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카로틴은 당근 이외에도 고구마와 호박 같은, 우리 정서와 푸근하게 떨어지는 식품에도 많이 들어 있다. 호박은 범벅이나 죽과 떡의 형태로 늘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정겨운 한국적 베타카로틴이 여기 있으니 어서 잡수세요' 라고 유혹한다.
고구마는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다. 밤거리에 나선 아르바이트 학생들 도와주는 셈치고 따끈따끈한 군고구마 한 봉지 품에 안으면 한겨울 추위도, 인생살이의 험난한 칼바람도 사르르 녹아 버린다.
오늘날 정력제의 대명사는 인삼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익스피어 시절에는 고구마가 가장 인기 있는 정력제였다. 고구마는 당근과 함께 베타카로틴을 풍부하게 가졌으며 비타민E를 공급하는 몇 안되는 채소다.
실제로 채식주의자들은 비타민E를 동물성이 아닌 식물에게서 섭취하려고 아몬드나 호두, 캐쉬넛 같은 견과류를 반드시 챙겨 먹는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이 고구마를 가지고 소박한 실험을 해 봤다. 12명의 실험 대상자가 3주 동안 매일 점심식사로 고구마와 케일을 먹고 음료로는 토마토 주스를 마셨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음식들은 모두 카로티노이드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고구마에는 베타카로틴, 토마토 주스에는 리코펜, 케일에는 루테인).
이렇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그것을 물리치는 과정을 살펴보니 대단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T세포의 생산능력이 30%나 증가했던 것이다. 하루 한 끼, 3주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이만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은 연구진들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결과다.
T세포 소집(생산)능력이 30%나 증가되었다는 것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니, 카로티노이드 효과를 면역차원에서도 실감한다. 그리고 우리네 간식거리 고구마, 시골냄시 푹푹 풍기는 고구마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한다.
게다가 고구마는 비타민과 미네랄을 섬유질 외에도 암과 싸우는 파이토케미컬 퀠세틴querceitn을 함유하고 있다. 퀠세틴은 발음의 난이도만큼 그 기능을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 몸 안에는 외부 침입자를 적발하고 격리시키고 때로는 박멸하는 여러 형태의 경찰과 군인들이 있는데, 이중 대식세포(macrophage)는 나쁜 목적을 가지고 침입한 세포들을 사정없이 때려 잡는다.
경찰관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범인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인권문제가 거론되는 것처럼 대식세포가 침입세포들을 마구 잡아먹을 때 유감스럽게도 우리 몸에 있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열을 받게 된다.
이 나쁜 콜레스테롤이 운동하게 되면 좋은 콜레스테롤이 맥을 못 추게 되는데 이때 퀠세틴이 나서게 되면 나쁜 콜레스테롤이 더 이상 행패를 부리지 못하게 된다.
고구마의 효과가 이 정도이니 길거리 음식이라고, 기껏해야 피자 테두리에나 들어가는 고구마라고 얕잡아 봐서는 안 될 일이잖은가?. 퀠세틴은 심장병을 감소시키고 폐암을 억제하는 기능도 갖고 있으니 도시 생활하는 분들은 특히 그 이름을 기억해 두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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