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영지니 2007. 5. 31. 17:35

 Charles Francois Jalabert -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듣는 님프들

 

       Swan John - Orpheus

 

 Ducis Louis -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ABBATE, Niccolo dell - 에우뤼디케를 쫓는 아리스타이오스

 

 Putz Michel Richard -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Gil Jose Bunlliure -  카론

 

          Jean Raoux - 지하세계를 떠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페터 파울 루벤스 - 저승을 떠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지하세계로 다시 끌려들어가는 에우리디케

 

                      윌리엄 블레이크 리치몬드 - 지하에서 돌아온 오르페우스

 

 Emile Levy - 오르페우스의 죽음

 

   월리엄 워터하우스 - 오르페우스의 죽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George Frederic Watts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George Frederic Watts

 

 

음악의 신 아폴론이 무사이 9자매의 막내인 칼리오페를 사랑한 적이 있다. 음악의 신과 현악기의 신이 어울린 것이다. 그리하여 칼리오페가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천하 제일의 명가수라고 불리는 오르페우스이다. 오르페우스는 아버지 아폴론에게 현악기의 일종인 뤼라, 즉 수금 한 대와 연주하는 기술을 물려받았다. 오르페우스의 수금 켜는 솜씨는 참으로 훌륭했다. 그리고 노래를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부르기도 잘 불렀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매혹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인간뿐만이 아니었다. 짐승까지도 오르페우스가 고르는 가락을 들으면 그 거친 성질을 눅이고 다가와 귀를 기울이곤 했다. 나무나 바위도 그 가락의 매력에 감응했다. 나무는 그가 있는 쪽으로 가지를 휘었고, 바위는 그 단단한 성질을 잠시 누그러뜨리고 가락을 듣는 동안만은 말랑말랑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이 천하 제일의 명가수는 나이가 들자 에우리뒤케라는 처녀와 혼인했다. 신랑의 어머니가 무사이 여신 중 한 분이었던 만큼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결혼의 신 휘메나이오스가 몸소 참석했을 정도였다. 결혼의 신 휘메나이오스가 와서 축복한다는 것은 행복의 약속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휘메나이오스는 이 둘의 결혼식에서만은 이 둘을 축복해주지 않았다. 결혼식 분위기에서도 신랑과 신부가 잘 살것이라는 조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행복의 조짐은 커녕 휘메나이오스가 들고 온 횃불에서는 연기가 너무 많이 났다. 그 바람에 신랑 신부는 눈물까지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혼한 지 열흘이 채 못되는 어느 날, 새색시 에우리뒤케는 동무들과 함께 올림포스 산 기슭의 템페 계곡으로 꽃을 꺽으러 갔다. 그런데 이곳에는 양을 돌보면서 꿀벌을 치는 아리스타이오스라는 청년이 있었다. 