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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탄신제'만 40억..박정희 우상화 우려스런 이유

영지니 2016. 5. 22. 21:50



[한겨레]지역 현장 I ‘구미시 박정희로 107’을 찾아가다

구미시, 박정희 추모사업 한창
동상·생가·체육관…매년 사업
내년 ‘100주년 탄신제’ 앞두고
28억짜리 뮤지컬 제작도 추진

“구미 오늘 만든 반인반신” 예찬
재임때 시골마을을 산단으로 개발
시장 “도의적 차원의 추모행사”
“우상화 경제적 효과 없어” 비판

‘경북 구미시 박정희로 107’은 박정희 전 대통령(1917~1979)이 태어난 곳의 도로명주소다. 구미시는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곳 일대의 도로명주소를 ‘박정희로’라고 이름지었다. 원래 지번은 ‘경북 구미시 상모동 171’이다. 이 도로명주소로 찾아가면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가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19일 낮 1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로 가는 길목에는 ‘새마을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구호가 새겨진 새마을운동 상징물이 서 있었다. 새마을 모자를 쓴 남자 4명이 삽을 들거나 손수레를 끌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상징물 주변에는 박 전 대통령의 연혁과 업적이 적힌 게시판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 운동의 창시자, 조국근대화의 주역’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게시판도 보였다.

상징물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1.5㎞를 가니 높이 5m짜리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이 나왔다. 2011년 11월 성금 6억원을 모아 만든 것이다. 동상 뒤쪽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지은 시, 아내 육영수씨와 찍은 사진, 새마을 노래 가사 등이 적힌 대리석벽이 만들어져 있다. 대리석벽 근처에서는 새마을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 뒤로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사업’ 공사가 한창이다.

경북 구미시 박정희로 107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박 전 대통령은 1917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
경북 구미시 박정희로 107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박 전 대통령은 1917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

박 전 대통령 동상 주변에서 만난 주민 박아무개(75)씨에게 “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분 때문에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나 지금 밥이라도 먹고 사는 거지. 자네 같은 젊은 사람들은 요즘 박정희 안 좋아한다고 하던데, 좀 굶어봐야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마을운동 상징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왼쪽 길을 따라 올라가니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의 유품 등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 민족중흥관 기념품 판매소에는 새마을 모자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씨의 사진이 들어간 접시와 액자 등을 팔고 있었다.

구미체육관에서 2002년 이름을 바꾼 박정희 체육관.
구미체육관에서 2002년 이름을 바꾼 박정희 체육관.

민족중흥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가 나온다. 1917년 태어난 박 전 대통령이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원래 생가는 다 쓰러져가던 상태에서 5·16 쿠데타 3년 뒤인 1964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생가 옆에는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씨의 추모관이 있다. 추모관 입구 방명록에는 서아무개·이아무개씨가 남긴 “구미경제 살려주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37년이 지났지만, 구미는 그를 놓고 시끄럽다.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28억원짜리 뮤지컬 <고독한 결단>(가칭) 제작을 추진하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구미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수요일마다 구미시청 들머리에서 뮤지컬 제작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구미참여연대는 “박 전 대통령 추모 사업에 세금을 쓰는 것은 경제적 효과도 없는 과도한 우상화”라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870억원 예산의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사업 현장.
870억원 예산의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사업 현장.

실제 구미시는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 추모 사업에 많은 돈을 써왔다. 생가가 복원되고, 동상·추모관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지만 구미시는 2012년 3월 58억5천만원을 들여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을 만들었다. 2006년 2월부터는 286억원을 들여 ‘박정희 대통령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면적 7만7천㎡)을 추진하고 있다. 2013년 10월에는 870억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 사업’(면적 25만㎡)도 시작했다.

또 구미시는 2014년 6월 5400만원을 들여 ‘박정희 대통령 테마밥상 발굴·보급 사업’도 했다. 200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 생가 근처에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도 지을 계획이다. 앞서 2002년에는 구미 광평동에 있던 구미체육관의 이름을 아예 ‘박정희체육관’으로 바꾸었다.

해마다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날(11월14일)과 숨진 날(10월26일)에 각각 여는 ‘탄신제’와 ‘추모제’ 행사에 들어가는 구미시 예산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2년 추모제 예산은 686만원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147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탄신제 예산도 2012년 7350만원에서 2013년 7742만원으로 증가했다. 구미시가 지난 7년 동안(2009~2015년) 탄신제와 추모제에 쓴 돈은 모두 5억3338만원이다. 구미시는 내년에 40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의 ‘100주년 탄신제’를 크게 치를 계획을 하고 있다.

구미참여연대는 최근 성명을 내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인 미화와 우상화가 매우 우려스럽다. 또 사업 규모가 너무 커 재정적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사업들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나 효과가 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구미시는 원래 선산군을 중심으로 한 시골 마을이었다. 1962년 1월1일 구미면에서 구미읍으로 승격됐다. 이 시골 마을이 우리나라 최대 내륙산업단지로 개발된 것은 박 전 대통령 재임 때(1963~1979년)다. 1969년 구미국가산업1단지, 1977년 구미국가산업2단지와 3단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때(1988~1993년)는 고아·해평·산동 등 3개 농공단지가 들어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때(1998~2003년)는 구미국가산업4단지도 만들어졌다.

구미의 산업단지와 농공단지의 전체 면적만 2596만5천㎡나 된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3206개 업체에서 11만1689명이 일하고 있다. 구미시 인구는 41만여명이다.

2005년에 처음으로 수출액 300억달러를 달성했다. 경북 전체 23개 시·군 총수출액의 60% 이상이 구미에서 나온다. 1978년 2월15일 구미읍은 구미시로 승격됐다. 그래서 구미에서 경제개발 과정을 목격한 나이 든 사람들은 “박 전 대통령이 오늘의 구미를 만들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2013년 11월14일 박 전 대통령 탄신제에 참석한 남유진 구미시장은 기념사를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반신반인’(반은 신, 반은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4년 지방선거 때 경북도지사에 출마했던 박승호 전 포항시장은 “구미시를 아예 ‘박정희시’로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해 박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사람은 51만9211명이나 된다.

남유진 구미시장은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도 태어난 지역에서 추모행사 등을 하는데 박정희 대통령도 그런 도의적인 차원에서 구미시가 각종 추모행사를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너무 이념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이 태어나 발전시킨 구미의 지역적 특성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구미도 경제불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349억달러까지 올라갔던 구미지역 수출액은 2009년 289억달러로 떨어졌다. 이후 수출액은 2010년부터 다시 올라 2013년 367억달러를 달성했지만, 다시 곤두박질쳐 지난해에는 273억달러에 그쳤다. 구미는 한때 한국 총수출의 10%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5%로 비중이 줄었다. 구미는 그나마 직원 300명 미만의 기업이 많고 업종이 다각화돼 있어 다른 지역에 견줘 추락 속도는 덜한 편이다.

최인혁 구미참여연대 사무국장은 “경제불황에다 수도권으로 기업이 계속 빠져나가면서 한때 잘나갔던 구미도 점점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중앙정부에만 기대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 추모 사업에 쓸 돈을 줄이고 주민복지 확대 등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미/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