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옛 그림 몇 점 과 아이젠슈테트의 풍경사진

영지니 2011. 3. 17. 19:27

 

조선시대 그림 가운데 가을 정취를 그린 몇 점 소개합니다. 동양화는 그림에 담긴 뜻을 읽어내야 제대로 그림을 감상한다고들 하는데 설명은 관련 자료 외에 <동양화 읽는 법>(조용진, 집문당, 1999)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조용진 교수는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7년 동안 가톨릭의대에서 인체해부학을 연구하고 일본 동경예대에서 미술해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창회도 여러 번 갖는 등 이력이 독특하신 분이네요.

 

김희겸 <잠자리와 들국화> 종이에 옅은 채색 28.6 x 20.4cm(서울대박물관 소장)


도화서 화원 출신인 불염재 김희겸(不染齋 金喜謙, 1710년경~?)의 들국화 그림입니다. 김희겸은 ‘특히 초상화에 뛰어났다’고 전해지며, 영조대왕의 어진을 개모(改摸)할 때 공으로 사천현감을 지냈습니다. 잠자리 앞다리를 개구리 앞다리처럼 그린 부분이 참 잼있네요~^-^

  

  변상벽 <들국화와 가을 고양이> 종이에 채색 29.5 x 22.5cm(간송미술관 소장)

 

화재 변상벽(和齋 卞相璧, 1730~?)도 도화서 화원 출신입니다.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계(卞鷄, 변닭), 변고양(卞古羊, 변괭이)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양반들은 그림에 빠진 자식이 있으면 변상벽의 별명을 입에 올리면서, 그러다가 네놈 자기 이름을 잃어버리고 닭이니 괭이니 불린다며 꾸짖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있습니다만... 이 그림을 보면 들국화(구절초)도 운치 있게 잘 그렸으니, 그림 재주가 출중했던 화가입니다~~


변상벽의 <들국화와 가을 고양이>와 아래 겸재 정선의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는 70세를 맞이하신 분의 생신을 축하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중국어로 국화 국(菊)은 거(居)와 발음이 비슷해서 은거(隱居)를 의미하며, 고양이 묘(猫)는 70세를 이르는 질(耋)과 발음이 비슷하여, 이 그림은 '은거향질(隱居享耋) : 유유자적 은둔해 살면서 고희를 맞다'란 뜻을 지닌 그림이라 하네요~;;


한 가지 덧붙여, 위 두 그림의 들국화는 흔히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는 감국(甘菊)이 아니라 구절초 같은데, 감국만 들국화라고 부르지 않고 가을에 들에 피는 국화를 닮은 종류는 모두 들국화라고 한다네요...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산국, 감국 등등이 모두 들국화란 거죠. 상수리나무가 따로 있지 않고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을 모두 총칭하는 것처럼요^^;;

  

 정조대왕 <들국화와 바위> 종이에 수묵 86.4 x 51.4cm(동국대박물관 소장)


정조대왕도 들국화를 그렸습니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붓글씨 공부를 되게 했기 때문에 붓 다루는 데 익숙했습니다. 국화꽃 위에 조그맣게 방아깨비를 그린 것이 재미있습니다~~


국화는 은일(隱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장수(長壽)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바위 역시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 그림은 수(壽)+수(壽)가 되어, 익수(益壽)라고 읽는다고 합니다.

  

 겸재 정선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 비단에 채색 30.5 x 20.8cm(간송미술관 소장)


그 이름도 찬란한 겸재 정선(謙齋 鄭歚, 1676~1759)입니다. 국화 꽃 위에는 벌을 그렸고, 땅에는 방아깨비를 그렸습니다. 들국화의 연보라가 아주 좋습니다~~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금강전도(金剛全圖)>로 진경산수(眞景山水 : 풍경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에 주력하는 방법. 그러나 실경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 아니라 겸재의 그림은 과장과 왜곡이 아주 두드러져 보입니다)라는 독자적 화풍을 일군 겸재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작고 250주년 되는 해이네요. 간송미술관은 1년에 5월과 10월 딱 두 번 일반인 관람을 허용하는데 올 5월에 겸재 정선 250주년 특별전시회를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라는 주제로 250주년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11월 22일까지).

  

 겸재 정선 <여뀌와 매미> 비단에 채색 30.5 x 20.8cm(간송미술관 소장)


