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공간

부자가 되는 비법[2]

영지니 2007. 2. 24. 18:11

부자가 되는 비법[2]

 

5. 부자마인드의 힘: 맨땅에 헤딩해도 봄날은 온다  

 

부자가 되는 데는 ‘자기최면’이 매우 중요하다. 좋게 표현하면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부자가 되려는 꿈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나쁘게 표현하면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전문적인 ‘머니 컨설턴트’가 있다. 이 직업은 사람들에게 부자마인드를 심어주고 부자가 되는 길을 코치해주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강조하는 말 중의 하나가 “부자가 되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라는 것이다.

60년대에 경상도에서 올라와서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두 평짜리 솜이불 가게를 시작한 K씨는 ‘부자가 꼭 되겠다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 죽은 조카를 보고 난 후 상경을 결심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이 많은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

서울에 올라와서 그는 지독한 고생을 했다. 생일날 딱 한 번 ‘계란 두 알’을 먹는 것이 그의 삶에 유일한 낙이었다. 장사를 몇 년 해서 돈이 좀 모였는데, 어느 날 옆 가게의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급전을 융통해주고 고리를 받았고, 이에 재미를 붙이면서 사채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꼭 돈을 벌겠다는 마음에 장사보다는 사채놀이에 더 열중하게 됐고 급기야는 가게에 있는 시간보다 다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과 만났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가게를 접고 전문 사채업자가 돼서 1백억원 이상의 부동산과 현찰 수십억원을 챙겼다.

하지만 그는 3층짜리 건물에 건평이 1백 평 정도 되는 단독주택에 살면서도 겨울에는 보일러를 안 돌려 온 가족이 이불을 덮고 산다. 그는 아직도 죽은 조카의 혼이 어른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택에 부자가 되었다.

전라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도망하다시피 올라온 L씨는 있는 것이라고는 몸에 걸친 옷밖에 없었다. 건장한 신체 덕에 막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었으나, 잠자리가 없었다. 그는 한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제안을 했다. “여기 식당에서 밤에 잠 좀 잘 수 있겠냐”는 것. 주인은 “대신에 밤 2~3시에 끝나는 가게 청소를 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식당에서 의자 다섯 개를 붙이고 잠을 자고, 낮에는 노동판을 전전하였다. 한 3년쯤 그런 생활을 하자 제법 돈이 모였다. 그는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밤 늦게 포장마차에서 팔고 남은 ‘불어 빠진 우동’을 먹는 생활이었지만 그는 “ 반드시 부자가 되고야 만다”는 주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외워대면서 포장마차를 했다.

어느 날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한 단골 손님이 그에게 “이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데 스포츠센터를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동안 성실한 L씨를 눈여겨 본 이 손님은 스포츠센터 대금의 10분지 2 정도만 선불을 내고 나머지는 벌면서 갚으라고 하였다. 파격적인 제안에 L씨는 가진 모든 돈을 털어넣고 스포츠센터를 인수했다.

스포츠센터 수입으로 몇 년 후 빚을 모두 갚고는 이후에는 매년 벌어들이는 돈으로 무조건 아파트를 사대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오늘날 아파트 다섯 채를 가진 스포츠센터의 부자 사장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부자되겠다’는 결심을 수십만 번 이상 한 후에 얻은 결과였다.

용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역시 가난 때문에 서울로 ‘도망친’ O씨의 사례. 우여곡절 끝에 그는 용산전자상가에 취직했다. 리어카 행상과 배달로 성실하게 일했고, 한 허름한 도매 점포를 맡게 되었다. 용산과 청계천 세운상가에 점포 세 개를 가진 주인아저씨는 매일 등산을 가고, 대신 O씨가 용산의 점포를 맡아서 관리해 나갔다. 엉덩이가 밖으로 다 삐져 나오는 좁디좁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는 문고리를 잡고는 “나는 부자가 된다”를 속으로 외워댔다.

