 집필중인 ‘대한민족통사(大韓民族通史)’ 첫번째 책, 중국 현지를 누비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역사로,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베이징, 바이칼호, 시베리아 벌판을 포괄하는 광대한 영역으로 확장한 책이다.

 

직접 그린 200 여점의 유화도 함께 담은 대작이다. 사업가였던 그가 역사가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발굴해낸 우리 민족사는 어떤 것일 까. 책 출판을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김씨를 문화일보 편집국 소회의실에서 만났다.



-재미사업가로 민족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도 있는가.

“긴 세월 동안 조국을 떠나서 활동하며, 조국을 돌아보게 되었 을 때 느끼는 애틋함 때문이랄까. 중국은 우리의 역사를 조직적 이고도 치밀하게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켜 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채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있는 국내 학계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

-역시 한민족의 고대 영토를 광대한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 같은 데…. 그렇게 주장하는 재야사학자는 그전부터 있지 않았는가.

“슐레이만이 고대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하기 전까지 트로이전쟁은 신화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적이 발굴되자 신화는 역사로 되살아났다. 나는 만주에서 우리 민족의 신화를 역사로 되살리기 위해 20여년을 헤맸다.

그 결과 동남쪽으로는 산해관과 북경(베이징) 이남, 북쪽으로는 바이칼호와 시베리아까지가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신뢰할 만한 증거라도 찾았는가.

“물론이다. 문헌으로는 흑룡강향토사를 비롯한 중국 각 지방의 향토사가 그것이다.”

-주류(강단) 사학자들이 신뢰성을 의심하는 대표적인 문헌이 향토사, 즉 야사(野史) 아닌가.

“물론 강단 사학자들은 정사(正史)를 우선으로 치고, 향토사를 도외시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역대 왕조가 자신들의 정통성 을 강조하기 위해 집필한 정사가 권력층이나 집필자에게 불리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누락한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이에 비해 지방 사람에 의해, 지방을 위해 집필되는 역사가 향토사이다.

어떤 것이 많은 진실을 담고 있겠는가.” -사례를 들어 향토사의 신뢰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내가 기대는 향토사에 따르면 세계사와 우리 민족사의 조화로운 설명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른바 정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위,오, 촉이 패권을 다투며 제갈량이 활동하던 시기, 로마의 황제들이 정복전에 나서며 세계가 격동하던 시기, 우리의 김알지는 겨우 알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백제가 만주를 누비다 비류호에서 발해만으로 옮겨왔고, 다시 충청도와 전라도를 차지하게 됐다는 따위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좀 허황하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흔히 백제의 초기 수도는 한강 유역, 하남 위례성으로 친다. 하지만 고구려와의 국경을 맞댄 위험천만한 지역을 수도로 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30만 대군을 수장시킨 살수가 청천강이라는 주장도 그렇다. 도대체 청천강처럼 작은 강물을 이용해 어떻게 30만을 쳐부수는가. ”

-만주 동북쪽의 비류호와 발해만 사이의 거리는 수천리가 되고 발해만과 충청도 사이에는 황해가 있다. 그 시절, 적잖은 사람들 이 이동가능한 거리가 아니지 않은가.

“말을 타 보았는가. 말을 타고 달리면 비류호에서 발해만까지의 거리는 불과 사나흘이다. 또 당시의 항해술이 우리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만주, 백제, 일본을 연결하는 뱃길 정도는 안방처럼 누볐다.”

-우리 사학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모른 체 한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다.”


-앞으로의 계획은.

“‘대한민족통사’를 써야 한다. 이제 첫 책을 냈을 뿐이나 앞으로 작업은 빨라질 것이다. 역사의 줄기를 세웠고, 자료 수집 또한 완료됐기 때문이다. 내 나이 이제 65세, 하지만 책을 모두 쓸때까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글 = 김종락, 사진 = 정하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