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만행(왜란)

괌 점령했던 일본군, 남태평양 섬에 위안부 시설 만들었다

영지니 2018. 11. 21. 19:43


괌 점령했던 일본군, 남태평양 섬에 위안부 시설 만들었다


美 국립문서기록관리청서 남태평양 위안부 자료 발견


[서울신문]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점령했던 남태평양 섬 일대에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입증하는 연합군 자료가 추가로 발견됐다.



일본군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진 사이판 가라판시 지도. 학교, 교회, 병원 등이 표시된 지도의 범례 14번(선)에 위안소가 표시되어 있다.서울시-서울대 정진성 연구팀 제공



서울시와 서울대 정진성 연구팀은 지난 7~8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자료 8000여건에서 미국령인 괌, 로타 섬 등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지역의 위안부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팀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측의 ‘맥밀란 보고서’에 ‘위안부를 목격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확인했다.


이 보고서는 괌 주지사였던 맥밀란 해군 대령이 1941년 일본군이 괌을 점령한 뒤 포로생활을 하면서 겪은 전쟁범죄를 해군부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1945년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1942년 1월 3일 호리이 일본 사령관의 대관병식 때 군대가 모였고 75명의 일본인 게이샤 걸들(Geisha Girls)이 사령관 뒤에 줄 서 있었다”,


“이 여성들은 군대 도착 직후 군의 편의를 위해 괌에 들어왔고 미군 장교들의 숙소(home)에 수용됐다”고 기록돼 있다.


‘수용된 게이샤’로 표현된 여성들은 일본군 위안부를 의미한다.

연구팀은 여기에 조선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괌 주지사였던 맥밀란이 1945년 10월 4일자로 해군부 장관에게 일본군 전쟁범죄 관련 내용을 보고한 보고서. 서울시-서울대 정진성 연구팀 제공



당시 일본군이 이들을 조직적으로 위안부로 편입시켰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일본군이 위안부와 위안소 이용에 익숙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군이 1941년 괌 점령 이후 일본인, 조선인, 차모로인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했다는 사실은 각종 증언으로 폭로됐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는 공문서가 발견된 것은 극히 드물다.

2007년 공개된 1945년 일본인 시노하라 재판 증언과 1997년 공개된 미국 해병대 심문 자료가 유일하다.

이 심문 자료에는 “조선인 여성 6명이 정글로 도망쳐 살아남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의 증언은 없는 상태다.


괌 사령부가 관할하던 로타 섬에 관한 기록도 발견됐다.

이곳은 양정순 할머니가 강제동원됐다고 증언한 곳이다.

1945년 9월 10일 작성된 군정 보고서에는 일본인과 조선인, 오키나와인 등 인구 현황과 함께 “7명의 위안부가 검진과 치료를 위해 미국 민간병원에 이송됐다”고 기록돼 있다.


곽귀병 연구원은 “병원에 이송된 7명의 위안부 중에 조선인 여성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사이판 섬 내 위안소 지도도 공개했다.

이 지도는 1941년부터 이듬해까지 사이판에 머물렀던 일본군을 심문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 해군이 작성한 것으로, 섬 중심 가라판시 내 여러 건물 중에 위안소가 표시돼 있다.


이 자료는 시로다 스즈코 등 일본인 피해자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일본군이 남태평양 섬 지역을 점령한 뒤 일본인, 조선인, 원주민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했다는 사실은 목격자 증언과 일부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다.


한국인 피해자 중에도 팔라우, 로타, 트럭 섬 등으로 강제동원됐다고 증언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기록 문서나 증언이 중국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적어 그 피해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2016년부터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미국, 일본 등에서 자료를 수집해왔다.

지난해에는 트럭 섬으로 강제동원됐던 이복순 할머니 등 26명의 기록을 확인했다.

수집된 자료들은 내년에 구축될 서울기록원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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