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역사

창덕궁 낙선재

영지니 2008. 3. 19. 23:17

창덕궁/낙선재

날짜: 2006.8.30
지난 6월 서울의 5궁을 돌면서 창덕궁의 낙선재는 특별관람이라서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만이 볼 수 
있다는 말에 어찌나 서운한지 가을에 다시 와야지 하곤 잊었는데 며칠 전 예약을 하곤 창덕궁을 찼었다. 
오전 10시 20분 안내를 따라 들어서니 먼저보다는 달리 인정전(仁政殿)건물도 우람하게 낯익고  
희정당(熙政堂)의 시대 변천의 다른 서양식의 멋스러움이 오늘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유일하게 남은 선정전(宣政殿)의 청기와를 바라보며 맞은편 쪽으로 조금 가니 낙선재의 건물이 보였다.
다른 궁과는 달리 단청이 되 있지 않아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툇마루의 나무 조각과 낙선재의 문창호는 
여성 스럽고 섬세해 보이고 낙선재와 석복헌 후원에 수석도 아름답고 굴뚝과 꽃 담장이 
있는 만월문은 인상에 남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상량정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낙선재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남산타워가 정겹게 보인다.
이건물은 원래는 창경궁에 속했던 연침의 하나였다. 
낙선재 일곽은 낙선재, 석복헌과 수강재를 중심으로 취운정, 진수당, 장경각등의 여러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낙선재는 조선의 24대 임금 헌종이 즉위한지 13년 (1847)되던 해 낙성을 본 건물이다.  
헌종이사랑하는 여인 경빈 김씨를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고 전해온다. 
헌종임금은 임금이 되고서야 장가를 들었다. 왕대비가 주관하는 국혼령(國婚令)이 발동되었다. 
전국의 처녀는 영이 떨어지면 시집가는 일을 연기하며 기다려야 한다.
3단계에 걸쳐 왕비감을 선발한다. 많은 후보를 단계마다 줄이다가 세 번째 
간택 때가 되면 세 여인만 남게 된다. 그 중의 한여인이 왕비로 낙점되고 혼사를 치렀다. 
그런데 헌종은 떨어진 두 번째 김씨 성을 가진 여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와 왕혼(王婚 : 임금이 선택한 여인과 동거하는 혼인)을 하고 사랑에 빠졌다. 사랑하는 김씨 여인을 위해 
왕비전에 멀리 떨어진 , 그것도 궁이 다른 창경궁에 , 그러면서도 쉽게 다닐 수 있는 자리에 집을  지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오는  낙선재 경내는 대략 8000여평으로 서쪽에 낙선재가 있고 
행각으로 둘러싸인 동쪽에 석복헌이 있으며,다시 그 동쪽으로 수강재가 있어 이 건물들을 통틀어 낙선재라 한다.


인정전(仁政殿)
인정전은 신하들의 하례식과 외국 사신의 접견 장소로 사용되는 국가 행사의 공식적인 
건물로서 정면 5칸에 측면 4칸의 중층 팔작 지붕의 다포 구조이다. 

창덕궁희정당(昌德宮熙政堂)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왕의 사무실과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선정전(昌德宮宣政殿) 
창덕궁에 남아 있는 건물 중 유일하게 청기와를 얹은 건물이고, 조선 중기 건축재료의 
모습을 잘 남기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문화재이다. 


낙선재 좌측 굴뚝과 담장
 
낙선재 담과 상량정


낙선재(樂善齋)안채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헌종 13)에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은 집이다. 그 뒤로,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고종황제의 외동딸이자 마지막 공주였던 덕혜옹주, 
일본의 왕녀로 두 나라를 조국으로 섬겨야했던 영친왕 부인 이방자 여사 등 비운의 주인공들이 한많은 삶을 이곳에서 마쳤다.
낙선재 옆으로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보통은 이들을 모두 통틀어 낙선재라고 한다. 
원래는 창경궁 영역에 속하는 건물이었다. 낙선재의 대문은 연경당 대문과 같은 이름인 장락문(長樂門)이다
 
장락문(長樂門)앞에서,

석복헌은 경빈 김씨의 침전
임금의 사랑으로 지어진 낙선재. 낙선재 일곽은 낙선재, 석복헌과 수강재를 중심으로 취운정, 진수당, 
장경각등의 여러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낙선재는 조선조 24대 임금 헌종이 즉위한지 13년(1847)되던 해 
낙성을 본 건물이다. 헌종이 사랑하는 여인 경빈 김씨를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고 전해온다.

수강재
순원왕후의 침전



낙선재 후원

경빈김씨의 후원과 통하는 문

후원의 굴뚝



꽃담

상량정
낙선재 화계 뒤쪽의 후원인 높직한 터 위에 자리한 육각정의 누각건물이다. 
“궁궐지” 나 “동궐도형”에서는 육우정, 곧 “평원루”라 기록 하고 있다. 

만월문
상량정의 서쪽 담장에 있는 문으로서 전돌로 만월형의 출입구를 내고 좌우로 밀어 열게 된 넌출문이 달렸다. 
바깥쪽 문 좌우 담벽에는 수복등의 길상무늬와 꽃무늬로 가득하게 채웠다.
궁궐의 협문으로는 유일하게 원형으로 만든 아름다운 문이다.


