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이야기

목숨살리고보물얻은사연

영지니 2008. 2. 3. 22:15

해 전, 볼일이 있어서 중국에 갔다.

이 나라의 지존 나리보다 훨신 쎈 어느 독재 권력자의 초대를 받아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 권력자 나리의 최고 핵심 측근이 비엠더블유 승용차를 몰고 북경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북경 외곽에 있는 한 비밀장소로 모시고 갔다.

그 곳은 그의 집인 동시에 그 독재자 나라의 대외공작업무를 총지휘하는 사령부였다.

그는 무시무시한 공작업무를 지휘하는 사령관이다.

그는 먼저 집안 곳곳을 구석구석 소개했고, 다음에는 훌륭한 음식을 대접했다.

집은 크고 훌륭했다. 큼직하고 화려하게 치장된 방이 수십 개나 되었고, 방마다 갖가지 희귀한 골동품과 자료들이 가득했다.

방마다 있는 가구들도 유럽에서 제작된 엔티크 가구로 하나하나가 매우 훌륭한 것들이었다.

음식도 내 입맛에 꼭 맞았다.

그는 세심한 배려와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환대해 주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여러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쓴 책과 내가 출연한 텔레비전 방송 비디오 테이프를 선물로 주었고 우리는 함께 그 테이프를 감상했다. 

그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는 눈치였고, 나도 그의 환대에 마음이 끌렸다.

 

그 뒤로 나는 몇 번 북경을 오가면서

나는 그의 상관인 어느 나라 최고권력자의 고질병을 치료했고, 나를 마중나온 최고 권력자의 핵심측근과 그 아내의 질병을 치료했다.

그들한테 꽤 여러 달 동안 약을 썼다.

그들은 내 치료를 받고 모두 병에서 회복되었고 지금까지 건강하다.

요즘도 가끔 고맙다고, 다시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그 다음에 있었던 일이므로.

  ...

 이 이야기는 그 때 북경에서 있었던 일이다.

호텔에 돌아와서 하루를 쉬었다가 다음날 골동품을 구경하러 나갔다.

북경에는 여러 군데 골동품 거리가 있다.

마침 토요일이었으므로 주말과 일요일에만 문을 여는 골동품 거리가 있어서 거기로 갔다.

사스가 한창 유행할 때였으므로 거리는 한산했다.

길도 복잡하지 않고 차도 안 밀리고 호텔비용도 쌌다.

북경 거리가 늘 이렇게 조용하고 한산하면 얼마나 좋을까.

 

골동품 거리에도 이렇다 할 만한 물건들이 나와 있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이것 저것 구경하고 있는 중에 한 중국사람이 다가와서 내 옆구리를 손으로 가볍게 찔렀다.

그는 내 귀에 대고 좋은 물건이 하나 있는데 한 번 보지 않겠냐고 한다.

나이는 30대 중반쯤 되었고 차림새는 허름했으나 인상을 봐선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무슨 물건이냐고 물으니 청동기시대의 유물이라고 한다.

마침 청동기 유물에 관심이 있던 터여서 구미가 당겼다.

물건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그다지 멀지 않은 자기 집에 있다고 한다.

경계심을 풀고 그를 따라갔다.

그의 집은 거기서 10분 가량을 걸어 들어간 낡고 허름하고 갖가지 냄새를 풍기는 골목 속에 있었다.

가난이 덕지덕지 배어 있는 집이었다.

그들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좁은 집에서 어렵고 불편하게 살고 있었다.

깜깜한 통로를 지나 좁은 마당을 들어서더니 다시 지저분하고 깜깜한 부엌으로 들어갔다.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캄캄한 곳으로 들어오니 한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차츰 찌그러진 그릇들이며, 손때 묻고 모서리가 깨진 낡은 가구들이며 때묻은 작업복 같은 구차한 살림살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그는 부엌문을 걸어 잠근 뒤에 안쪽에서 신문지로 여러 겹 둘러 싼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그 물건들은 오래 된 무덤에서 도굴해 온 것으로 숫자가 제법 많았다.

처음에는 별 가치가 없어보이는 청동으로 된 검을 몇 개 갖고 왔다가 내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자 다른 것들을 갖고 왔다.

그것은 진짜 놀라운 물건들이었다.

청동으로 된 호랑이 조각상, 용이 새겨진 향로, 큼직하고 발이 새 개 달린 청동 솥....

