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서성(陝西省: Shaanxi) 화청지(華淸池: Huaqingchi, 화칭치)
화청지[華淸池(华清池): Huaqingchi, 화칭치)
섬서성(陝西省: Shanxi, 샨시) 서안시(西安市: Xian, 시안) 북동쪽 30km 거리의 임동구[臨潼區(临潼区): Lintong] 여산[驪(骊)山: Lishan]북쪽 기슭에 있는 화청지(Huaqing Hot Spring, 이하 화칭치)는 섬세한 온천풍경과 당현종(唐玄宗: Xuanzong, 712-756)과 그의 후궁 양귀비[楊貴妃: Yangguifei,EN-family: 'Times New Roman';lang=EN>style="EN-family: 'Times New Roman'-size: 12.0pt양옥환(楊玉環), 618-907]의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로 유명하다.
주(周: Zhou)나라 유왕(幽王: You, BC 781-771)이 이곳에 궁전을 지었다고 전한다. 진조(秦朝: Qing, BC 259-210)의 최초의 황제와 서한(西漢: Han, BC206-AD24)의 무제(武帝: Wu, BC140-87)가 이어서 증축했다. 당 현종(Xuanzong, 쉬앤종)은 그의 통치기간에 호화로운 궁전을 짓기 위해 국고를 쏟아 부었고, 화청지(華淸池) 또는 화청궁으로 이름을 고쳤다.
현종은 41년이 넘는 통치기간에 36번 이나 화칭치를 방문했다. 이렇게 화칭치는 3,000년의 역사를 갖고 온천은 6,00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중국의 100대 정원에 등록되었으며, 국가문화유적보호지구이고 국가핵심경관지역의 지위를 가진다.
정문에 들어서면 중국의 유명한 문학가 곽말약(郭沫若: Guo Moruo, 1892-1978)이 새긴 화청지(華淸池: Huaqingchi, 화칭치)란 비명(碑銘)이 있고, 우뚝 솟은 두 개의 삼나무가 방문객들을 반긴다. 안으로 들어서 두 개의 대칭적인 궁전 형식 욕조를 통과해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구룡호(九龍湖)를 볼 수 있다. 5,300㎡(1600평)의 면적에 조성된 인공호수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화청궁의 매력적인 주요경관의 하나이다.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물위의 연꽃과 고대 중국의 4대 미인 중 하나인 양귀비(Yang Guifei, 양귀페이)의 백대리석 조각상이 요정처럼 수줍은 듯 애원하는 듯 세워져 있다.
호수 뒤쪽에는 북쪽의 비상전(飛霜殿: Feishuangdian), 동쪽의 의춘전(宜春殿: Yichundian)과 구곡회랑(九曲回廊), 서쪽의 침향전(沈香殿: Chenxiangdian)과 용석방(龍石舫)을 포함하여 버드나무와 바위들이 산재한 복합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웅장한 비상전은 붉은 기둥과 섬세한 형태의 무늬가 조각된 침실이 있는데, 현종과 양귀비가 거처했던 곳이다. 풍류가 가득한 화청지에서의 생활은 상쾌하고 즐겁게 만든다.
용석방과 몇몇 전각을 지나 남쪽으로 걸으면, 중국에서 발견된 유일한 황실목욕탕이 있다. 남아 있는 5개의 목욕탕은 연화탕(蓮花湯: Lianhuatang), 해당탕(海棠湯: Haitangtang), 상식탕(尙食湯: Shangshitang), 성진탕(星辰湯: Xingchentang), 귀비지(貴妃池: Guifeichi) 등이다.
해당탕
연꽃모양의 연화탕은 황제의 욕실이고, 중국 능금을 닮은 해당탕은 후궁들을 위한 욕실이고, 상식탕은 관료들을 위한 것이다. 이전의 성진탕은 야외탕이었다고 한다.
환원[環園(环园 ): Huanyuan]은 과거 화청궁의 정원이다. 이곳에는 연화전(蓮花殿 Lianhuadian), 망호루(望河亭: Wangheting), 비홍교(飛虹橋: Feihongqiao), 비하각(飛霞閣: Feixiage), 오간청[五間廳(厅): Wujianting]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비하각은 양귀비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경치를 감상했던 장소라고 한다. 오간청은 청조(淸朝: 1644-1912)때 지어졌다. 1920년 8국연합이 북경을 점령한 후 이곳은 자희태후(慈禧太后: Cixitaihou)의 피난처였다. 1936년 유명한 서안사변(西安事變)이 일어났을 때 장개석(蔣介石, Chian kaishek, 蔣中正)도 잠시 머물렀다.
서안사변: 초공(剿共)작전 몰두한 장개석을 참모 동북군 장학량(張學良)과 서북군 양호성(楊虎城)이 감금하고 남경 국민당 정부의 개조, 내전 중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요구한 사건.
