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으로 본 性이야기] 경북 안동 와룡면 태리 남근석
아들 10살까진 치성 드려야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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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안동과 관련한 기사 중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인근 지역에 남근석이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한번 내려가는 것도 어렵기에 여러 곳을 일시에 보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자료를 뒤지다가 1984년 2월 20일자 안동대학교 신문에서 이 대학 임세권 교수의 ‘선사시대 안동지방의 성신숭배’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안동 내에 대표적인 선돌이 7곳에 있는데, 이 중에 3개가 와룡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와룡면에 존재하는 남근석은 단순한 선돌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의 형상을 한 것이 태리의 남근석이다. 안동에서 청량산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커다란 암벽이 마치 산허리에 치마 두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맞은편으로는 커다란 남근이 도로 쪽을 향해 뻗어 있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보면 마치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그러나 원래도 이런 모습으로 이곳에 위치했었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말이다.
이 남근석의 설명문에는 불알바위(아들바위)라고 명시돼 있다. 불알이나 아들이나 모두 남성을 상징하는 성기를 의미한다. 마치 받침으로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불알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정말로 남근과 같은 바위를 얹어놓아 사실감을 더한다.
게다가 도로 맞은편에는 치마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비스듬하게 겨누고 있다. 드러누워 여성을 마치 거슴츠레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남근석과 여성바위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조개바위, 태리 남근석에서 바라본 치마바위.(왼쪽부터)
이 바위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현재 바위 옆으로 나 있는 도로를 만들면서 공사업체가 없애버렸다. 그런데 안동지방의 신문이나 언론이 나서서 다시 복원하라는 항의가 빗발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사업체가 현재와 같이 돌로 계단을 만들고 그 위에 남근석을 세웠다고 한다.
태리의 남근석은 원래부터 유명했다. 이곳에서 치성을 드려서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전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이 바위와 관련된 전설은 그런 속설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안동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안동의 지명유래’에 재미있는 전설이 실려 있다. 옛날 대를 이을 자식을 낳지 못해서 애를 태우던 부자가 있었다. 이를 불쌍히 여기던 한 노파가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들은 며느리가 바위 앞에서 정성을 드려서 정말로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아들을 못 낳는 아녀자들이 이 바위에 와서 치성을 드렸기 때문에 아들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전설은 부자라고 해도 자식을, 그것도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면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없다고 하는 전통적인 사고가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무엇보다도 이 바위를 남근석이나 불알바위라고 부르는 대신에 아들바위라고 했다. 이는 명칭이 상스럽지 못하다는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이칭(異稱)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아들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아들바위라고 했다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아들을 낳도록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남근석이나 불알바위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
이 바위에 얽힌 속설은 비단 아들만 낳고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아들을 낳아도 10년 정도는 찾아와 치성을 드려야만 아들이 무사히 잘 클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만약 아들을 낳고 치성을 드리지 않는다면 죽거나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동지방의 삼신신앙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첫이레와 두이레, 세이레는 물론 아기가 성장하면서 10살이 되기 전까지는 생일날에도 삼신상을 차려준다. 아이가 무사히 잘 자라기를 삼신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이 바위를 찾아와서 치성을 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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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웃마을인 가구리에도 우람한 남근 모양의 선돌이 있는데, 태리와 달리 세워져 있다는 차이가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선돌의 형상임이 분명하다. 이 선돌은 그 크기가 290㎝에 둘레만도 200㎝가 될 정도이다. 생산력이 강해 보이는 이 선돌 앞에는 조그만 제단이 마련돼 있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금줄을 치고 동제를 올렸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 또한 이 선돌과 짝을 이루는 여자바위인 조개바위가 그곳에서 40m 정도 떨어진 개울에 위치한다. 커다란 조개 형상을 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앞부분 중간에 조그맣고 둥근 바위가 점처럼 박혀 있다. |
◇가구리의 남근석.
그리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마치 공알바위와 같은 형국이다. 조개바위라는 명칭도 여성적인 속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선돌과 조개바위는 한 쌍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이 선돌이 마을 입구에 있음은 물론 수살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가구천 사이로 들어오는 온갖 잡신과 귀신을 막아주는 기능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안동의 지명유래’에 보면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풍수지리로 마을이 선주형(船舟形)이기 때문에 마을입구에 돛과 같은 역할로 이 선돌을 세웠다는 말도 있다. 마을이 배라 우물도 깊이 뚫지 못했다는 것은 이런 풍수지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만약에 깊이 뚫게 되면 배가 가라앉게 된다. 이것은 바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기를 비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원래 태리의 바위처럼 눕혀져 있었는데 바로 세웠다는 설도 있고, 어떤 장수가 이 선돌을 갖고 가다가 무거워 그냥 놓고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가구리와 태리의 선돌은 눕혀 있거나 세워져 있거나 큰 상징적인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돌로 여겨진다. 가구리의 선돌 근처 밭에서 일하던 안우섭(66)씨와 나눈 대화에서도 이 선돌을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점을 느낄 수 없었다. 태리의 바위가 아들을 낳는 데 영험함이 있었다는 말도 바위 앞의 설명문에서나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바위를 사진 찍고 길이를 재는 나의 모습이 도로를 달리는 차량 운전사들에게 오히려 흥미의 대상이 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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