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겁한 돌팔이의 비망록
광주에서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아들과 함께 왔다.
할머니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시체가 썩는 듯한 냄새가 방에 가득했다.
사무를 보던 직원들이 코를 막고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들어오자마자 붕대로 칭칭 감은 아랫배를 풀어 아픈 부위를 보여 주었다.
참혹했다.
배꼽 아래 직경이 20센티미터쯤 되고 깊이 3-4센티미터쯤 되는 큰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누런 고름이 가득 괴어 있었다. 살이 썩는 냄새 때문에 숨을 멈추고 창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없어질 냄새가 아니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살아서 광주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할머니가 물었다.
“이런 몸으로 살 수 있을까요.
병원에서는 영 가망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20년은 건강하게 살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래 사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이 썩는 병이라도 나아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틀림없이 나을 겁니다.
낫게 해 드리지요.”
“소원입니다.
제발 좀 고쳐 주십시오.”
할머니는 10년쯤 전에 자궁암으로 수술을 하고 항암제 치료를 했다.
마지막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방사선 치료를 받은 부분이 처음에는 딱딱하게 되어 별로 감각이 없는 것 같더니 몇 해 지나서 그 부분이 근질근질하고 따끔따끔 찌르는 듯이 아프기 시작하여 곪아서 진물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배꼽 아래 부분이 곪아서 진물과 고름이 나오면서 오슬오슬 한기가 들고 견딜 수 없을 만큼 따갑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이라고 하면서 연고를 주면서 바르라고 하였다.
연고를 발랐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고 증상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나중에는 아랫배에 구멍이 생겨 날이 갈수록 더 커져서 주먹이 들락날락할 정도로 되었고 곪은 부위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서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살이 썩어서 나오는 진물과 고름이 하루에 한 바가지씩이나 될 만큼 나왔고 지독한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하루에 열 몇 번씩 먹었으나 통증을 멎게 할 수 없었다.
이웃사람이 느릅나무 껍질을 짓찧어 붙이면 좋을 것이라고 해서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서 날로 짓찧어 곪아서 구멍이 생긴 부위에 붙였더니 통증이 약간 줄어들긴 했으나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대로 두면 결국 창자가 튀어나와 죽게 될 것이었다.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더라도 더 진행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도 있으면 금방 죽지는 않을 것이 아니겠냐고 하였다.
“저 같은 환자를 보셨습니까?”
“처음입니다.”
“나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 틀림없이 나을 수 있습니다.”
“제발 좀 낫게 해 주십시오.”
“낫게 해 드리지요.”
나는 할머니한테 두 가지 약을 주었다.
하나는 바르는 약이고 다른 하나는 먹는 약이었다.
일주일쯤 뒤에 전화가 왔다.
“좀 낫는 것 같습니다.
고름이 더 많이 나오고 통증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진통제를 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달쯤 뒤에 전화가 왔다.
“많이 나았습니다.
이제 이 병으로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름이 계속 많이 나오고 아래쪽으로 염증이 더 생겨서 구멍이 더 커졌습니다.
이러다가 뱃가죽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구멍 한 가운데 하얗고 딱딱한 덩어리가 나왔는데 만져 보면 질기고 단단하며 탄력이 있습니다.
이게 암 덩어리의 핵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염증 주변이 가려워서 못 견디겠습니다.
가려워서 잠도 잘 못 잘 지경입니다.”
“딱딱한 암의 핵이 다 빠져나와야 나을 것입니다.
가려움증은 몸 안에 있는 독소들이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염증의 부위가 차츰 더 넓어지고 있는 것도 방사선 치료를 받았던 부분이 곪아서 고름이 빠져나오는 것이니까 염려하지 말고 계속 열심히 바르도록 하십시오.
고름이 다 빠져나와야 새살이 돋아나올 것입니다.”
다시 두 달쯤 뒤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새살이 많이 돋아나왔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 낫거든 한 번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누구한테라도 나 같은 사람도 나았다고 자랑하셔도 되겠습니다.”
8개월 뒤에 할머니는 다 나았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큰 흉터만 흔적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 뒤에 할머니한테서 가끔 전화가 왔다.
한복을 곱게 한 벌 지어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날마다 절에 가서 기도를 하며 지낸다고 하였다.
특별히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축원문에 써 넣을 수 있도록 주소와 생년월일을 적어서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 주었다.
그 뒤로 할머니를 잊고 지냈다.
할머니한테서 연락도 없었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모든 전화를 끊고 다른 세상의 모든 것과 인연을 끊으려 하였다.
나는 그 해 가을에 사람을 많이 살린 죄로 경찰과 검찰에 붙잡혀 가서 조사를 받고 재판을 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벌금을 수억 원이나 내야 했다.
며칠 전에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3년 동안을 절간에 들어박혀서 오직 나를 위해, 내가 잘 되고, 수많은 중생을 병마에서 구제하여 달라고 침식을 잊고 부처님께 날마다 3천 번씩 절을 하며 기도만 하다가 기력이 다하여 마침내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
내 덕분에 얻은 목숨 나를 위해 버리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였다고 한다.
아!
그러나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던가.
나는 의사이기를 포기했다.
나는 의술로 인해 저주 받았다.
나한테 걸린 저주를 풀려면 의원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내가 없어도 살 사람은 살 것이고 죽을 사람은 죽을 것이다.
죽어야 할 사람을 많이 살린 까닭에 나는 그 대가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병자를 피해 도망 다녔다.
모든 환자를 외면했다.
아무리 다급하고 불쌍한 환자가 와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쉽게 고통을 덜어주거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나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지 이제 3년이 지났다.
나는 온 산천을 떠돌았다.
나는 풍류가였고 한량이었다.
껍데기만 있고 실체는 없는 유령이었다.
나의 시대,
나의 때는 이미 지났다.
아!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를 위해 한 사람이 모든 마음과 정성과 힘을 바쳐서 3년을 침식을 잊고 기도하여 목숨을 버리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
의(醫)를 떠난 내 삶은 의(義)를 떠난 것과 같다.
의술은 내 본령이며 사명이다.
그러나 그 옳음을 택하면 나는 감옥을 갈 것이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날 것이며 온갖 고난과 고초를 무수히 겪다가 결국 목숨까지 잃게 것이다.
나는 이 세상과 대적하여 결코 이길 수 없다.
내 옳음과 내 의술이 나를 베는 비수가 될 뿐이다.
물론 나는 그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꽃 한 송이도 보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잊으려 한다.
할머니도,
세상도,
내 의술도,
옳음도,
옳지 아니함도,
세상의 모든 질병과 고통도,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도....
이 모든 일이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여,
나를 알지 못하더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여 기억하여 주시오.
나는 잊을 것이지만 그대들은 기억하여 주시오.
세상을 구할 의술을 지녔어도 세상을 피할 수 밖에 없었던 한 비겁한 사내의 이야기를.
그런 시대를.
비겁한 사내의 형편없는 변명을.
그리고는 돌을 던져 주시오.
침을 뱉아 주시오.
나는 진흙탕에 숨어 겨우 숨만 붙어 살 것이오.
운림(wun12342005 |
'산야초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헛개나무 허와실 (0) | 2008.02.03 |
---|---|
운림의 새발명품 소개 (0) | 2008.02.03 |
풀과나무에서생명을만난다 (0) | 2008.02.03 |
50년묵은 간장과30년묵은고추장 (0) | 2008.02.03 |
산천목-간암/겨우살이-협심증 (0) | 2008.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