환원은 ‘양귀비가 화칭치에서 황제를 보필하기 위해 나가는” 모습을 새긴 대규모의 벽화가 있다. 90 개의 백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벽화는 길이가 9.15m이고 높이가 3.6m이다. 현종이 양귀비를 불러 축하연을 여는 장면은 당조(唐朝: 618-907)의 번영을 표현했다. 화칭치에 대한 시는 과거 정치, 경제, 예술을 엿볼 수 있다.
백거이(白居易) 장한가(長恨歌) 링크 http://blog.daum.net/chungsa2000/14111367
같은 명칭의 현대 영화 http://www.everlasting-regret.com/synopsis.html
화칭치를 방문하면 경관 뿐만 아니라 당조(唐朝:618-907)시대로 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양귀비의 욕실을 모방한 욕실을 볼 수 있다. 비록 온천수의 온도는 43℃에 불과하지만, 화칭치의 어느 쪽으로 흐르는 물이라도 미네랄과 유기 물질을 가지고 있어서 피부건강에 도움을 준다. 4개의 온천에서 나오는 물은 시간당 112ton을 뿜어낸다. 탕에서는 현종과 양귀비가 얻은 만족과 동일한 만족을 누릴 수 있다.
당나라의 음악공연과 오락을 경험할 수 있는 당예술전시관은 1995년에 지어졌다. 이곳에서는 당나라 형식을 모방한 춤 공연과 찻집에서 중국의 다도를 경험할 수 있다.
귀비취주(贵妃醉酒) 무용 http://www.youtube.com/watch?v=Gool6d2ChDg
비천(飛天) 무용 http://www.youtube.com/watch?v=-yFXPlhA-PA
서예에 흥미 있는 관광객은 화칭치의 궁전에서 수집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잇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것은 7개의 석비(石碑), 돌에 새긴 16개의 시, 7개의 비명(碑銘), 4개의 석조조각품 그리고 1949년에 발견된 69개의 서판(書板)이 있다. 모든 유물이 서예예술분야의 명작들이다.
화칭치가 서주(西周)시대의 봉화대와 당나라의 노모전(老母殿)과 같은 고대 건물이 남아 있은 여산 기슭에 위치한 이래 많은 전설과 민담이 전해지고 있다. 그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것은 제후들을 놀리기 위해 봉화대를 오용한 일이다.
그것은 서주(西周: Zhou)시대 유왕(幽王: You, BC 781-771)통치기에 일어났다. 처음에, 그는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번영되게 국가를 통치하며 다른 부족이 침입할 경우 봉화대로 이웃한 제후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연합하여 대항했다.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는 봉화대에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냈고 그러면 그의 동맹군들이 그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나, 그가 작은 나라의 아름다운 포사(褒姒: Baosi)를 조공으로 바칠 것을 요구한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아주 매력적이던 포사(mso-font-kerning: 0pt보쓰COLOR: blackmso-font-kerning: 0pt)는 유왕의 궁으로 돌아온 후, 그녀의 부모들을 너무 그리워하면서 한 번도 미소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왕은 그녀를 새로운 왕비로 삼고 많은 귀중품을 주었으나, 그녀의 오랜 얼굴 표정은 침울한 채로 변하지 않았다.
다른 해결책이 없는 와중에, 괵석부(虢石父:COLOR: blackmso-font-kerning: 0ptGuoshifu)라는 신뢰할 수 없는 왕실 관료는 다른 국가들의 제후들을 놀리기 위해 봉화대에 불을 올리자고 제안했다. 유왕은 괵석부의 간언에 따라 봉화대에 그의 사랑하는 왕비를 데려왔다. 불꽃이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을 본 동맹을 맺은 제후들의 군대는 봉화대로 진군을 서둘렀다. 동맹군은 유왕과 포사(mso-font-kerning: 0pt보쓰COLOR: blackmso-font-kerning: 0pt)의 웃음소리 보다 위험한 어떤 것도 없음에 놀라고, 언짢은 표정으로 그들의 영지로 돌아갔다.
포사(褒姒: Baosi)가 기쁜 웃음을 보이자, 유왕(幽王)은 크게 기뻐하며 금화 수천 냥을 괵석부에게 내렸다. 그 후, 유왕과 포사는 몇 번 더 봉화대에 불을 집혔고, 그 때마다 동맹군은 실망하며 돌아갔다.
어느날, 견융(犬戎:Quan Rong)이라는 부족이 왕국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했다. 왕은 즉시 봉화대에 불을 집혔으나, 이때는 동맹군의 군대가 더 이상 그를 믿지 않아서 도우러 나타나지 않았다. 유왕은 죽었고 포사는 포로가 되었으며, 이렇게 서주(西周)가 멸망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금화 수천 냥 가치의 웃음’ 과 ‘제후들을 놀리기 위한 봉화대의 오용’이란 작품을 탄생시켰다.
입장료는 겨울철이 40위안이고 그 외는 70위안이다. 개장시간은 09:10-17: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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