도매 매출이 계속 늘자 주인아저씨가 아예 제안을 했다. 테크노마트에 가게를 하나 알아봐 줄 터이니 알아서 키우고 집세만 내라는 것이었다. 강변역 테크노마트의 가게를 맡는 날 그는 하도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나는 부자가 된다”는 일념하에 하루에 열다섯 시간 이상 일을 하였고 그래도 전혀 피곤한 줄을 몰랐다. 하루에 세끼를 먹어대는 라면도 전혀 질리는 줄 몰랐다. 라면을 먹을 때 그는 ‘국내 최고의 재벌인 이병철 회장은 라면 먹고 싶어서 비행기 타고 일본 가서 먹었고, 아들인 이건희 회장도 어떤 때는 하루 세끼를 라면만 먹었다는데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라면 인생’에서 현재 십억 이상을 강남의 모 은행에 현찰로 맡기는 어엿한 PB 고객이 되었다.

이들은 전부 ‘의지의 화신’들이다.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달려든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만이 부자가 될 자격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부자 중에서 자수성가형 부자가 약 60% 정도 되는데 그 중의 대부분이 위에서 소개한 이들처럼 독한 마음을 먹고 온갖 고생을 다 한 결과로서 부자가 된 것이다.

부자 세미나에서 필자가 청중들에게 “부자가 되고 싶으면 아주 독한 마음을 먹어라”라고 강조를 하면 대부분이 열심히 듣는다. 그러나 막상 강의를 끝내고 대화 시간에서는 대부분이 금방 나약한 마음을 드러낸다. “사실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쉽느냐”는 반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필자는 ‘그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부자가 되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 있는 부자는 전체 인구의 고작 1~2% 정도다. 아무리 넓게 잡아도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가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오늘 태어난 신생아 20명 중에서 수십 년 후에는 단 한명만이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20대 1의 경쟁을 뚫은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필자의 말을 잘 믿으려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학교 제자 가운데 필자가 직접 그 과정을 목격한 생생한 실례를 하나 들어주겠다. 시골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여대에 들어온 이 제자는 졸업 후 집에서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 서울여대를 3년 다니면서 학비,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 그리고 통장에 현찰로 8천만원을 모았다.

그 제자가 어느날 필자에게 제출한 리포트에는 “교수님, 제가 서울여대 들어올 때의 목표가 졸업할 때 아파트를 한 채 산다는 것이었는데, 벌써 3학년인데 아직 8천만원밖에 모으지 못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서 한푼도 받지 않고 대학 3년의 학비(약 1천8백여만원), 최소한의 생활비(약 3백60여만원, 월 10만원씩)를 쓰고도 8천만원을 모은 22세의 가냘픈 여대생의 이야기다.

이 제자는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그녀는 학교에서 근로학생(한 학기에 40만원)을 계속 했고, 편의점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시간당 3천원 정도)를 하였고, 번화가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액세서리를 팔았고(하루에 약 십만원 정도의 매상) 그리고도 돈이 되는 일은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하였다. 그녀는 학교 교과서를 샀을까? 아마 전혀 사지 않고, 선배에게 떼를 써서 얻어서 보았을 것이다. 식사는 아침과 점심은 대충 굶고 저녁만을 라면에다가 찬 밥을 말아 먹었을 것이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미국의 베스트셀러인 <부자 되는 법>이란 책에는 글이 적혀 있다. ‘부자가 되려는 생각을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되려는 행동이 저절로 나온다’라고. 부자마인드란 부자가 되겠다는 독한 마음이다. 미국의 초강력 베스트셀러의 결론은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독한 마음을 먹어라’라는 것이다. 

 

6. 눈속임도 마다않는 부자들: ‘개’처럼 벌었다면 ‘정승’처럼 쓰자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눈속임 능력도 필요하다?’

