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

추억의 음악다방

영지니 2013. 10. 29. 23:22

추억의 음악다방



"뽀얀 담배 연기로 가득찬 다방은 20∼30대들로 발디딜 틈도 없다. 그들은 유리창 속의 ‘DJ’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에 취한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때로는 고막이 터질듯한 보컬그룹의 록 음악이 나오면 마치 리드 싱어가된 듯 노래를 따라부르며 몸 장단을 맞춘다."
 
지난 60∼70년대를 거쳐 80년대 중반까지 각 도심과 변두리 지역에 넓게 자리했던 ‘음악다방’속의 한 풍경입니다.
차 한잔 값이 100원 정도 하던 시절, 음악다방은 마땅히 갈곳 없고 호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던 사회 초년생들이나 대학생,젊은 직장인들의 유일한 휴식처였었지요.요즘같이 후덥지근한 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라면 사랑하는 연인과 시원한 음료나 커피를 마시며 평소 좋아하던 팝송을 맘껏 들을 수 있는 음악다방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음악다방의 얼굴마담은 단연 DJ였습니다.유리창 너머 뮤직박스속의 DJ들은 왜 그리도 멋지고 경외스러웠던지.
그 시절 젊은이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화려해 보이는 DJ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장발이 유행하던 시절, 뒷주머니에 도끼빗을 넣고 다니며 거울 앞에서 뽐내며 머리를 빗는 DJ의 모습 또한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고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들에겐 DJ가 요즘 청소년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가수에 버금가는 ‘동네 우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뮤직박스 주위에 앉아 커피 한잔 시켜놓고 하루종일 친구와 노닥거리며 음악을 들었지요. 한번에 5∼6개의 팝송과 가요를 신청하는 욕심쟁이 단골손님도 많았고요. 여자들은 어쩌다 잘 생긴 DJ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기가 일쑤였습니다.
 
그 시절,‘약속다방’은 왜 그리도 많던지.그 약속다방에선 또 얼마나 많은 약속들과 기다림 ,헤어짐이 있었을까...
그때가 그립지만 요즘 추억의 음악다방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비싼 오디오를 구입할 수 없어 자연스레 음악다방을 찾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음악다방의 시발은 1950년대말 서울 충무로에서 문을 연 ‘세시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동의 ‘은하수’가 최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후 생겨난 종로2가 뒷골목의 ‘디쉐네’,  미도파 옆 시대백화점 자리에 ‘라 스칼라’,  화신백화점 3층의 ‘메트로’, 충무로의 ‘카네기’등도 7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뤘다고 합니다. 음악다방들도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었습니다.

 

 













































추억의 음악실 - DJ
2011년11월
세종문화회관 전시장1에서 문화체험 전시회'
여기는 대한민국 1970KHz'가 열린다에서
국내 방송DJ 1호 최동욱과 박원웅, 김광환의 DJ쇼가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루 종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곳,
라디오 DJ와는 달리 손님의 사연을 자상하게 소개 해 주던 음악다방.
여기엔 음악, 열정, 낭만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음악 다방의 진행자(DJ)로는
한국 방송사상 최초의 전문 DJ - 최동욱,
"별이 빛나는 밤에" 80년대 국민 DJ - 박원웅,
"김광한의 팝스 다이알" - 김광한


뮤직박스 안의 DJ 김광한 씨




LP 음악을 듣기 위해 몰려든 청춘 인파로 음악다방은 북적북적 이 곳에 재현된 음악다방은 추억 속 그 시절에 커피를 마시면서 신청노래와 팝송을 들으면서 연인과 혹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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