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19금’ 영월 기행 - 김삿갓계곡
박종인의 여행편지 13 - 영월 2
글·사진·영상=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
지금 영월에 가시면... 재미납니다. - 박종인의 여행편지 13.
꽤 많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강원도 영월은 정말 눈이 바쁜 고장입니다. 똑같은 생각을 충청북도 단양에서 느꼈더랬습니다. 바보 장군이 죽은 온달산성과 고전적인 관광지 도담삼봉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요. 영월은, 어찌 보면, 단양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곳입니다. 그 이야기, 영월에서 드리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아직 가을이 남아 있는, 주천의 메타세콰이어 길.(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떠났던 영월 주천면 섶다리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큰길에서 섶다리를 건너면 마치 섬처럼 오도카니 숨어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거기에 이 숲길이 있었습니다. ‘보보스캇’이라는 이름을 가진 펜션입니다. 사진 동호회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거기 계신 분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래는 그냥 묘목 심었다가 팔려고 했어요. 세 줄을 심었는데, 한 줄 팔아먹고 나니까 두 줄이 남데요. 그냥 놔뒀더니 모양이 괜찮고 해서리….” 그래서 15년을 그냥 길렀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산책로로 변했답니다. 이번 여행은 그 메타세콰이어 숲길에서 시작됩니다.
자, 모범적인 관광지 영월에서 지도는 필요 없습니다. 이정표가 과할 정도로 잘 돼 있으니까요. 주천면에서 ‘영월’ 이정표를 따라가다가, 심심할 무렵이면 관광지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이정표가 이렇습니다. ‘영월 책박물관’, ‘한반도 지형 선암마을’, ‘김삿갓계곡’ 기타 등등. 그 순서대로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이정표에 없는 곳들도 다 갔습니다. 자, 그 여행 일기 이제 시작.
해발 852.5미터짜리 높은 산입니다. 전하기로는 옛날 천지개벽으로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뱃마을에 살던 마음 착한 부부가 배를 타고 피난을 했는데, 물이 점차 늘어나며 배가 이 산 꼭대기에 걸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배거리산입니다. 천지개벽 때부터 우뚝 서 있었는데, 1991년에 시멘트 광산이 개발돼 꼭대기부터 저렇게 차곡차곡 잘도 부서져 내립니다. 영월 어디에서건 보이는 배거리산이 20년 안 된 세월에 저렇게 황당한 인공구조물로 변해버렸습니다. 예술이지요, 예술. 필요에 의했으되 너무나도 슬픈 예술. 정선에 가면 자병산이라는, 지도에만 있는 산이 있습니다. 역시 채굴에 의해 사라져버린 백두대간 산줄기입니다. 성장과 발전에 희생된 우리의 땅입니다. 책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내 눈 앞에서 산이 울고 있습니다.
길섶에 차를 대고 한갓진 오솔길을 오르면 멀리 아래에 360도를 휘감는 강이 보입니다. 서강(西江)입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요. 그 생김새를 언뜻 보아도 영락없는 한반도입니다. 갯벌이 많은 서해, 물 깊은 동해 그리고 대륙으로 연결된 만주까지 다 있습니다. 잘 만든 전망대와 벤치까지 있으니, 아까 보았던 슬픈 산의 회한을 다소나마 풀어버리기 좋은 공간입니다. 눈길을 오른편으로 돌리면 배거리산 옆 모습이 보이지만요.
무덤 주변은 정말 잘 꾸며놓았습니다. 그가 남긴 시(詩)들이 조각상들과 함께 전시돼 있고, 100년은 넘어 보이는 서낭당이 옆에서 당줄을 휘감고 서 있습니다. 자, 참배를 마쳤으면 시인의 집터로 가보실까요?
▲ 11년 전 가을날, 영월 읍내에 있는 장승공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삿갓계곡에서 영월 읍내에 들어오자마자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 나오는 장승공원 풍경입니다. 11년 전 이곳에 들렀을 때, 무형문화재 박찬수 선생이 깎은 장승들이 저렇게 예쁘게 서서 사람들을 반긴 곳입니다. 2008년 12월, 그 공간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 영월 장승공원.(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영월 장승공원.(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이 처참한 광경, 직접 가서 보십시오. 오늘 여기에서 맺습니다.박종인 드림-
▶ 가는 길(서울 기준):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대구 방면→신림IC→주천 방면 우회전. 이하 주천 방면으로 계속 직진. ‘다하누한우촌’ 간판이 보이면 그곳이 주천. 주천으로 들어가 ‘영월’ 이정표 따라 갈 것. 가는 길 내내 이정표가 잘 나온다.
▶ 영월책박물관:가장 먼저 나오는 관광지. 현재 기약 없이 휴관 중. 대신에 맞은편에 있는 배거리산을 눈여겨 볼 것. 성장과 보존 사이에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는 산이다.
▶ 한반도 지형 선암마을:책박물관 지나자마자 나오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할 것. 10분 정도 가면 다시 이정표가 나오고 길섶에 차를 댄 후 평탄한 오솔길로 들어가면 된다.
▶ 김삿갓유적지:영월에서 ‘고씨동굴’ 이정표를 따라 갈 것. 고씨동굴을 지나서 태백쪽으로 15분 정도 거리다.
▶ 조선민화박물관:김삿갓계곡 안에 있다. 입장료 어른 2000원. 학예연구사 설명을 꼭 들을 것. 2층에 있는 춘화 전시장은 어린이 절대 출입 금지. www.minhwa.co.kr, (033)375-6100
▶ 숙소:김삿갓계곡 펜션 추천. 김삿갓계곡 내에서 가장 깔끔한 숙소. 1박 6만원부터. (033)374-1660, www.kimsatgat.net. 주천 섶다리마을에 묵고 싶다면 ‘보보스캇 펜션’ 강추. 너른 부지에 메타세콰이어 산책로가 일품이다. 1박 8만원부터. www.boboscot.com, (033)375-1011
▶ 먹을 곳:영월 장릉 앞 ‘장릉 보리밥집’. 30년이 넘은 산채식당. 보리밥 정식 6000원. 각종 장아찌와 나물이 한 상 나온다. (033)374-3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