퍼렇게 녹이 슬고 군데군데 흙이 묻어 있는 보물들이 수천 년의 잠에서 깨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들이야말로 천하의 보물이다.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보물을 마침내 찾은 것이다.

나는 온갖 고생 끝에 마침내 보물을 찾은 보물 탐사꾼처럼 기뻤다.

가슴이 마구 뛰고 손이 덜덜 떨렸다.

유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청동으로 만든 솥 옆구리 부분에 명문이 있어 자세히 읽어보았다.

놀라웠다.

이것은 적어도 3천 년 전의 유물이다.

명문을 해독해 본 결과 이것은 중국 은나라 때의 유물이며 대신이 왕자의 출생을 기념하여 임금한테 바친 것이었다.

적어도 이것은 3천 5백 년 전의 왕능에서 나온 물건이다.

그는 왕릉을 도굴했음이 틀림없다.

아마 왕릉에서 수백 점의 부장품이 나왔을 것이다.

 

나는 그 물건들이 몹시 탐이 났다.

이것들은 모두 중국의 국보급 보물이다.

어쩌면 중국의 고대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귀중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이것들 가운데 한 개만을 갖고도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나가면 적어도 천만 달러는 받을 수 있다.

다만 보존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흠이다.

몇 개의 유물들이 몇 군데 구멍이 나고 귀퉁이가 깨졌고, 부식이 심하다.

그래도 잘 닦아 놓으면 원형이 웬만큼 살아날 것이다.

보존 상태만 완벽했다면 하나 하나가 최소한 5천만 달러 짜린데 아쉽다.

숨을 고르고 난 뒤에 흥정을 시작했다.

여러 물건 중에서 청동으로 된 호랑이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부피가 제일 작으면서도 보존상태가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웠다.

조형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큰 호랑이가 젊잖게 앉아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형상이었다.

길이가 30센티미터, 높이는 17센티미터쯤에 호랑이털의 줄무늬를 금으로 상감을 했으며 군데군데 퍼렇게 녹이 나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표면을 긁어 보니 속까지 심하게 부식되지는 않았다.

이것 하나만 해도 적어도 천만 달러 짜리는 충분히 될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사기로 마음을 정하고 흥정을 시작했다.

가진 돈이 별로 없지만 값을 깎을 수 있는대로 깎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바로 한국에 나가서 돈을 갖고 오면 될 것이었다.

이걸 놓치면 나는 평생을 후회할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기 어렵다.

 

그는 5만 달러를 요구했다.

우리 돈으로 대략 6천만원이다.

진짜 가치에 비하면 5만 달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보물은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값이 나가는 법이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한테는 보물이지만 모르는 사람한테는 아무 소용도 없는 삭아빠진 고물 그릇들일 뿐이다.

그로서는 최고로 높은 값을 부른 것에 틀림없다.

그 정도 돈이면 한마디로 팔자를 고칠 수 있을 것이므로.

생각보다 쎄게 나오는군.

나는 그 십분지 일인 5천 달러를 주겠다고 햇다.

최대한 깎아봐서 밑질 것은 없지 않은가.

그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고개를 흔들면서 2만 5천 달러 이하로는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한다.

내 주머니에는 고작 2천 불 정도 밖에 없다.

한국에 나가서 돈을 갖고 온다 하더라도 당장 2만 5천 달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달랑 여비만 갖고 중국에 왔던 것이다.

나는 배짱을 부렸다.

5천 달러 이상은 절대 줄 수 없다고.

이 사람은 급하게 돈이 필요하고 결국 싼 값에 나한테 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국보급 유물이라고 해도 나같은 사람 말고 달리 살 사람이 나타날 리 만무하다.

더구나 중국에서 문화재 도굴범은 공안에 붙잡히면 무조건 사형이다.

이 물건들은 목숨을 걸고 도굴해 온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어떻게 이 사람을 구슬려서 이 물건들을 싼 값에 손에 넣을 수 있는지 머리통을 이리저리 굴려 보았으나 마땅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열심히 흥정을 하고 있는 도중에 안쪽에 있는 방에서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의 소리였다.

그 쪽으로 내가 얼굴을 돌리자 그는 나한테 잠시 여기 있으라는 손짓을 하고 방안에 있는 환자한테 들어갔다가  몇 분 뒤에 나왔다.