붉은 꽃타래가 휘어진 여뀌는 가을 강변에 많았다고 합니다. 그 여뀌 줄기에 매미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매미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책에는 달리 그림에 대한 의미 풀이가 없어 제 나름 어깨 너머 풍월로 읊자면, 여뀌는 중국말로 료(蓼)라고 읽는데, 이것은 마칠 료(了)와 음이 같으므로 '학업을 마치다'란 뜻이며, 매미는 오덕(五德: 文, 淸, 廉, 儉, 信)을 갖춘 곤충으로 봤기에, 이 그림은 아마도 '학문에 힘써 오덕을 갖추고 학업을 마치다'란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옛사람들은 매미를 오덕을 갖춘 곤충으로 봤다고 하는데요, 즉 매미의 입이 곧게 뻗은 것이 갓끈이 늘어진 것을 연상시켜, 매미에게는 학문(文)이 있고, 이슬을 먹고 사니 맑음(淸)이 있고, 사람이 애써 가꾼 곡식이나 채소를 먹지 아니하니 염치(廉)가 있으며,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이 사니 검소(儉)하고, 추워지면 때 맞춰 죽으니 신의(信)가 있다, 이것이 매미의 다섯 가지 좋은 점이라고 했답니다. 임금의 익선관(翼蟬冠)은, 매미날개처럼 생긴 것을 모자 뒤편에 갖다 붙인 건데, 매미의 오덕을 잊지 말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겸재 정선 <꽈리와 수탉> 비단에 채색 30.5 x 20.8cm(간송미술관 소장)


요즘도 꽈리를 심는지 모르겠지만, 저 어릴 때만해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꽈리(등롱초) 옆의 꽃이 개미취인지 들국화인지 모르겠지만, 옅은 푸른색이 참 좋습니다~~

  

겸재 정선 <맨드라미> 비단에 채색 30.5 x 20.8cm(간송미술관 소장)


<꽈리와 수탉>과 짝을 이루는 그림인데, 맨드라미 위가 심심할까봐 잠자리를 그려 넣었을까요... 맨드라미는 닭벼슬처럼 생겨서 한자로 계관화(鷄冠畵)라고 하며, 닭의 벼슬은 관모(冠帽)처럼 생겨서 계관(鷄冠)이라고 하는데, 둘 다 벼슬을 뜻하기 때문에 '관상가관’(冠上加冠 : 관 위에 관을 얻는다)을 뜻하며, 이는 관리로서 성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는 맨드라미와 닭을 옆으로 배치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위아래로 배치해야 한다고 합니다.

  

표암 강세황 <벼와 방아깨비> 종이에 옅은 채색 24.3 x 15.0cm(서울대박물관 소장)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0)은 예원(藝苑)의 총수라고 일컬어지는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데, 그림도 많이 그렸지만 평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쓴 평 중에 못 그렸다는 평은 없다고 하니 덕이 많았던 분인 것 같습니다~~  방아깨비의 기상(?)이 늠름합니다^^

  

변상벽 <암수탉이 병아리를 거느리다> 종이에 채색  30.0 x 46.0cm(간송미술관 소장)


보너스 그림임다~^-^ 변계(卞鷄, 변닭)라는 별명답게 닭들을 아주 잘 그렸습니다^;; 오른쪽 글씨가 위에서 말씀드린 표암의 평인데 "정교한 솜씨 신묘하니 옛사람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너스는 이 그림이 아니라, 왼쪽 위에 쓴 글이 잼있어서~~^&^

  

 

마군후(馬君厚, 1750경~?)라는 변상벽의 후배 화가가 쓴 글인데, 닭을 보니 삼계탕 생각이 난다는 내용입니ek.


"흰 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특수하다고 하나 5덕(德)이 남아 있다. 의가(醫家)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다려야 하겠으나, 아마 인삼과 백출과 함께 해야 기이한 공훈을 세우겠지."


위 글에서 ‘흰 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는 오골계를 말함인 것 같은데, 오골계는 충남 연산이 유명하며 연산 대추 넣어 제대로 푹 고면 그만이라 합니다~~^&^ ‘기질은 비록 특수하다고 하나 5덕(德)이 남아 있다’에서 ‘5덕(德)’이 앞 매미의 오덕과 일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국어사전에도 여러 갈래로 뜻풀이를 해놓았더군요), 흔히 막걸리를 ‘오덕’이라 일컫더군요. 허기를 면하게 하니 일덕(一德), 많이 마셔도 취기가 심하지 않으니 이덕(二德), 추위를 덜어주니 삼덕(三德),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우니 사덕(四德), 평소에 못하던 말을 술술 잘 하게 하니 오덕(五德)... ‘인삼과 백출과 함께 해야 기이한 공훈을 세우겠지’에서 ‘기이한 공훈’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Vineyard Times with Eisenstaedt


앞글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의 빅포’에서 소개한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의 풍경사진입니다. 60년대 말~70년대 초에 걸쳐 아이젠슈테트는 탁월한 구도와 색채의 풍경사진 작품을 발표하는데 이 시기를 ‘아이젠슈테트의 포도원 시기’라고 일컫습니다.

 

 

Menemsha Harbor, 1969

 

 

Dusk in Menemsha, 1962

 

 

Gay Head Lighthouse, 1967

 

 

Dory in Marsh, 1965

 

 

Kathy Eisenstaedt at Zack's Cliffs, 1960

 

 

Cliffs at Sunset, 1969

 

 

Dutcher Dock, Menemsha, 1962

 

 

Red Cosmos, 1972

 

 

Stone Walls, 1969

 

 

Sailboat and cliffs, 1970

 

 

Town Dock, February 1952

 

 

Giant Oak Tree, North Tisbury,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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