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

'앵두나무 처녀'에 얽힌 사연

영지니 2013. 10. 29. 23:27

'앵두나무 처녀'에 얽힌 사연





이 노래 '앵두나무 처녀(處女)'도
바로 그 시대에 알맞은 시대상을 노래로써 발표한 것이다.
그러니까 시대의 아픔을 아니 희노애락을 그렸다고 하면 정확할 것이다.
'앵두나무 처녀(處女)'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대변한 대표적인 노래 중에 하나다.
'앵두나무 처녀#處女#' 이 노래는 1950년대에 도미도 레코드회사에서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김정애 노래로 발표된 노래다.



노래는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뿐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로 시작된다.
당시 이 노래가
얼마나 유행이 되었었는지 어린 시절에도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우물가 하면, 연상어로 앵두나무가 떠오른다.
앵두나무는 양지바르고 습한 곳을 좋아해서 우물가에 많이 심는다.

우물가 위에 넓적한 바위가 있고
바위 옆 우측으로 키 작은 앵두나무가 보인다. 앵두나무는

난쟁이 형질이 있어서 다 자라도 3m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열매만큼은 엄청나게 줄기마다 다닥다닥 열린다.
다산성 형질을 가지고 있다.

 
[우물가와 앵두나무]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동네처녀가 바람이 나서 서울로 단봇짐을 쌌다는 가사이다.
동네 처녀가 왜 바람이 날까?
누구나 삭막한 겨울이면 따듯한 봄을 그리워한다.
봄꽃의 연분홍 색상은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의 시골은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잘 사는 곳으로 알려진 서울을 동경하는 마음이야 어떠했을까?
봄이 되면 목적 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봄은 생식의 계절이다. 만물이 바람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또 옛날 소설을 보면,
미인의 기준으로 입술의 아름다움을 앵두와 비교하였다.
앵두의 붉은 색상과 보드라운 감촉,
터질 것 같은 도톰한 모양,
속살이 보일 듯한 맑고 싱그러운 열매를 보고 그렇게 표현 한 것 같다.


[붉은 입술처럼 도톰한 앵두의 아름다움]
또, 앵두나무는 독특한 특색이 있다.
무엇일까. 꽃이 피고 수정해서 열매를 맺고 과일이 익는
데까지 불과 2개월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속전속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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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나무처녀가 우물가에서 물깃던 시절의 배경


왜 우물가가 앵두나무 처녀의 배경인가 천봉작사 한복남작곡 김정애의 노래로 1957년에 발표된 '앵두나무처녀'라는 제목의 이 대중가요 가사야말로 개국이래 수천년 이어져온 농업국으로서의 패러다임이 전란이후의 복구와 건설과정에서 서서히 '서울공화국'으로 변해가던 우리나라의 전반에걸친 '모더니즘'열풍속의 대표적인 풍경을 4절4음의 세줄짜리 가사3절속에 압축시킨 빼어난 수작이다. 2차대전 수행을위해 수탈에 혈안이되었던 일제가 쫓겨가고 준비도 없이 밀어닥친 정치와 경제의 급격한 자유화로인한 혼란속에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재차 초토화된 우리의 국토, 얼마간의 공산치하를 경험했던 많은 북한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남쪽에 잔류함으로서 휴전과함께 이미 거대도시가 되어버린 서울은 외국의 원조나, 경제개발을 표방한 혁명정부의 역량이 집중 될 수밖에 없었고 명절의 민족대이동 풍습과 막 보급되기 시작한 라디오 매체의 영향으로 서울은 평등과 기회가 보장된 이상향으로 온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한편 농촌지역 마을 공동의 우물은 부엌일에 소바라지에 들일까지, 해도 해도 끝이없는 노동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절망하던 이팔청춘 동네처자들의 푸념과 정보교환의 장이었다. "누구네집 누구네언니는 양복매무새가 말쑥한 신랑감을데리고 인사를 왔네 누구는 편지에서 전차를타고 창경원 밤벚꽃놀이를 갔다더라." 풍문으로 들려오는 소식들을 입방아찧다가 우물 가장자리쯤에 십중팔구는 있게 마련인 키작은 앵두나무까지 눈높이에서 연분홍의 꽃잎을 펼쳐내면 그러지않아도 진달래에 복숭아꽃 살구꽃 휘황찬란한 봄꽃들의 향연에 울렁울렁 인내력의 경계에서 흔들리던 처녀가슴에 불을 질러 물동이와 호미자루를 내 던지고 야반도주 지난 설에 왔었던 동네 언니 주소하나 달랑 들고 서울행 기차를 타게 했으니, 그저 제 소임을 위해 작은 가지에 띄엄띄엄 수수한 꽃을 피워 냈을뿐인 앵두나무로서는 울고싶던 차 뺨을쳐 준 격이 되어 억울한 누명만 쓰게 되었다. 처녀들이 떠난 후 의욕을 잃어버린 농촌의 총각들까지 지게를 벗어던지고 상경하여 눈감으면 코베어간다는 요지경세상 서울에서 찾아낸 이뿐이의 현실은 그들이 상경할때 꿈꾸었던 이상향의 도시만은 아니었으니.. 이 노랫말은 참으로 쉬운 말 만을 이어놓은 한편의 서사시이다 전문가도 해석에 논란을 부른다는 난해한 단어들로 쓰여져 서구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T.S엘리엇의 'The Waste Land(황무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쉽게그려낸 한시대의 현상과 그늘..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중략) 철없이 믿어버린 당신의 그입술 떨어지는 앵두는♬ 아니겠지요" 한번 덤테기 쓴 누명초차도 억울하기 그지없는데 1978년에 미남가수 최헌이 부른 '앵두'라는제목의 노래가사에선 한껏 유혹해놓고는 흔적도없이 떨어져버리는 사랑의 변절자로서 비유되고있으니 그저 수수하고 보잘것없는 떨기나무로서 크지도, 그다지 맛있지도않은 열매를 맺었을 뿐인 앵두나무로서는 영향력있는 로펌에라도 의뢰해 '명예훼손 청구소송'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내가 뭘 어쨌냐고요~"