그는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앓고 있는 사람은 내 형님인데, 20일 전에 함께 왕릉을 도굴해서 도굴한 물건을 갖고 오던 중에 흑사회 곧, 조직폭력조직의 일당들을 만나 그들과 결투를 벌여 흑사회 일당 한 명을 죽였으나 형님도 옆구리를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피를 많이 흘린 데다가 상처가 깊어서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3만원, 우리 돈으로는 6백만원쯤이 있어야 한단다.

그래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누워 있는데 상처가 곪아서 고름이 나오고 열이 심하게 나서 다 죽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형님을 살리기 위해서 이 골동품을 반드시 비싼 값에 팔아야 한다고,

형님을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사람 좀 살려 달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애원했다.

 

나는 환자를 한 번 살펴 보기로 했다.

환자는 좁고 캄캄하고 무더운 방 안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파리들이 살 썩는 냄새를 맡고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방안에 들어서자 피가 썩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환자는 쾡한 얼굴로 신음소리를 내며 누워 있었다.

사람이 들어와도 고개를 돌릴 기운도 없었다.

보나마나 이대로 두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죽을 것이다.

옆구리의 붕대를 풀고 상처를 들여다 보았다.

상처에서 검붉은 고름이 뭉텅뭉텅 흘러내렸다.

칼날은 왼쪽 갈비뼈 밑을 깊게 파고 들어가서 아마 창자와 간, 쓸개를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

음식을 먹으면 상처부위로 내용물이 흘러 나온다고 한다.

그는 열에 들떠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고, 살아날 만한 눈곱만한 가망도 없어보였다.

 

죽어가는 목숨을 앞에 두고 골동품 흥정이나 할 처지가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천금 같은 보물이라 할지라도.

먼저 이 사람을 돌봐야 한다.

 

나는 이 사람을 살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미 늦었다면 할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봐야지.

기적이 일어난다면 이 사람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 외면하는 것이 의원된 자의 도리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원의 본래 임무이고 사명이다.

나는 의사 자격이 없는 돌팔이지만 이 곳 이국 땅에서 사람을 살렸다고 해서 법을 어겼노라고 아무도 나를 붙잡아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 나라에서 지금껏 나는 죽게 될 사람을 살려 주고 고발 당하고 협박 당하고 온갖 모욕을 당하고 벌금 낸 적이 몇 번이었던가.

내가 낸 벌금은 수 억이 넘고 약값을 받지 않고 환자를 치료해 준 것도 수백 수천은 될 것이며 아마 그것을 돈으로 다지면 수십 억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잘못된다고 할지라도 우세를 당하거나 붙잡혀 감옥을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방을 뒤져서 늘 상비약으로 갖고 다니던 생기액을 한 병 꺼냈다.

늘 여행을 갈 때마다 한두병씩 갖고 다니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독재권력자 나리한테 선물하기 위해서 몇 병을 더 갖고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김치가 사스를 예방하는데 좋다고 해서 김치가 불티나게 팔렸지만 이미 사스에 걸린 사람이 김치를 먹는다고 해서 낫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생기액 몇 방울이면 사스균을 전멸시킬 수 있고 사스에 걸린 사람을 고칠 수 있다.

환자의 동생한테 내가 한국의 전통의사라고 소개를 한 뒤에 환자를 한 번 치료하여 보겠다고 했다.

그는 형님은 이제 아무도 살릴 수 없는 상태라고 말을 더듬거리다가 내 눈을 한참 응시하더니 마침내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반드시 형님을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상처에서 나오는 고름을 휴지와 수건으로 천천히 닦아내고 생기액을 골고루 발라주었다.

상처 속까지 생기액이 닿을 수 있도록 상처의 구멍을 벌려 그 안에 생기액을 들이부은 다음, 깨끗한 천에 생기액을 적셔서 길게 뭉쳐서 상처 속으로 밀어넣고, 상처를 밀봉하고 붕대를 감았다.

환자는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생기액을 따듯한 물 한 잔에 진하게 타서 입을 벌리고 입 안으로 들이부었다.

환자는 인상을 한 번 찌푸렸을 뿐, 천천히 생기액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잠시 뒤에 환자는 조용히 잠들었다.

나는 환자의 동생한테 말했다.

 

"운이 좋으면 내일쯤 열이 내리고 고름이 멎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할 것이오.

