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

대흥군 관아와 대흥향교

영지니 2007. 3. 4. 20:26

 

 

대흥 임성 관아아문

 

대흥면사무소 뒤쪽 봉수산에 자리 잡고 있는 임존성(임존성)은 성곽의 둘레는 2.4km이며, 표고는 483m이다. 세계 유일의 수공식 성인 임존성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후 백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3만 명이 모여 봉수산에 살면서 훈련할 때 쌓은 것으로 전한다. 성벽의 높이는 약 350㎝이며 너비는 약 350㎝ 인데 남쪽의 성벽외면은 석축으로 되었으나 내면은 토석 혼축으로 내탁을 하였다. 남쪽 성벽에 수구를 설치하고 있으며 이곳 수구로 성내 물을 유도하기 위하여 깊이 90㎝, 폭 60㎝의 도랑이나 있다.

 

그 위에는 넓적한 판석을 덮고 있으며 수구의 크기는 폭 70㎝, 높이가 30㎝이다. 이 성의 특징은 네 모서리에 축조를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곳보다 약 2m정도 더 두텁게 내탁하였으며 성의 높이도 약간 더 높게 축조되었다. 성의 주문은 남문지로 추정되는데 문지 근처는 두터우며 좌우에 성문의 일부로 추정되는 석축구조가 보이고 북문지로 추정되는 곳도 남아 있다. 성내는 평평하게 경사를 이루고 또한 남벽 내선에는 백제시대 토기편과 기와편이 간혹 눈에 띄고 있으며 계단식으로 된 건물지가 보인다. 이 성은 서천의 건지산성과 함께 백제 부흥군의 거점이었다는 사실이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본래 이 산성은 주로 북쪽에 대한 방어를 목적으로 하여 구축된 산성으로 보이며 원래는 백제시대에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조한 것으로 또한 대흥산성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국가지정 사적 제 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흥군의 관아(官衙)는 현재 대흥면사무소 곁에 있다. 조선시대 대흥군의 현청으로 객사에는 정청(正廳) 3칸, 동대청(東大廳) 12칸, 은사정(恩思亭) 14칸, 서헌방(西軒房) 16칸, 하마대 4칸이 있었으며, 아사(衙舍)에는 구동헌(舊東軒) 9칸, 신동헌 16칸, 남상방(南上房) 4칸, 북상방 5칸, 대청 6칸, 초당 5칸, 행랑 7칸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관아 내에는 동헌과 그 앞에 임성아문(任城衙門)의 현판이 걸린 아문만이 남아있다. 동헌은 1981년에 해제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았다.

 

 

 

대흥향교

 

대흥군 관아를 뒤로하고 예산쪽으로 조금 더 지나쳐 오면 좌측에 대흥학교를 들어가는 좁은 소로가 나온다. 논둑길을 그대로 시멘포장을 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대흥면 교촌리가 되는데 향교 입구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띤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600여년이 된 것으로 높이가 40m, 가지 너비가 약 40m나 되는 고목이다. 은행나무 중아에는 느티나무가 기생하고 있으며 외부는 은행나무가 늘어져 마치 한그루인양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순이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황제를 올리고 있으며, 나무를 베면 마을이 피해를 입는다고 하여서 보호를 하고 있다. 현재 이 은행나무는 충남지정 기념물 160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예산군 대흥면 소재지 북쪽으로 교촌리 향교말의 북쪽으로 형성된 계곡 안쪽 남향 사면 하단부에 향교가 위치한다.

 

 

 

대흥향교 앞 은행나무

 

대흥향교는 조선 태종 5년(1405)에 창건된 것으로, 전면에는 명륜당을 후면에는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식 배치를 하고 있다. 향교의 입구에는 외 솟을삼문이 있는데 문의 전후로는 퇴칸이 설치되어 있다. 그 안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한 명륜당이 위치한다. 명륜당의 동서로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홑처마에 팔작지붕 양식을 한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는데 동·서재 모두 남쪽으로 2칸은 누마루를 설치하고 있다. 명륜당의 뒤쪽으로는 6단의 석계 위에 팔각고주초석을 놓고 세운 내 솟을삼문이 있으며, 이 삼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36호로 지정된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하고 있다.

 

명륜당의 동서로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동무, 서무가 배치되어 있다. 이 향교는 대성전에 5성(공자, 안자, 증자, 사사자, 맹자), 공문 10절(민속, 염경, 중유, 언언, 복상, 전손사), 송조 6현(주돈이, 정호, 정이, 김장생, 심집, 송준길)을, 동무에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을 서무에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 등 39위를 모시고 음력 2월과 8월에 초혼관을 지내고,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봉심을 올리고 있다. 향교는 12채의 건물이 모여 웅장함을 보여주며, 『성리대전』 등 50여 권의 장서가 남아 있다.


예당저수지 주변에는 많은 볼거리와 문화유적지들이 산재해 있으며 인근에도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서 이곳이 내포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예당저수지의 정경과 아울러 주변을 돌아보는 재미도 큰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출처 : 누리의 취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