그 시절 여인네가 힘들어하던 우물 예전엔 집안에 우물을 둔다는 것이 부잣집이나, 일부 물이 솟는 샘을 끼고 집을 지은집 말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샘이 있는 집도 가뭄이 든 여름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 공동 우물이나 흐르는 개울물을 길어다 생활용수로 사용했으니 십여리길 물을 길러 나서는 아프리카 여인들 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그시절 아녀자 들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답니다 적어도 손잡이 달린 양동이 물지게가 나오기 전까지는 오직 질그릇.. 둥글고 오목한 동이가 물을 긷는 유일한 도구였으니 여자로 태어나 자라면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하는것이 물동이 이는 것이었습니다 또아리 정수리 위에 대고 물동이를 인다 하나.. 배기는 고통은 피할수 없었고 무게에 의해 목은 얼마나 고통 스러웠을까요 그 물동이 이는 것도 삼년여는 해야 비로소 두손 놓고 이고 다닐만 했으니 그때쯤이면 이곳 저곳에서 혼삿말이 오가는 혼기 꽉찬 나이가 아니겠는지요 매파를 놓고 인연이 있어 출가하고 보니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서운 시어미.. 시집살이에 긴장하다 보면 어찌 실수 또한 따르지 아니 했겠는지요 물동이 이는일 배울때도 실수로 물동이 몇개 깨뜨렸겠지만 눈오고 미끄러운길 넘어지며 물동이 아작내고 시어미께 혼날 생각에 홀로 눈물 지은 아낙네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 물동이는 동이안에 작은 바가지 하나 살짝 얹는것이 물 넘치는 것을 조금이나마 방지 할 수 있는 작은 센스가 되기도 했답니다 그 물동이 고된 노동에서 여인네들이 해방된것이 어느 장날 양동이를 사오고 물지게를 만들어 남정네들도 물지게를 지면서 부터인데 부엌 한켠에 큰 독을 놓고 물을 채우면서 부터 이니 그 해방감도 달콤했으리라... 이제는 상수도가 있어 그 물지게도 내다 버리고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만 세상입니다그만큼 육체적으로 편해졌으련만 세상이 함께 맞벌이 해야 살아갈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여성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달프기는 마찬가지 인가 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편함이 있으면 힘든것이 있는게 세상 이치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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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터지게 그리운 우물가 추억…… 두레박질을 해길어 올린 물에는 상큼한 하늘에구름이 두둥실 떠 다닌다. 들어 마시는 두레박 물에반은 흘러넘치고 반은 입으로 들어가이가시린 한 모금에내장까지 시원해 보릿고개에선우물물로 빈 배를 채웠고…… 양팔을 크게 벌려성큼 성큼 두레박질을 해봄나물을 다듬던 우리의 다라에 물을 가득 채워주던 이제는 먼저 간언니를 생각는다. 다시는 볼 수도 길어 올릴 물도 없는 사막에서꿈에서나 볼 수 있으랴



앵두를 영어로는 cherry (한국의 버찌)라고 해석 그렇지만, 앵두는 그런 좋은 이름을 가졌지만 외관상 뛰어나거나 좋은 과일은 아니다. 앵두는 시금털털하고 과육이 얇고, 과육에 비하여 씨가 커서 한마디로 맛의 가치는 없다.
앵두나무 처녀 / 김정애 천봉작사,한복남 작곡(1957)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라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석유 등잔 사랑방에 동네 총각 맥 풀렸네 올 가을 풍년가에 장가들라 하였건만 신부감이 서울로 도망 갔대니 복돌이도 삼용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서울이란 요술쟁이 찾아갈 곳 못 되더라 새빨간 그 입술에 웃음 파는 에레나야 헛고생을 말고서 고향에 가자 달래주는 복돌이에 이쁜이는 울었네

앵두나무 처녀 / 김정애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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