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길지­혈맥훼손

영지니 2010. 11. 28. 23:24

 

길지­혈맥훼손

◎민간신앙 전통끊어 국민열패감 조장/명당자리마다 쇠말뚝박아 국운쇠퇴 기도/정부,전국적 실상조사 착수 완전제거 계획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배정책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정도로 주도면밀했다.민족성 말살 을 통해 영구지배를 획책한 일제는 한민족 고유의 민속전통과 민간신앙까 지 금지시키고 왜곡시켰다.풍수지리학에 근거하여 한반도의 주요 혈맥에 쇠말뚝을 박고 맥을끊어 길을 냈는가하면 요지에 건물을 지어 운기를 눌 렀다.

총독부 촉탁 무라야마 지준(촌산지순)이 1931년에 펴낸 「 조선의 풍수」를 보면 『조선문화의 이면적이고 근본적인 현상중 하나가 풍수다.오랫동안 조선 민속신앙의 지위를 지켜왔기 때문에 한반도 어디를 가도 믿지않는 자가 없다』고 씌어있다.

일제는 한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명당을 찾는다는 것을 알았을뿐 아니라 명나라 사신 이여송이 인재가 많 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경북 선산의 지맥을 끊고 쇠못을 박았다는 사 실도 알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인이 독특하게 발전시킨 풍수사상에 입 각해서 한반도의 길지와 혈맥을 훼손하고 국가의 기운을 꺾으려 했다.일 반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민간신앙의 전통을 끊어서 대중들의 열 패감을 조장했던 것이다.

그 방법도 다양해서 북한산 백운대와 속리산 문장대,경북 풍악산등에는 쇠말뚝을 박았고 경기도 파주 용암사 부근과 강원도 인제군 가마봉등은 산을 끊기도 했다.

쇳물을 녹여 넣는가하면 산꼭대기에 구덩이를 파고 불을 지펴 뜸을 뜨기도 했으며 사발을 엎어서 묻었다.명주실과 함께 북어를 묻은 곳도 있고 충남 부여의 용머리처럼 폭파시키기도 했으며 태봉산의 태실을 캐내기도 했다.

그동안 민간단 체와 개인들에 의해 백운대와 속리산 문장대,마산 무학산,북한산 노적봉 등의 쇠말뚝은 제거됐다.대구시 남산동 나정엽씨(47)는 지난 90년 대구시 남구 용두골에서 길이1·5m 지름3㎝가량의 쇠말뚝을 뽑아내 자 신이 경영하는 식당에 보관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 광복50주년을 맞 아 일제가 박아놓은 전국의 쇠말뚝 실상을 파악,제거할 계획이다.경상북 도의 경우 지난1월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주민의 제보를 통해 소재를 파악했다.현재 파악된 경북도내 쇠말뚝은 청도군 주구산과 영덕군 국사당 산·칠보산·고불봉,포항시 장기면 감골,울진군 마룡산·남수산,봉화군 까 막골·풍악산,경주시 안태봉산등 10여곳에 이른다.

청도군 주구산의 쇠말뚝은 지난14일 산신령에게 고사를 지낸후 뽑았는데 길이가 1m 지 름이 4㎝가량이었다.이 쇠말뚝이 박혀있던 곳은 「용이 물을 마시는 형 상」(갈용음수형)의 명당으로 용의 코에 해당되는 지점이라는 것이 풍수 이론가들의 설명이다.

일제는 한일합방 20여년 전인 1880년대부터 대륙진출을 위해 육군참모본부의 첩보활동으로 한반도 지도를 작성했다. 일제에 의해 조작된것으로 추정되는 광개토왕비 탁본도 1880년대 만주 지역에 들어가 첩보활동을 폈던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떠온 것이다.

일제는 조선침략을 위해 수십년을 걸쳐 미리 한반도의 지형과 풍수를 샅샅이 조사했다.이렇게 해서 명당으로 보이는 곳마다 일제의 마수가 안뻗친곳이 없을 정도고 온통 「쇠말뚝 곰보」가 된것이다.

서경대 서길수 교수 (경제사)는 『풍수지리학이 현대에 와서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의 문제는 중요하지가 않다』면서 『민족혼과 정기를 고양시키기 위해 국민들의 마 음속에 깊숙이 박힌 말뚝을 하루빨리 뽑아내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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