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가 한국에 병합될수도 있다.
-러시아의 우려와 10년전 한국 멍청이의 대실수
고구려의 발견의 저자 김용만 선생님의 글입니다.
아래 신문기사를 보자. (내가 복사한 원문은 96년 7월 18일자인데, 인터넷 검색을 보면 7월 17일자다. 다소 차이가 있다) 러시아가 연해주가 한국에 병합될 것을 우려한다. 한국정부 장기계획 일환으로 러시가 거주 한인의 이주가 급등하고 있어 97년 15만으로 예상되는데, 방치하면 한국에 병합될 우려가 있다. 는 내용의 러시아 내무부 보고서를 러시아 신문이 보도한 것을 우리나라 신문에서 재 인용한 것이다.
왜? 러시아는 연해주가 한국에 병합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을까. 그것은 연해주가 러시아와는 역사적 연고권이 거의 없이 우격다짐으로 빼앗은 땅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기사를 냈으면서도, 지난 월간조선 98년 신년호 부록
한국역사전도에서는 연해주를 말갈땅이라고 표현하고 고구려영역에 의도적으로 포함시키지 않는 정말 쑥쓰런 짓을 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연해주는 과거 고구려 책성이 있었던 곳이고,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다.
블라디보스톡 주변의 그라스키노 유적에서는 고구려와 발해의 토기, 불상 등이 출토되었고, 연해주의 수도인 하바로브스크(흑룡강과 중국 국경이 만나는 곳에 있는 큰 도시) 주변의 코르사코브스키 고분군 112호 고분에서 고구려의 금동불상이 출토되었고, 같은 고분군에서 고구려식 화살촉이 다량 출토되기도 했다.
연해주는 무엇보다 과거 일본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기지로, 조선사람들이 대거 건너가 살았다. 이들을 고려인이라 불렀는데, 이들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860년 연해주 포세트 지역 한인 13가구 최초 기록
· 1863년 한인 연해주 이주 시작
· 1867년 185가구 999명
· 1869년 한반도 북녘 대기근으로 이주 급증. 1만 명 급증
· 1902년 한인 이민자 수 32,380명
· 1905년 을사 보호 조약 이후 의병 기지화
· 1908년 의병 건수 1,451건 참가 인원 6만 9천 8백여 명.
연해주 총독의 해로 의병 활동 만주 이동
· 1910년 경술국치 후 한인 이민 급증
· 1914년 교민 수 6만 3천 명으로 신한촌 건설 (블라디보스토크)
· 1918년 4월 일본군 연해주 점령
· 1922년 10월 일본군 연해주 철수, 친일 거류 민단 5천 명과 함께 귀국
· 1923년 재소 한인 공식 10여만 명 거주. 실지 25만 명 이상 거주
· 1932년 연해주 한인 학교 380개. 잡지 등 6종, 신문 7종,
· 1937년 9월 21일 -11월 15일.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한인들 전원 중앙아시아(6천㎞) 강제 이주당함.
그런데 강제이주당한 이들이 소련의 붕괴를 기화로 해서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러시아에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잇는 것이다. 그 배후에 한국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에 간 고려인 가운데 타지키스탄 과 우즈베키스탄에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연해주로 재이주해왔고, 1990년 이후 약 3만명 정도가 되돌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식적인 주민 등록을 하지 않은 숫자를 포함한다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고려인이 연해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민족주의와 경제적 위기. 언어의 문제, 정치 사회적 불평등 문제 등이 계속 존재하는 한 고려인의 주로 연해주 지방으로 계속 재이주가 이뤄질 것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버려진 한국인으로 놔둘 것인가. 우리는 이들과 다시 만나야 한다. 이들에게도 연변동포, 재미동포와 같이 대우하고 이들과 다시 만나야 한다.
러시아는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작은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역사적 연고권이 있는 땅에 대해서 너무 무신경하지 않는가.