만월문의 꽃담

상량정에서 본 낙선재


한정당(閒靜堂)
 

창덕궁/낙선재


지난 6월 서울의 5궁을 돌면서 창덕궁의 낙선재는 특별관람이라서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 야만이 
볼 수 있다는 말에 어찌나 서운한지 가을에 다시 와야지 하곤 잊었는데 며칠 전 예약을 하곤 창덕궁을 찼었다. 
오전 10시 20분 안내를 따라 들어서니 먼저보다는 달리 인정전(仁政殿)건물도 우람하게 낯익고  
희정당(熙政堂)의 시대 변천의 다른 서양식의 멋스러움이 오늘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유일하게 남은 선정전(宣政殿)의 청기와를 바라보며 맞은편 쪽으로 조금 가니 낙선재의 건물이 보였다.
다른 궁과는 달리 단청이 되 있지 않아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툇마루의 나무 조각과 낙선재의 문창호는 
여성 스럽고 섬세해 보이고 낙선재와 석복헌 후원에 수석도 아름답고 굴뚝과 꽃 담장이 
있는 만월문은 인상에 남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상량정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낙선재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남산타워가 정겹게 보인다.
이건물은 원래는 창경궁에 속했던 연침의 하나였다. 
낙선재 일곽은 낙선재, 석복헌과 수강재를 중심으로 취운정, 진수당, 장경각등의 여러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낙선재는 조선의 24대 임금 헌종이 즉위한지 13년 (1847)되던 해 낙성을 본 건물이다.  
헌종이사랑하는 여인 경빈 김씨를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고 전해온다. 
헌종임금은 임금이 되고서야 장가를 들었다. 왕대비가 주관하는 국혼령(國婚令)이 발동되었다. 
전국의 처녀는 영이 떨어지면 시집가는 일을 연기하며 기다려야 한다.
3단계에 걸쳐 왕비감을 선발한다. 많은 후보를 단계마다 줄이다가 세 번째 
간택 때가 되면 세 여인만 남게 된다. 그 중의 한여인이 왕비로 낙점되고 혼사를 치렀다. 
그런데 헌종은 떨어진 두 번째 김씨 성을 가진 여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와 왕혼(王婚 : 임금이 선택한 여인과 동거하는 혼인)을 하고 사랑에 빠졌다. 사랑하는 김씨 여인을 위해 
왕비전에 멀리 떨어진 , 그것도 궁이 다른 창경궁에 , 그러면서도 쉽게 다닐 수 있는 자리에 집을  지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오는  낙선재 경내는 대략 8000여평으로 서쪽에 낙선재가 있고 
행각으로 둘러싸인 동쪽에 석복헌이 있으며,다시 그 동쪽으로 수강재가 있어 이 건물들을 통틀어 낙선재라 한다.

인정전(仁政殿)
인정전은 신하들의 하례식과 외국 사신의 접견 장소로 사용되는 국가 행사의 공식적인 
건물로서 정면 5칸에 측면 4칸의 중층 팔작 지붕의 다포 구조이다. 

창덕궁희정당(昌德宮熙政堂)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왕의 사무실과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선정전(昌德宮宣政殿) 
창덕궁에 남아 있는 건물 중 유일하게 청기와를 얹은 건물이고, 조선 중기 건축재료의 
모습을 잘 남기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문화재이다. 


낙선재 좌측 굴뚝과 담장

 
낙선재 담과 상량정


낙선재(樂善齋)안채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헌종 13)에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은 집이다. 그 뒤로,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고종황제의 외동딸이자 마지막 공주였던 덕혜옹주, 
일본의 왕녀로 두 나라를 조국으로 섬겨야했던 영친왕 부인 이방자 여사 등 비운의 주인공들이 한많은 삶을 이곳에서 마쳤다.
낙선재 옆으로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보통은 이들을 모두 통틀어 낙선재라고 한다. 
원래는 창경궁 영역에 속하는 건물이었다. 낙선재의 대문은 연경당 대문과 같은 이름인 장락문(長樂門)이다
 
장락문(長樂門)앞에서,

석복헌은 경빈 김씨의 침전
임금의 사랑으로 지어진 낙선재. 낙선재 일곽은 낙선재, 석복헌과 수강재를 중심으로 취운정, 진수당, 
장경각등의 여러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낙선재는 조선조 24대 임금 헌종이 즉위한지 13년(1847)되던 해 
낙성을 본 건물이다. 헌종이 사랑하는 여인 경빈 김씨를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고 전해온다.

수강재
순원왕후의 침전



낙선재 후원

경빈김씨의 후원과 통하는 문




꽃담

상량정
낙선재 화계 뒤쪽의 후원인 높직한 터 위에 자리한 육각정의 누각건물이다. 
“궁궐지” 나 “동궐도형”에서는 육우정, 곧 “평원루”라 기록 하고 있다. 

만월문
상량정의 서쪽 담장에 있는 문으로서 전돌로 만월형의 출입구를 내고 좌우로 밀어 열게 된 넌출문이 달렸다. 
바깥쪽 문 좌우 담벽에는 수복등의 길상무늬와 꽃무늬로 가득하게 채웠다.
궁궐의 협문으로는 유일하게 원형으로 만든 아름다운 문이다.


만월문의 꽃담

상량정에서 본 낙선재


한정당(閒靜堂)

낙선재 대문 

낙선재 대문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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