아리스타이오스는 운명의 손길에 등을 떠밀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건강한 젊은이의 호기심 때문인지 에우리뒤케에게 말을 붙여 보려고 했다. 물론 에우리뒤케가 새색시인 줄 모르고 그랬을 것이다. 에우뤼디케는 새색시인지라 급하게 그 자리를 피하여 달아났다. 아리스타이오스는 달아나는 에우뤼디케를 뒤쫓으며 소리쳤다. "희롱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저 말 몇 마디를 여쭈려는 것이니 달아나지 마세요." 그러나 에우뤼디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요정들이 멀찍이 서 있다가 달아나는 에우뤼디케를 보고 달려왔다. "나도 더 이상 쫓지 않은테니 이제 그만 달아나세요. 자 내가 걸음을 멈추었으니 아가씨도 이제 그만 걸음을 멈추세요.' 아리스타이오스는 걸음을 늦추며 저만치 달아나는 에우뤼디케를 향해 소리쳤다. 요정들도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친 것이다.  이 싱거운 술래잡기 놀이는 곧 끝났다. 에우뤼디케가 달아나다가 풀밭에서 쉬던 저승의 안내자를 밟고 만 것이다. 저승의 안내자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독사다. 에우뤼디케가 독사를 밟았는데 독사가 가만 있었겠는가? 독사는 에우뤼디케의 발꿈치를 물었다. 뱀에게 물린 불쌍한 에우뤼디케는 요정들에게 안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숨을 거두었다. 졸지에 새색시를 잃은 신랑 오르페우스는 신과 인간은 물론이고 숨쉬는  모든 것에게 수금 소리와 노래로 슬픔을 전했다. 함꼐 슳퍼해 주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에우뤼디케의 죽음을 당연한 죽음, 오르페우스의 슬픔을 당연한 슬픔으로 알았다. 오르페우스가 어찌나 간절하게 슬픔을 노래했던지, 슬픔에 목이 멘 들짐승들은 더 이상 풀을 뜯으려 하지 않으려 했고, 초목은 하데스가 원망스러웠던지 고개를 저승 쪽으로 접었다. 오르페우스의 슬픔은, 함께 슬퍼하는 자의 슬픔으로 삭여질 수 있는 그런 슬픔이 아니었다. 그런 슬픔이었다면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탄원하지도 않았으리라. 노래와 수금타기로 세월을 보내던 오르페우스가 심금을 울리는 수금 반주에 맞추어 애간장 저미는 노래로 탄원하자 데메테르 여신은 딸림 여신을 통하여 이렇게 말했다. " 딸 찾아 낮비 밤 이슬 맞으며 온 딸을 다녀 본 나다. 내가 어찌 아내 잃은 네 슬픔을 모르랴. 그렇지만 자식 잃어 본 자가 어찌 나 뿐이고 아내 앞세운 자가 어찌 너 뿐이랴. 나에게 탄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네가 타는 수금 소리, 네가 부르는 슬픈 노래를 듣고 내 땅의 짐승이 먹고 마시는 것을 거절하고 초목이 고개를 접으니 괴이하구나." 오르페우스는 눈물로 호소했다.  "제가 흘리는 눈물은 제 고통의 지팡이요, 금수 초목이 저에게 보내는 연민은 신들을 겨누는 저항의 화살입니다." "그럴 리 있겠느냐. 하늘이 좋은 소리꾼을 낸 뜻은 그런 데 있지 않을 것이다. 노래꾼이 가는 길이 눈물 바다가 되는 것은 노래꾼에게 어울리지 않으려니와 신들의 뜻도 아닐 것이다." "땅의 어머니시여, 신들이 닦지 못할 눈물이 없을 것인즉 굽어 살피소서. 제 아내 에우뤼디케를 찾아가겠습니다. 영웅 신 헤라클레스가 다녀온 곳, 테세우스가 다녀온 곳으로 내려가겟습니다. 프쉬케가 다녀온 곳으로 저도 가겠습니다. 가서 제 아내 에우뤼디케를 데려오겠습니다." "당치 않다. 네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내가 알겠느냐만, 저승은 봄이 온다고 씨가 싹을 튀우고 줄기가 꽃을 피우는 그런 땅이 아니다." "저를 사랑하소서. 제 눈물을 사랑하소서. 애통해 하는 저를 사랑하소서." "어쩔 수가 없구나. 비록 내 딸이 저승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는 하나 이승과 저승의 법은 다른 것이다. 네가 '대지의 여