필자는 이번 주제를 잡으면서 적지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하지만 어차피 필자는 도덕 선생이 아닌 부자학 선생이고, 이 코너는 부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이기 때문에 그냥 이 주제에 관련된 ‘특이한’ 부자 두 사람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부자가 되는 길은 전부 긍정적이거나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좀더 솔직히 들여다보면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남들에게 부풀려서 다소 개운치 않은 이득을 취해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쁘게 표현하면 ‘사기성이 농후한 이’들이 부자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는 3~4개월마다 사업자등록을 새로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변에서는 “신규사업자 등록에 관한 한 세계기록보유자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필자가 전해들은 김씨의 재산 불리기에 대한 ‘독특한’ 방법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그는 새롭게 건축된 빌딩의 1층을 세 얻어서는 슈퍼마켓을 개업한다. 보통 슈퍼마켓은 지하가 보통이다. 이유는 슈퍼마켓의 마진이 보통 15~20% 이내로 비교적 적기 때문에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지하가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대기업이 뒤를 받쳐주는 소위 메이커 슈퍼마켓은 1층에 버젓이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일개 개인이 신축 건물의 1층에 슈퍼마켓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김씨는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1백만원을 내고 50평을 얻어서 슈퍼마켓을 차리고는 온갖 생필품(라면, 분유, 휴지 등)들을 근처의 경쟁 슈퍼들보다 약 10% 정도 싸게 판다. 개점 첫날은 4만5천원 정도 하는 쌀 20Kg을 3만5천원에 개점 축하행사 명목으로 팔아대고는 지나가는 할머니를 불러들이면서 “어머님 반갑습니다”를 연발해댄다. 이렇게 약 보름 정도 개점 행사와 엄청난 세일행사를 해대면 50평짜리 슈퍼마켓은 바글바글해지고 엄청나게 성황을 이룬다.

보름쯤 지나면 김씨는 동네의 부동산업소에 아무도 몰래 가서는 브라질행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면서 “브라질에 이민 간 동생이 모시고 계신 어머니가 위독해서 브라질로 바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꾸며댄다. 김씨의 이런 가게는 목돈의 퇴직금을 싸들고 부동산 중개업소를 기웃거리는 정년 퇴직자들이나 명퇴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유혹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매시간 수십 명이 바글바글대는 슈퍼마켓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이들은 눈 앞에서 하루에 수백만원 넘게 매출이 나는 것을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비록 일 매출은 수백만원을 육박하나 순익은 오히려 마이너스 수십만원이 나는 슈퍼마켓이다.

어리숙한 이들이 권리금으로 5천만원을 내겠다고 하면 “너무 쉽게 넘기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넘기는 듯 시늉한다. 하지만 그 순간 바로 3천만원 이상(개점행사와 세일로 손해본 약 1천5백여만원을 제외하고도)을 챙기는 김씨는 이 방면의 ‘프로’인 셈이다.

김씨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슈퍼마켓 넘기기, 목욕탕 넘기기, 술집 넘기기를 10여 차례 해서 1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목욕탕 넘기기는 ‘무료목욕권’을 남발해서 손님을 끌어들였고, 술집 넘기기는 미모가 뛰어난 전직 탤런트급의 여성을 마담으로 활용해서 손님을 당긴 다음에 넘기는 것이다.

재미를 보고난 후에는 모은 돈을 아파트와 빌딩 매입에 투자하고 또 파는 과정을 10여 차례 하면서 꽤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현찰로 50억 이상이 모이자 ‘이제는 어느 정도 되었으니 쉬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그것도 마음뿐, 지금도 가끔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서 ‘추억의 점포 넘기기’를 하곤 한다고 필자에게 고백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박아무개씨도 역시 가게 넘기기의 달인급 선수인데, 그 방식은 좀 다르다. 그는 종업원에게 넘긴다. 조그만 점포를 오픈하고 종업원을 세 명 정도 고용한 후에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한다. 그중에서 쓸 만한 친구를 점 찍어두었다가 열심히 훈련시킨다.

점포가 어느 정도 돌아갈 정도가 되면 자신은 새로운 점포를 물색한다. 그리고 이 점포는 미리 점찍어둔 성실한 종업원에게 넘기면서 대신 물건대금을 받는 것이다. 물론 돈이 없는 종업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외상도 해주면서 소유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가 물대를 전부 갚으면 점포를 완전히 넘겨주는 방식을 택했다.

