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측 자료/5월21일>
13시경 공수부대가 철수하지 않는 데 항의하며 시위대가 화염병을 투척하여 계엄군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의 장갑차 1대가 갑자기 공수부대쪽으로 돌진했다. 공수부대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를 피해 좌우로 갈라져 부근 전남도청, 상무관, 수협 도지부 건물 등으로 산개하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이 사망했다>
<월간조선 88년 7월호>
「공수부대의 광주사태」:당시 현장에 있던 11공수여단 소속 통신병 경기만씨 증언에 의하면 시위대 장갑차 돌진으로 사망한 대원은 11공수여단 소속 권용문 상병이라고 한다. 권상병은 머리가 장갑차 바퀴에 눌려 짓이겨진 채 즉사했고, 다른 사병은 가볍게 다쳐 곧 일어나 달아났다
많은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광주사태 당시 시민군 장갑차 부대 운전병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직할부대인 특수전 1개 대대 소속의 북한군이었다고 증언한다. 만약 5.18측에서 이 증언에 반박하려면 당시 시민군 장갑차 부대 운전병들이 광주시민이었다는 증거를 대어야 할 것이다. 5.18측 논리대로라면 장갑차로 군인들을 깔아죽인 자는 민주화운동 유공자인데, 누구였는지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 또, 보상금 수억 챙긴 후에 월북한 광주시민은 단지 북한 방송의 영향으로 월북하였는가. 아니면 광주사태 때 이미 북한세력과 접선하고 있었기에 월북 루트가 있었던 것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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