신'이라고 부르는 나도 딸이 보고 싶다고 해서 딸을 찾아가지 못한다. 내가 내막을 좀 알아 보고 방법을 찾을 테니 그리알고 기다리거라."

 

데메테르 신전을 물러나온 오르페우스는 며칠을 기다렸다가 다시 데메테르 신전을 찾아갔다.

여신을 섬기는 딸림 신을 대신해서 여신의 뜻을  전해주었다. "내가 강의 요정을 저승으로

흘려 보내어 내막을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네 아내를 죽게 한 자는 아리스타이오스라는 꿀벌치기라는구나. 이 자가 속죄 의식을 거행하지 않아서 네 아내는 하데스 궁에  들지 못하고 비탄의 강가를 떠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요정들을 보내여 아르스타이오스의 벌떼를 모두 죽이고, 속죄 의식을 베풀면 벌떼를 살려 주겠노라고 했다. 일전에 아리스타이오스가 속죄 의식을 끝냈다는 소식과 네 아내 에우뤼디케가 저승의 왕국에 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제 네가 어찌 하려느냐?" " 저승으로 내려 가겠습니다." "네가 대체 무슨 권능에 의지해서 산 몸으로 혼령의 나라를 다녀오겠다는 것이냐?" " 헤라클레스는 힘에 의지해서 산 몸으로 혼령의 나라를 다녀왔고,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의지새서 산 몸으로 혼령의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저승은 프쉬케가 사랑에 의지해서 다녀왔고, 시쉬포스가  꾀에 의지해서 다녀온 곳입니다. 저 역시 사랑에 의지해서 다녀오겠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면 에우뤼디케와 함꼐 그 나라에 머물겠습니다." 오르페우스는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일곱 줄의 수금을 가만히 가슴에 껴안았다. "아케론 강의 뱃사공 영감 카론이 산 자를 배에 태워 강을 건네 줄까?" 오르페우스는 대답 대신 수금을 가리켰다. 수금 연주로 카론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불의 강 플레게톤을 건너야 할 텐데  네가 무슨 수로 불길을 이길 것이며,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야 할 텐데  네가 무슨 수로 이승의 기억을 강에 떠내려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오르페우스는 또 한 번 수금을 가리켰다. "네가 아폴론에게 수금을 배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그러나 너는 장차 태양신이 될 아폴론의 아들이다. 태양신의 아들이 저승이라니... 네가 '대지의 여신'이라고  부르는 나에게도, 산 목숨이 죽은 목숨을 만나러 가는 이치가 쉽지만은  않다. 내 딸 페르세포네가 해마다 하데스에게 휴가를 얻어 내게로 올 때마다 잘 다니는 길이 있다. 타이나론으로 가보아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길을 너에게 가르쳐 주는 일뿐이니, 나너지는 네가 요량하도록 하여라." 데메테르 신전의 제관은 여기까지 뜻을 전하고는 타오르던 향불을 껐다. 오르페우스는 아폴론에게 배운 수금 솜씨를 반주로 하여 이 생성과 소멸의 여신을 찬송했다. 아득한 옛날에 헤라클레스는 저승의  문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잡으로 저승으로 간 적이 있다. 그때 헤라클레스는 엘레우시스 땅에서 데메테르를 섬기는 퓔리오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퓔리오스는 '문에서 온 자'라는 뜻이아. 그렇다면 퓔리오스는 '하도 퓔라이(하데스의 문)', 즉 '저승의  문'에서 온 사람이었을까? 오르페우스는 엘레우시스 땅으로 갔다. 그 역시 퓔리오스의 안내를 받아 라코니아 땅 타이나론 동굴을 통하여 저승으로 내려갔다. 오르페우스가 쇳덩어리인 대장간 모루가 아흐레 밤낮을 떨어져야 닿을 만큼 깊고 깊은 저승으로 내려가는 데 얼마가 걸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그랬듯이 오르페우스도 대장간 모루가 아니다. 인간이 죽어서 가는 저승까지의 거리를 손가락으로 꼽아서 어떻게 헤아릴 수 있으랴. 맨 먼저 앞을 가로막은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 영감은 오르페우스가 산 자임을 알고 그를 내리치려고 노를 둘러메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가 수금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자 아케론 강은

저승에 가로누운 제 신세를 한탄했고,  뱃사공 카론 영감은 오르페우스를 태워 강을 건넨 준 뒤에도 배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너무 감동한 나머지 돌아가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오르페우스의 수금 앞에서 '통곡의 강'은 머리를 풀며 통곡했고, '불의 강'은 불길을 헤쳐 길을 내주었으며, '망각의 강'은 제가 망각의 강이라는 것을 잊었다. 혼령의 무리를 지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으로 나선 오르페우스는 수금 반주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하이데스이시며 폴뤼데그몬이신 하데스 신이시여, 소테이라이시며 데스포이나이신 페르세포네 여신이시여..." '하이데스'는 보이지 않는 신이라는 뜻, '폴뤼데그몬'은 많은 나그네를 영접하는 신이라는 뜻이다. 둘 다 하데스의 별명이다. '소테이라'는 세상을 구하는 여신이라는 뜻,' 데스포이나'는 여왕이라는 뜻이다. 둘 다 페르세포네의 별명이다. "... 저는 아프로디테의 명을 받고 얼굴 단장할 단장료를 얻으러 온 프쉬케도 아니고, 케르베로스와 힘을 겨루러 온 헤라클레스도 아니며, 저승의 왕을 희롱하러 온 테