박씨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점포를 열고 키워놓고는 쓸 만한 종업원에게 넘기고 더 큰 새로운 점포를 신규로 열고 이를 또 다른 종업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해서 안전하게 키워놓은 값(권리금 형태)과 물건 값에 이윤을 붙여서 이득을 챙기는 방식으로 돈을 모았다. 물론 점포를 넘겨받은 종업원도 사장이 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방식이긴 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또 ‘경제의 논리’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점포에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 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도 돈 벌어들이는 데에 귀신 같은 재주를 가진 박씨는 눈속임 수법으로 이런 위기를 극복한다.

팔리지 않은 물건들에 대해 종업원들에게는 매입 가격을 절대로 노출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도매상에게 결제를 한다. 종업원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점포와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 값이 얼마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든 점포는 운영이 잘 되니까 점포 주인인 박씨의 “인수하라”는 말에 선뜻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박씨는 거의 팔리지 않은 물건까지 종업원에게 넘겨서 세 배 이상 이득을 챙기는 일도 있었다. 제법 재산을 모으고 업계에서 명성도 제법 쌓은 박씨인지라 ‘이제 더 큰 욕심 내지 말아야겠다’ 하면서도 가끔 추억의 ‘종업원 넘기기’를 한다고 한다.

남으로부터 너무 많은 이득을 빨리 보려고 하는 경우에는 김씨나 박씨와 같은 일들을 가끔 저지르게 된다. 이들은 술자리에서 술이 좀 과해지면 “교수님, 제가 나쁜 놈입니다”라며 자기 반성인지, 푸념인지 명확치 않은 하소연을 쏟아내곤 한다. 그렇다고 필자가 그들을 크게 나무라거나 탓할 수가 없다. 대신에 그들의 심적 안정을 도모해 주려고 이런 말을 전한다.

“미국에서도 1800년대에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면서 부자가 된 이들이 많습니다. 부자가 되고 나서 그들은 자신이 축적한 부 가운데 상당수를 자발적으로 사회에 돌리면서 심적 안정과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한때 문제가 있었던 미국의 부자들은 거의 전부 종교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필자는 김씨와 박씨 같은 이들이 종교에 심취해서 마음을 순화하고 벌어들인 돈 중의 일부를 고아원과 양로원 등에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특이한’ 부자들이 범부인 필자의 평범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7. 알부자의 ‘블루오션’ 전략: 가시밭길 개척해야 ‘좁은 문’ 들어간다

 

부자가 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경쟁을 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가는 블루오션 전략’을 사용하여 왔다. 다른 사람들이 한 것과 비슷한 일들을 수행해서는 결국 비슷한 정도의 이익밖에 올릴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들을 수행하게 되면 그들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의 이익을 올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새로운 부자의 길’이 된다. 타인들보다 훨씬 더 험난한 길을 스스로 찾아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다.

김아무개 여인은 어린 시절부터 지긋지긋한 가난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등으로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의 액수는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껴주는 선생님들 덕택에 학교의 모든 장학금을 싹쓸이 하다시피 해서 받는 방법으로 간신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역시 장학금 수혜와 함께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신히 졸업했다. 대학 진학 역시 자신의 성적보다 한참 낮춰서 등록금이 아주 저렴한 국립대학을 선택했다.

졸업 후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해서는 받는 월급을 몽땅 저축하였다. 김 여인이 중소기업을 다니던 그때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부자에 관련된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없던 시절이었다. 매일같이 퇴근길에 부자의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대학 때 배운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의 책을 수십 번 다시 읽으면서 ‘돈을 모으는 데에는 저축과 동시에 새로운 투자가 절대적’이라는 점을 외우고 또 외웠다.

월급을 몽땅 저축하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쌀과 반찬은 시골의 부모님이 보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한 달에 자신의 돈으로 사는 것은 ‘소주 한 병과 라면 2개뿐’이었다. 가끔씩 혼자서 라면 안주에 소주를 한잔씩 마시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화장품은 무료로 나눠주는 샘플을 죄다 주워 모았고, 옷은 월급 받는 다음날 몇 천원짜리 한두 벌 사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만난 아주 비슷한 처지의 남자를 유심히 관찰하였다고 한다. 점잖고 말은 없으나 척 보면 가난의 때를 전혀 씻지 못한 남성이었다. 김 여인은 ‘바로 저 남자다’라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결혼 결심을 했다.

