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의 문화유산
풍남문(豊南門)은 옛 전주읍성의 남쪽 문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규모는 1층이 앞면 3칸·옆면 3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경기전(慶基殿) 조선 태종 10년(1410)에 완산·계림·평양에 건물을 짓고 태조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세종 24년(1442)부터 지역마다 이름을 달리 불렀다고 한다.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
경기전 정전
지금 이곳에 모신 태조의 영정(초상화)은 세종 24년(1442)에 그린 것을 고종 9년(1872)에 고쳐 그린 것이다.
정전은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고쳐 지었다.
전주사고 출입문과 왕대나무
전주사고(全洲史庫)
조경묘(肇慶廟) - 태조 이성계의 시조인 이한과 그의 부인 경주김씨의 신주를 모셔놓은 사당
조경묘 부속 건물
예종대왕 태실비
건물 구성은 중심 건물과 부속 건물, 문으로 나뉘어 있으며 제사기능을 가진 건축물의 특성을 잘 따르고 있다.
수복청(守僕廳) - 경기전의 제사를 맡은 관리들이 머무르는 곳
경덕헌(慶德軒) - 경기전의 수문장이 머무르는 곳
서제(西齋)와 동제(東齋) - 제사를 지내는 집으로 제각(齋閣)이라고도 함.
어정(御井)
임금이 참여하는 제례에 사용하는 우물
마청(馬廳) - 의식에 참례하기 위해 내려온 관리들의 말을 매어 두는 곳
누상고(樓上庫) - 제기를 보관하는 창고
용실(容室) - 제수용 음식을 만드는 방앗간
경기전 입구의 하마비(下馬碑)
오목대(梧木臺)는 태조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길에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
오목대
고종이 친필로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 라고 새겨진 비가 있는 비각과 오목대
오목대에서 내려다 본 전주 한옥마을
전주향교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이후 관찰사 장만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대성전은 1653년과 1907년에, 명륜당은 1904년에 중수되었다.
내삼문(內三門)인 일월문(日月門)
공자를 위시하여 4대 성인, 10명의 철학자와 송나라 육현을 봉안하고 있는 대성전(大成殿)
서무
동무
유학을 가르치던 명륜당(明倫堂)....독특한 건축미를 보이고 있다.
서제
동제
서제
공자, 맹자, 증자, 안자를 모신 계성사(啓星祠)
한벽당(寒碧堂) - 조선의 개국을 도운 공신이며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월당 최담 선생이 태조 8년(1404)에 별장으로 세운 건물이다.
풍남문(豊南門)은 옛 전주읍성의 남쪽 문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규모는 1층이 앞면 3칸·옆면 3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경기전(慶基殿) 조선 태종 10년(1410)에 완산·계림·평양에 건물을 짓고 태조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세종 24년(1442)부터 지역마다 이름을 달리 불렀다고 한다.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
경기전 정전
지금 이곳에 모신 태조의 영정(초상화)은 세종 24년(1442)에 그린 것을 고종 9년(1872)에 고쳐 그린 것이다.
정전은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고쳐 지었다.
전주사고 출입문과 왕대나무
전주사고(全洲史庫)
조경묘(肇慶廟) - 태조 이성계의 시조인 이한과 그의 부인 경주김씨의 신주를 모셔놓은 사당
조경묘 부속 건물
예종대왕 태실비
건물 구성은 중심 건물과 부속 건물, 문으로 나뉘어 있으며 제사기능을 가진 건축물의 특성을 잘 따르고 있다.
수복청(守僕廳) - 경기전의 제사를 맡은 관리들이 머무르는 곳
경덕헌(慶德軒) - 경기전의 수문장이 머무르는 곳
서제(西齋)와 동제(東齋) - 제사를 지내는 집으로 제각(齋閣)이라고도 함.
어정(御井)
임금이 참여하는 제례에 사용하는 우물
마청(馬廳) - 의식에 참례하기 위해 내려온 관리들의 말을 매어 두는 곳
누상고(樓上庫) - 제기를 보관하는 창고
용실(容室) - 제수용 음식을 만드는 방앗간
경기전 입구의 하마비(下馬碑)
오목대(梧木臺)는 태조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길에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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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고종이 친필로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 라고 새겨진 비가 있는 비각과 오목대
오목대에서 내려다 본 전주 한옥마을
전주향교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이후 관찰사 장만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대성전은 1653년과 1907년에, 명륜당은 1904년에 중수되었다.
내삼문(內三門)인 일월문(日月門)
공자를 위시하여 4대 성인, 10명의 철학자와 송나라 육현을 봉안하고 있는 대성전(大成殿)
서무
동무
유학을 가르치던 명륜당(明倫堂)....독특한 건축미를 보이고 있다.
서제
동제
서제
공자, 맹자, 증자, 안자를 모신 계성사(啓星祠)
한벽당(寒碧堂) - 조선의 개국을 도운 공신이며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월당 최담 선생이 태조 8년(1404)에 별장으로 세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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