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크리닉

브리짓을 통해본 여성들의 관계맺기

영지니 2007. 3. 17. 18:12
 

가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항상, 자질구레한 인생의 사건들이 닥칠 때마다 곁에 있어준 오래된 여자친구들을 찾는다. 극장을 찾은 여자들은 브리짓의 해피엔딩에 “운 좋은 여자네” 하고 말다가도, 영화를 보는 내내 브리짓과 함께 기뻐했거나 안타까워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흠칫 놀란다.

돌아온 브리짓, 그녀의 일기는 너무나 다큐멘터리적인 여자들의 삶을 너무나 다큐멘터리적이지 않게도 보여준다. 하지만 여자와 여자가 일기장을 나눠 쓰는 일은 너무나 흔하고 자연스럽다. 관계를 고민하는 여자를 여자가 공감하는 것, 그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방식일지라도 통할 법하다.

브리짓이 너무나 평범한 여자라 동일시하게 된다는 말은 별로 그럴 듯 해 보이지 않는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핵심이 ‘체중조절을 못하는 골초 여자’가 마음이 진실한 사랑에 골인하는 것이라면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조금 다르다.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을 먹고 사는 여자가 자기 입으로 직접 사랑을 얘기하고, 항상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오면서 사랑을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리짓은 수상한 적은 없지만 시상식에는 많이 가본 능력 있는 저널리스트인데다가,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배 나온 대머리 극우 파시스트’라고 쏘아대는 직설화법에도 능하다. 브리짓은 일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생각한다. 그녀는 애인과 함께 가는 파티에 몸에 맞지도 않는 55 사이즈 드레스를 입고 뒤뚱대기도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받아낼 줄 알기도 한다. 함께 아이를 갖는 것이 좋으니까 결혼을 하고 싶어하고,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의 부재함에 마음이 시리기도 하다.

20년 전 즈음, 여성주의 심리학자들은 성취와 독립성의 획득을 성숙한 인간의 지표로 삼은 남성중심적인 인간 발달 모델을 비판한 바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발달 모델의 축은 ‘관계’에 놓여져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의 삶에 관한 심리학적 모델을 제안했다. 당시 이들은 '관계'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으며, 자신들의 관계 맺기 방식이 유아기적 퇴행이나 희생으로 왜곡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다.

기존의 심리학적 모델들은 독립성을


우월한 것으로 취급하면서, ‘여성적’ 관계 맺기가 모호한 자아 경계에서 비롯된 열등한 것이라고 치부했다. 이에 대해 여성주의 심리학자들은 관계적 자기는 경계가 모호한 것이 아니라, 경계가 ‘유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관계 중심적인 성숙한 사람은 타인과 정서적 연결을 맺고 타인을 공감하며, 경험을 나누고, 섬세한 책임감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자아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론은 여성의 다양성과 관계의 복잡성을 가미함으로써 보다 정교화 되어가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사랑을 먹고 사는 브리짓은 참 관계중심적인, 성숙한 여자다. 그것은 마크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일생을 의지하는 단짝 친구들과 태국의 여감방에서 만난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도 발휘된다. 로맨틱 코미디이기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나 슈퍼 브라가 열광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자 이성애자에게 마돈나의 ‘Like a Virgin’이 때론 딱 들어맞는 인생의 주제가가 되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방에서 나가게 됐음에도 냉담한 마크에게서 더 심한 상처를 입는 것은 그녀가 결혼에 목매서가 아니다. 관계적인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고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다. 브리짓의 상처에 공감하고 자신들의 상처를 풀어내는 여감방의 한 무리 검은 머리 여자들도 그러했으며, 이들 안에 섞인 노란 머리의 브리짓도 그러했다.

브리짓의 일기 안에서 여자들의 관계는 미성숙한 질투나 열등감에 빠져 있기를 거부한다. 여자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서로에게 ‘행복하라’고 말해준다. 마크의 새로운 애인으로 오해 받았던 레베카는 사실 브리짓을 사랑하고 있었는데, 보통 삼각 관계 내에서 서로 적대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에 비한다면 이들의 관계는 보다 풍부하다. 레즈비언 관계가 종종 영화 속의 어설픈 반전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잊지 말고서.

자기만의 일기 쓰기를 시도하는 한 여자의 관계 맺기 이야기. 그녀가 “운이 좋은 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힘을 얻는 방법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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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최홍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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