결혼은 쉽게 성사되었으나, 김 여인은 아주 독한 마음을 품었다. 남편에게 가장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길이 사우디에 가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결국 망설이던 남편을 기어이 사우디 건설현장에 파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직후 그녀는 곧바로 모든 짐을 정리해서 시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사우디에서 보내는 돈은 몽땅 통장에, 자신이 버는 월급도 몽땅 통장에 집어넣고, 생활비는 시집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 김 여인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시집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독한 마음을 먹었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부자 되는 길이라는 것을 내심으로 강조하였다.

80년대 들어서니 그동안 모은 돈이 꽤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 ‘새로운 투자’의 방법으로는 부동산밖에 없다는 점을 주변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아파트는 물론 상가, 원룸과 오피스텔 까지 손댔다. 결국 오늘날 김 여인은 아파트 10여 채에, 30여 개의 원룸이 있는 빌딩도 소유했고, 상당한 돈이 예금되어 있는 통장도 여럿 갖게 됐다.

그녀가 ‘알짜 부자’라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에서 유혹은 끝없이 들어왔다. 한창 주식이 붐을 이룰 때 “주식에 한번 투자해 보시라”는 여러 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주식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위험’이 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 김 여인이 주식을 회피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김 여인은 대학 때 배운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의 기본적인 원칙에 아주 충실했던 셈이다. 위험이 있어야 수익이 커진다. 그러나 위험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때에는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원칙이었다. 김 여인이 경험으로 나름대로 터득한 ‘부자학 개론’은 이렇다.

“부동산은 일단 매입한 이후에 내가 처리를 하지 않는 한에는 위험이 상당히 낮다. 물론 부동산 거품이 일시 꺼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 한없이 지속적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한국은 땅이 유한한 국가다. 인구가 늘어나면 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부동산값은 인구가 느는 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 여인은 왜 주식 투자는 철저히 외면했을까. 주식의 가격은 회사 내부의 가치와 경쟁상황, 그리고 다른 외적인(정치적·세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에서 가르쳐주는 기본 시사점은 주식가격의 결정요인은 너무나 많고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김 여인은 복잡한 것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인생은 ‘단순하면서도 강한 방법들’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래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김 여인의 전략이었다. 김 여인이 택한 단순하면서도 강한 방법들은 ‘장학금을 계속 타는 것, 들어온 돈은 무조건 아껴서 모으는 것, 벌 수 있는 대로 계속 벌어들이려면 남편을 사우디에라도 보내는 것, 인구가 증가하는 대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부동산을 계속 매입해 두는 것’이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힘든 그녀만의 독특한 블루오션 전략을 개발하고 이를 충실히 실행한 끝에 부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일반인들은 인생에서는 실패가 허용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부자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부자들은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곧바로 자신이 부자의 반열에서 밀린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매일같이 블루오션 전략을 찾고 그리고 매일같이 실행하여야 한다’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민소득 1만달러의 문턱에 걸려 있다. 물론 1만달러는 넘었으나 당분간 2만달러에 자력으로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은 지금 ‘일반인병’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부자국가(wealthy nation)가 되려면 우리는 1960~70년대의 산업화시대보다 훨씬 더 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아무 것도 없어서 고속도로를 내고(아무 것도 없어서 사우디에 인력을 파견하고), 아무 것도 없어서 전국민이 절약하는 새마을운동을 하는 블루오션 전략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에는 그때보다는 규모가 수백 배 더 커졌으나 이제는 더 강하고 새로운 블루오션 전략들(고난도의 기술개발 지속화, 대체에너지의 끊임없는 탐구, 해양자원의 무조건적 개발, 개인들의 부자정신화 교육 전파, 전국가적인 절약운동 등)이 박정희 정권 시대보다 더 강렬하게 전개되어야 부자국가가 된다. 해이해진 심리적 인플레를 과감히 버리고, 김 여인처럼 매일같이 새로운 길들을 찾아야 부자가 될 수 있다. 개인도 그리고 국가도 역시 마찬가지다. 

 

 

출처 : 나루터의 재미있는 경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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