세우스도 아니고, 저승 왕비를 속이러 온 시쉬포스도 아닙니다. 두 분 신이시여, 꽃다운 나이에 독사의 독니에 물려 이곳으로 내려온 에우뤼디케를 아시지요? 제 아내입니다. 저는 아내를 찾으러 왔습니다. 창조되지 않은 모든 것의 지배자이시며, 창조되었다가 그 천명을 다한 것들의 지배자이시여, 저희들도 조만간 여기에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피하려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신들이시여, 제 아내 에우뤼디케가 이곳에 온 것은 때가 되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때 아니게 이렇게 왔습니다. 바라건대 신들이시여, 신방을 차리고 기운 달 하나를 채우지 못한 에우뤼디케를 돌려주십시오. 제 집에 가서 살다가 명이 다하면 이곳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두분 신이시여, 데메테르 여

신께서 제 길을 일러주셨으나 그 분의 권능에 의지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의지할 것은 제 아내에 대한 사랑과 제가 뜯는 이 수금, 제가 부르는 이 노래뿐입니다. 에우뤼디케를 돌려주십시오. 돌려주시지 않으시면 저도 지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렵니다. 돌려주시어 저희 부부 인연이 아름답게 다시 이어지는 걸 보시든지, 고개를 저어 저희 부부가 망령으로 떠도는 걸 보시면서 두 분의 승리를 즐기시든지 요량대로 하소서.그러나 두 분 신이시여, 저희 사랑은 아스포델로스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 음습한 땅에서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인즉, 두 분의 승기라 반드시 즐거운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르페우스의  애절한 사연과 구슬픈 수금 연주에 감동한  페르세포네는 옷깃으로 눈자위의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고.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던 하데스가 가까이에 있는 저승 사자에게 나즉히 말하였다. "에우뤼디케를 찾아서 데려 오너라." 에우뤼디케가 독사에 물린 상처 떄문에 잘쏙거리며 혼령들 사이에서 걸어나왔다. 에우뤼디케는 고개를 돌린 채 오르페우스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직 신혼이어서 그런지 둘의 포옹은 어색해 보였다. 하데스가 이 어정쩡하게 포옹항 부부를 내려다보다가 징소리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수많은 혼령들이 '오르페우스의 수금', '오르페우스의 노래'라고 하더니 과연 잘 타고 잘 부르는구나. 그래, 내가 너희의 눈물을 닦어 주마. 이로써 네가 네 수금타는 재간과 노래하는 솜씨의 값을 치르마. 대신 너는 이곳 혼령들이 흘린 눈물 값을 치러야 한다. 망각의 강물이 너 때문에 그 효력을 잃고 말았구나. 가거라, 네 아내를 데리고 가거라. 가되, 내 땅을 벗어날 때까지 네 아내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저승의 법이다. 내가 너에게 물리는 눈물 값이다. 네가 수금 소리로 이 기적을 일으켰으니 소리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만은 눈길은 나누지 못한다. 산 자와 죽은 자는 눈길을 나누지 못하는 법이다. 내 말을 소홀하게 듣지 말거라. 잘 가거라. 오르페우스여!" 오르페우스가 앞서서 하데스 궁전을 나오자 에우뤼디케는 그 뒤를 따랐다. 하데스의 뜻이 미리 전해져 있었던지 저승의 험한 길은 더 이상 험한 길이 아니었다. 오르페우스 부부는 음습하고 물매가 급한 기를 따라 오래오래 걸었다. 걷다가 오르페우스가 이따금씩 물었다. "잘 따라오지요?" " 잘 따라가요. 돌아보지 마세요." 에우뤼디케가 다짐을 주었다. 한참을 걷다가 오르페우스가 또 물었다. "잘 따라 오지요?" " 잘 따라가니까 돌아보지 마세요."  에우뤼디케가 또 다짐을 주었다. 이윽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는 날빛이 보이는 동굴 입구에 이르렀다.항구의 불빛이 보이는데도 항구까지 하룻밤 뱃길이 좋이 되듯이, 동굴 입구의 날빛이 보이는데도 하루 걸음이 좋이 되는 것 같았다. 먼저 날빛 아래 나선 것은 물론 앞서 나오던 오르페우스였다. 