한 이야기를 하겠다. 너무나 *팔린 이야기라서 잘 하지 않지만, 사실이기에 말한다.
노태우 정권때 우리는 소련에 차관 30억불을 빌려주었다. 이때 박철언이 특사로 소련으로 가서 차관의 댓가로 연해주에 고려인자치주를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대통령후보로 나온 김**이가 러시아를 방문해서 그만 민족앞에 큰 실수를 했다. 소련이 30억불을 빌리는 댓가로 무엇을 해줄까를 협상하려는데, 김**이가 기분이다. 조건없이 30억불 빌려주마 하고 하는 바람에 연해주에 고려인자치주 건설은 불거품이 되었다. 이때 연해주에는 고려인자치주가 세워질 줄 알고 일부 건물이 건설되기도 하고, 농장도 개발중이었다. 만약 이때 고려인자치주가 생겼다면 연변자치주와 함께 대조선경제벨트가 형성될 수 있었는데, 역사와 갱제를 모르는 그 김**이가 그만 나 통커 하면서 으시되는 바람에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역사적 인식이 없는 그 인간 때문에 수많은 고려인들이 지금도 중앙아시아에서 민족적 차별을 받으며 어렵게 살고 있다. 그리고 연해주에 최소한에 연고권을 만들려는 노력또한 무산되고 말았다.
역사를 모르는 자의 실수가 너무도 크다. 당장 연해주를 찾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곳을 찾을 수 있는 조그만 발판마저 필요없다고 내버리는 처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러시아는 자기 영토가 빼앗길 조그만 단서에도 저리도 크게 반응하는데 말이다.
역사인식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영토라는 것이 얼마나 가변적인지 생각해 주기 바란다.
- 다음은 신문기사다 -
[내무부 보고서] 러시아, 한인 연해주이동 우려 (1996.07.17) - 조선일보
# 러시아신문 폭로..."방치하면 한국에 병합" #.
「모스크바=황성준기자」 러시아 연해주 보안군 당국이 연해주 지역 에서의 한국인 활동증가와 계속되는 타지역 재러시아 한인들의 연해주 로의 거주이동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러시아 일간 코메 르산트 데일리지는 『연해주 지역으로의 한국인 유입을 막아야 하며 그 렇지않을 경우 연해주가 한국에 병합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러시 아 내무부 소속보안군 보고서를 17일 폭로했다.
이 신문은 연해주 보안군 사령관 알렉산드르 바실리에프 소장이 『한국인이 연해주 지역으로 들어오기 위한 비자발급은 연해주 주정부 나 연해주 내무부의 허락을 받은 경우에만 한정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정부가 연해 주 지역의 한민족을 증가시키는 장기계획을 실천중이며, 이는 연해주 에 한민족 자치주를 설치한 다음 최종적으로 한국에 합병시키려는 목 적에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또 『러시아 각지에 거주하는 재러 한인들이 이주해 옴 으로써, 89년 8천3백명(연해주 인구에 0.4%)에 불과하던 연해주 한인 숫자가 96년에는 1만8천명(연해주 인구의 0.8%)으로 증가됐으며, 97∼ 98년에는 15만명 이상으로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또 보 고서는 『이같은 인구이동은 한국정부의 후원을 받는 고려인협회에 의 해 추진되고 있다』며 이것이 계속 될 경우, 『연해주를 상실하게 될는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특히,『일부 한국인 기업가들과 목사들은 연 해주가 한민족 선조의 땅이라고 선전하고 있다』며 『이들의 활동에 주 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북한 노동자들의 불법 이주문제도 거론하고 있는데, 이 역시 연 해주에 대한 위협요소이며, 『한반도가 통일 될 경우 위험한 사태가 발 생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연해주 주정부의 고위관리는 『그런 보고서가 작성, 보고된 것은 사실이나 한국인유입을 막을 경우 투자가 위축돼 연해주 경제가 흔들리게 된다』며, 『내무부 보고서가 실현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출처 : | 이선생의 블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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