열이 내리거든 조와 쌀로 묽게 죽을 쑤어서 먹이시오.

환자가 반드시 살아날 것으로 나는 믿고 있소.

이틀 뒤에 다시 오겠소."

 

그는 골동품 흥정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다급하게 돈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 빚에 쪼달리고 있겠지.

형님도 살려야 하겠지.

아마 흥정을 계속한다면 단돈 몇 천 달러로 천만 달러짜리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가난에 찌들리며 살아온 중국 사람한테는 몇 천 달러도 엄청나게 큰 돈이다.

나는 그 다급함과 절박함을 이용하여 물건을 흥정하고 싶지 않았다.

보물은 마땅히 제 값을 주고 사야 한다.

진짜 중요한 보물이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 보물을 사야 마땅하다.

그들의 처지가 불쌍하다.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이나 불쌍하기는 매한가지가 아닌가.

 

나는 오랫만에 온 북경 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그만두고 호텔에 돌아와서 쉬었다.

머릿속엔 온통 그 보물과 환자 생각 뿐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그 보물들이 천장에 아른거렸다.

죽어가는 환자의 신음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바닥에 무릎꿇고 앉아 잊고 있던 기도까지 했다.

 

"하나님 제발 그 환자를 낫게 해 주십시오.

나는 그의 이름도 성도 모르고 오늘 처음 만났지만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 불쌍합니다.

반드시 낫게 해 주시고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게 해 주소서.

그리고 하실 수 있다면 그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이튼날에 다시 골동품 거리로 나가서 30킬로그램이 넘는, 세상에서 제일 큰 朱沙를 샀다.

주사는 큰 것이라고 해야 엄지 손가락 한 마디가 넘는 것은 구경하기 힘들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을만큼 큰 주사덩어리는 내가 여지껏 만난 보물 가운데서 최고의 보물이었다.

이 보물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이 주사 덩어리는 어느 유명하고 실력 있는 집안의 가보로 전해 오는 것이었으나,

사스가 유행하면서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수백년 동안 고이 대대로 모셔 두었던 보물을 팔려고 내 놓은 것이었다.

주사는 눈꼽만큼을 몸에 지니기만 해도 못된 귀신과 삿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부적을 쓸 때 반드시 주사를 갈아서 쓰는 것도 주사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통한 기운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주사를 팔러 나온 주인은 1만 8천 달러를 요구했으나 나는 몇 번 끈질기게 흥정을 한 끝에 마침내 단돈 1천 달러로 주사를 사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나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보물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 날은 이 일로 하루 종일 즐거웠고 어제 보았던 환자와 청동 호랑이는 잊고 지냈다.

아니 웬지 환자가 거짓말처럼 살아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청동 호랑이는 어차피 물 건너 간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다음날, 늦게 일어나서 한국 음식점에 가서 아침밥을 천천히 느긋하게 먹고 정오가 가까울 무렵에 골동품 도굴꾼의 집으로 갔다.

걸음이 무거웠다.

환자가 죽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녹슬고 찌그러져 가는 대문을 삐끗이 열고 집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아무도 없다.

계시오 하고 몇 번 불러 보았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환자의 신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 환자가 죽은 모양이구나,

그래서 장례 치를 준비라도 하러 간 모양이다 하고 뒤돌아 나오는데

멀리 환자의 동생이 손짓을 하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에 한 사람이 약간 뒤쳐져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온 것을 보니 뒤에 달려오는 사람은 이틀전에 사경을 헤매며 누워 있던 그 환자가 아닌가!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환자는 수척하긴 했지만 제법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환자의 동생이 먼저 헉헉대며 내 앞에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했다.

 

"선생님, 형님이 살았습니다.

선생님 약을 먹고 나았습니다.

선생님은 神醫이십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뒤따라 온 환자도 내 앞에 엎드려 큰 절을 했다.

그는 몸만 심하게 야위었을 뿐 얼굴빛은 전혀 환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죽을 목숨을 살려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틀 전 내가 돌아온 뒤, 환자는 곤하게 한참 장이 들었다가 깨어나더니 그 뒤로 곧 열이 내리고 기운을 차렸으며

상처 부위의 통증이 사라지고 고름이 차츰 멎고 마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녁에 내가 시킨 대로 붕대를 풀고 상처에 내가 주고 간 생기액을 바를려고 상처를 헤쳐 보았더니, 이미 뽀얀 새살이 돋아나고 있는 중이어서 상처 속에 들어 있던 천 뭉치를 조심스럽게 당겨서 빼내고 상처 구멍 속에 생기액을 들이부은 다음 겉의 상처가 노출되지 않게 밀봉했다고 한다.