보고 싶던 마음을 오래 누르고 있던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아내 역시 날빛 아래로 나섰는지 확인하고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뿔싸  "돌아다..." 동굴의 어둠을 미처 다 벗어나지 못했던 에우뤼디케는 남편이 돌아다보는 순간, 하던 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다시 저승으로 떨어졌다. 가슴이 철렁한 오르페우스는 황급히 동굴로 들어가 손을 벌리고 어둠 속을 더듬었다. 그러나 손끝에 닿은 것은 싸한 바람뿐이었다. 오르페우스가 오던 길을 되돌아갔지만 뱃사공 카론 영감은 더 이상 배에 오르게 해 주지 않았다. 오르페우스가 이레 동안이나 이 아케론 강 언덕에서 수금을 뜯으며 노래를 불렀으나 고집이 센 카론 영감의 고개를 한번 돌리게 하지 못했다. 에우뤼디케의 손목을 잡고 왔어야 할 손으로 수금을 뜯으며 지상으로 오른 오르페우스는 일곱 달 동안이나 트라키아 땅의 어느 동굴에 은거했다. 트라키아 사람들이 오르페우스를 '부활한 자' 또는 '취하지 않는 포도주의 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 오르페우스는 이 때부터 저승의 신들을 저주하고 저승신의 잔인함을 통렬하게 원망하면서 바위와 산들에게 노래로 호소했다. 이 노래는 호랑이의 마음을 움직였고, 참나무 둥치를 흔들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뤼디케와의 슬픈 추억에 잠겨 여자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살았다. 트라키아 처녀들이 오르페우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갖은 수를 다 썼으나 오르페우스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처녀들은 오르페우스의 도도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때가 무르익기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그때가 도무지 무르익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안 처녀가 있었다. 포도주의 신을 섬기는 디오뉘소스 축제에 다녀왔던 이 처녀는 잔뜩 흥분한 나머지 오르페우스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 우리 여성을 모욕한 사내가 있다!" 그러면서 처녀는 오르페우스를 향해 들고 있던 창을 던졌다. 창은 오르페우스의 수금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날아가다 그만 그 소리에 기가 꺾여 그의 발치에 떨어지고 말았다. 포도주에 취한 처녀들이 이번에는 돌을 던졌다. 처녀들이 던진 돌도 마찬가지였다. 처녀들이 소리를 질러 오르페우스의 수금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한 뒤에 창을 던졌다. 창에 맞은 오르페우스의 몸은 금방 피로 물들었다.

 발광한 처녀들은 오르페우스의 몸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머리와 수금은 헤브로스 강에다 처넣었다.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수금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떠내려가자 강의 양 둑도 그 슬픈 노래에 물노래로 화답했다. 무사이 자매들은 막내 칼리오페의 아들인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들은 갈가리 찢긴 오르페우스 몸을 수습하여 레이베트라에다 장사지냈다. 오르페우스 무덤 위에서 우는 레이베트라 지방 꾀꼬리들의 울음소리는 그리스 다른 지방의 꾀꼬리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아름답다고 전해진다. 제우스는 오르페우스의 수금을 거두어 별자리로 박아주었다. 오르페우스 혼령은 다시 저승으로 내려가 사랑하던 에우뤼디케, 꿈에 그리던 아내를 껴안았다. 둘은 지금도 엘뤼시온, 저승에 있는 저 행복의 들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앞서가면서 더러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둘 다 혼령인지라 더 이상은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윤기, <그리스, 로마 신화>

 

출처 : 흔적(痕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