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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 하위지 의관 묘

영지니 2008. 4. 2. 18:07

 

 

 

 묘도표석뒤 기와집너머 소나무 숲속에 의관 묘가 안치되어있다.

 

 

 

  선산 부사(善山府使) 김병우(金炳愚) 書 

 단계선생묘도(丹溪先生墓道) 乙축1865年 八月 日

 

 

 

  단계 하위지 의관 묘소

 옷과 갓으로만 장례를 치른 衣冠墓.   

선산읍 완전리 고방실 마을뒤 松林속에 단계 하위지선생의 묘역이다.

 


 

  숭정3헌종4壬戌1838

 

 

 

 

 

  丁卯1987년

 

 

 

  단계묘소 입구의 뒤틀리고 꼬브러져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나무....

 

 

 

  단계묘소 바로앞에 김 참봉의 묘소가.

 

 

 

 단계 하위지(丹溪 河緯地)

1387(고려 우왕 13)- 1456(세조2) .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면 고방산

1387(고려 우왕 13)년 선산읍 영봉리에서 출생.

27세에 집현전학사.
1453(단종1)년 벼슬을 버리고 낙향.

1455년(단종 3년) 예조참의로 재직중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예조참판으로 승진. 

측근에서 세조를 보필하는 동안 세조의 녹을 먹는 것을

수치로 여겨 그 해 부터의 국록(國祿)은 취하지 않고

별실에 따로 쌓아두었다 한다.

1456년 成三問(성삼문), 朴彭年(박팽년), 李塏(이개), 柳誠源(유성원),

兪應孚(유응부)등과 함께 비밀리에

단종복위를 추진하여 明(명)의 사신을 위해 베푸는 연회에서

세조와 측근관료들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러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 거사가 연기되자 모의에 참여했던

김질이 세조에게 이 사실을 알려 복위운동이 탄로나고 주모자로 체포되었다.

세조가 그의 재주를 아껴 은밀히 타이르기를

 "네가 만약 처음 음모에 참여한 것을 숨긴다면 면할 수 있다."

하였으나 하위지는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문을 받을 때 하위지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신하로서 이제 역적이란 이름을 썼으니 그 죄가 응당 죽음일 것인데

다시 무엇을 물을 것이 있습니까?"

이 사건으로 인하여 동생과 아들도 죽임을 당하였다.

1456년 김질(金礩)의 배반으로  단종복위 계획이 탄로나자 참형 당했다.

그의 호가 단계(丹溪)인 것은 출생하는 날부터 3일 동안 집앞의 시냇물이

붉게 물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단계교에서 2Km 거리의 죽장면 고방산에  선생의 의관을 묻었다.

 

선생께서는 車裂刑(거열형)을 당했다.
車裂刑(거열형)이란 소에 팔다리 네곳을 각각

밧줄로 묶은 다음 각기 네방향으로

서로 당겨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이라 한다.

이들은 그렇게 죽으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전혀 후회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세조에 대해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것에

대한 질타와 꾸중이 계속되었다 합니다.

 

여헌 장현광의 단계 하 위지 선생 묘갈명 
군자가 변에 처하는 사업이 있으니 이 또한 하나의 의를 성취하는 것이네,
하고자 하는 바가 사는 것보다 더 중함이 있으면 사는 것도 버리며
싫어하는 바가 죽는 것보다 더 심함이 있으면 죽음도 피하지 않네
목은 도끼에 기름칠이 되었으나 공로가 강상(삼강오상 즉 인간의 도리)에 남아 있네
넉자 남짓 황폐한 무덤은 사람들로 하여금 머리가 꼿꼿이 서고 뼛골이 시리게 하니
이곳이 바로 선생의 의관을 보관한 곳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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