하루가 지난 뒤에도 통증이 전혀 없어서 일어나서 걸어도 보고 밥도 먹어보고 밖에 나가서 산책도 했으나 전혀 몸에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붕대를 풀었는데 고름도 전혀 나오지 않고 상처가 거의 아물었으며 벌겋게 부어오른 흔적도 거의 없어졌다면서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 주었다.

놀랍게도 상처가 거의 아물어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앗다.

아마 며칠 지나면 아무런 흔적도 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짓말 같이, 기적같이 그는 그렇게 나았다.

죽을 목숨이 그렇게 살아났다.

생기액은 정말 위대한 약물이다.

 

그들은 감사의 표시로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나한테 나름대로 최고로 비싼 음식으로 점심을 대접했다.

환자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도 같이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나는 중국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느끼한 것을 먹으면 구역질이 나고 음식이 목구멍에서 도로 올라온다.

나는 그의 성의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보통 때 같으면 절대로 먹지 않을 느끼한 중국 음식을 주는 대로 닥치는 대로 열심히 먹었다.

속이 부글거리고 니글거려서 역시 보통 때 같으면 절대로 먹지 않는 콜라를 두 병이나 마셨다.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 할 때, 그들은 나를 억지로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더니 내가 몹시 탐내던 청동호랑이를 푸대종이로 잘 포장해서 나한테 내밀었다.

 

"죽을 목숨을 살려 주셨으므로 생명의 은인한테 선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받아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거절했으나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나는 주머니를 털었더니 5백 달러 가량이 나왔다.

나는 5백 달러를 그들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다.

 

"내가 가진 것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5백 달러 밖에 안 되지만 이것을 주고 이 보물을 사겠습니다.

엄청난 가치가 있는 보물인 줄 알지만 가진 것이 이것 뿐이라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수천만 달러 짜리 보물을 단돈 5백불에 손에 넣게 되었다.

나는 이 보물을 그들과 함께 인근의 골동품 판매점에 가서 가짜 모조품이라는 인증서를 받아 북경공항을 통해 유유자적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북경 공항에서 수하물을 검색하던 직원들이 청동호랑이상을 보고 무엇이냐고 묻기에 모조품이라고 적힌 증명서류를 보여 주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주사덩어리에 대해서는 말썽이 약간 있었다.

공항 검색대에서 엑스레이로 투사를 하니 뭔가 돌도 아니고 쇠도 아닌 큰 덩어리가 화면에나타났는데 풀어 보니 붉은 돌덩어리가 아닌가.

공항 직원이 나를 불러 이게 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준비한 대로 대답했다.

 

"거리를 지나가다 보니 빨갛고 예쁜 돌이 하나 있어서 집안에 수석으로 두고 감상하려고 산 것입니다."

 "얼마를 주고 샀소?"

 "30달러요."

 "꽤 비싸게 줬군."

 그걸로 끝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죽어가는 한 사람을 살리고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 두 개를 소유하게 되었다.

 

 내 지나간 이야기 중의 한 토막이다.

믿든지 말든지 여기 쓴 것은 진실이다.

글로 쓸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다.

글로 남겨서 안 되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런 것들을 모두 빼고 쓰려니 재미도 없고 제대로 풀어내기도 쉽지 않다.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야 모든 것을 툭 까놓고 시원하게 말할 수 있겠지.

그 전까지는 날마다 독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이이....

이..................................................

이제 자서전을 쓰는 기분으로 내 지나온 자취를 대충이라도 글로 적어 남겨야겠다.

일기를 쓰지 않은 탓에 이미 많은 기억을 상실했다.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즐겁다.

그것이 쓰라리고 아픈 것이었다 할지라도.

다만 나 자신한테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이다.

 

 아침도  점심도 굶고 글을 썼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제 점심을 약간 먹은 뒤로 아직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이러니 평생 소원인 살찌기는 글렀구나.

내가 단단히 미친 것이 틀림없는 모양이다.

하긴 이 미친 세상에서 안 미친 사람이야말로 진짜 미친사람일게다.

 

 
운림(wun123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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