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이야기

풀과나무에서생명을만난다

영지니 2008. 2. 3. 23:12

 

동학편집실 설향당



풀과 나무들과 친해지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 입니까?

천성이 풀을 좋아했습니다.

또 할아버지대부터 약초꾼과 의원을 겸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약초를 가깝게 하게 되었던 거지요.

경북 성주군 가야산 북쪽 기슭이 제 고향인데 이중환의 『택리지』에 ‘끝이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마치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고 표현한 가야산 봉우리들을 바로 제 고향에서 제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풀과 나무들이 제 형제이며 가족이었고, 5살때부터는 해인사까지 8Km나 되는 거리를 왕복하며 약초도 캐고 그랬습니다.

식물과의 남다른 교감을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심을 가지고 훈련을 하면 되는 겁니다.

‘식물의 관점에서 사람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하는 쪽에서 생각을 하는거지요.

식물과의 대화는 서로의 기운을 느끼는 거니까 철저하게 친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친구하고 같이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이 오래 쌓이면 어느 한 순간에 느껴지게 되는 것이죠.


또 식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식물 자체의 입장에서라면 전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사람은 자연을 가꾸는 존재로서 함께 살아야 합니다.


약초꾼 사이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산에 가서 약초를 채취할 때 거기 있는 것을 몽땅 다 채취하는 것이 아니고 솎아주되 옆에 있는 것이 더 잘 자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합니다.

식물 나름대로도 위계질서가 있어서 그 중에 대장격인 식물은 채취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게 식물을 채취해서 다른 식물들이 번성할 수 있다면 식물 사이에서도 큰 덕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사람은 ‘자연의 관리자요 파수꾼’인 것입니다.


사람과 식물은 친하게 되어있습니다.

왜 사람은 식물을 보고 즐겁겠습니까?

그것은 식물도 사람을 보고 즐거워한다는 뜻이거든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도와주는 그런 관계가 되면 환경이나 자연파괴문제는 거기에서 답이 다 나옵니다.
인디언들은 풀 하나 약초 하나를 캘 때에도 의식을 치를만큼 자연 앞에 겸허합니다.

‘미안하지만 너를 채취해서 약으로 쓸 수 밖에 없다’라고 하면서 마음으로라도 얘기를 해주고 베어야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식물과의 대화’를 실제적으로 체험하셨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해결하지 못하는 특별한 질병을 치료해야 했을 때 또는 새로운 질병의 환자가 간절하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산에 가서 가만히 명상을 하면서 정신을 집중하고 골똘히 연구를 하다보면 어느 한 순간에 느낌이 옵니다.

내가 아는 식물이기도 하고 모르는 식물이기도 하죠.

 

그리고 나서 그 식물을 찾아나서면 바로 얼마 안 가서 그 주변에 있어요.
전에는 전혀 인식이 없었던 식물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식물이 바로 저한테 주는 것입니다.
지금은 산의 생김새, 계곡의 형태 . 방향을 보고도 어느 산에 약초가 있는지 눈에 보입니다.
몇십년 숙련이 되면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 때는 가만히 좌정을 하고 있다보면 어디에 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그것은 내 자체에 가지고 있는 영감 .직감이기 보다는 식물과의 상호교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불러야 되는 거지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과 나무가 모두 약초가 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아카시아나무의 경우를 보면, 꽃은 부종 . 중이염등에 효과가 있고, 뿌리는 위궤양에 효험이 있습니다.

또한 열매는 기침이나 기관지천식에 효과가 있고 대표적인 보약으로 치는 황기보다 더 나은 보약재로 쓰인다고 하면 잘 믿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민들레는 열로 인하여 생긴 종창 .인후염 .위염 .황달 등에 효험이 있고 소화불량과 과민성대장증후군에도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예날에는 의사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스스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상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흔히 먹는 음식이나 흔한 야생식물의 잎 .꽃 .열매 .뿌리, 아니면 주변에 있는 나무토막이나 아궁이의 흙, 돌멩이까지도 귀중한 약으로 썼던겁니다.


달리 의학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어떤 풀이나 나무열매가 어떤 질병과 증상에 효과가 있는지 웬만큼 알고 있었던 거지요.


맹장염은 막창꼬리에 생기는 염증으로 마타리 뿌리와 인동꽃, 민들레 같은 간단한 한 두가지 약초를 달여 먹거나 뜸을 몇장 뜨면 쉽게 고칠 수 있는 질병인데 요즘은 무조건 수술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죠.

병과 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세상에 고칠 수 없는 질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병이 있는데 그 치료법이 왜 없겠습니까.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요즘은 첨단 현대의학에 대부분 의존하는 추세인데 거기에 고정되어 있던 눈을 돌려 산이나 들에 버려져 있는 풀뿌리 속에서 치료법을 찾아볼 일입니다.


약초는 반드시 멀고 깊은 산에 가야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 한가운데서든지,

길 옆에서든지,

풀이 자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나고 자랍니다.
오래 묵은 땅일수록 그 약효가 뛰어난 것인데 우리나라는 바로 그런 땅이기 때문에 우리 약초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잡초로 여겨졌던 식물들에 대해 다시 한번 눈길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자를 진단하는 방법이 색다른 것 같은데요.

저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불법입니다.

래서 손은 가장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제 스스로 손을 보고 건강을 체크하는 방법을 공부했습니다.


내장의 상태는 외부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몸이 나쁠 때 손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가를 관찰하면서 조금씩 깨달어가게 됐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론체계에 꿰어맞춰가는 것이 아니고 실험과 경험을 통해서 직접 손가락의 굵기, 길이, 빛깔,  손톱의 모양, 혈관의 상태 등을 관찰해서 배워 나간 것이죠.

지금은 사실 잠깐 스쳐 지나가기만해도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데 단 1초도 안 걸릴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내장의 상태를 다 파악해버리는 거죠.

신념과 소망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가장 좋은 약은 자연과 풀 속에 있고 식물 속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병이든지 자연에 있는 식물로서 고칠 수 없는 병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 몸이 망가지든지 내 재산을 몽땅 잃든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더라도 환자들은 살려야겠다는 것이고 동시에 자연계도 망가지지 않도록 막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질병을 치료하고 약초를 아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죠.

그것을 펼칠 수 있는 길이 없다면 그것은 있으나마나인데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로 하여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약초에 관한 지식들을 다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계획한 것이 약초대학, 약초 연구소,  약초재배단지, 약초유통단지, 약초시장 등을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사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티벳에는 ‘암치’라 불리는 떠돌이 전통의사가 있습니다.

그들은 계절따라 자라는 풀잎을 채취해 뒀다가 그것을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또 영혼까지 고쳐줍니다.

그들은 아무 댓가 없이 사람들을 고쳐주는데, 저는 그들을 보고 진정한 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댓가를 바라지 않고 아픈 이를 낳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가를 바라는 그런 사심이 없이 오로지 백 퍼센트 환자를 낫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그 환자에게 전달될 때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길가에 핀 풀잎 하나에 눈길을 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생겨날 때 병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와 벗하지 않을지 모른다….

 
운림(wun1234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