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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주류는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안”
1번 환국(한국) 지역에 있는 호수가 바이칼 호수
2번이 환웅(한웅)님의 배달국
3번이 단군님의 고조선
빗살무늬 토기 (한국)
[빗살무늬토기도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와 유럽으로 전파]
“한국인 주류는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안” 70~80%가 북방계, 20~30%는 남방계, 그리고 일부 유럽인 그룹으로 구성된 한국인 유전자 풀 북부아시아인의 유전자 풀 원천은 마지막 빙하기 시기의 바이칼 호수 아메리카 인디언은 한국인과 한핏줄
[저자 : 이홍규·서울대 의대 교수·내과]
- 신동아 2002년 1월호
(저자는 유전자 연구자)
[발췌]
윌슨이 세계 각처 사람들의 mtDNA를 분석한 분자시계 이론에 의하면 피그미족을 포함한 모든 인류는 아주 적은 변이만을 나타냈다. 이 결과는 약 20만년 전 인류는 한 어머니에서 모두 갈라져 나온 것으로 해석될 밖에 없어서,모든 인류는 한 어머니를 가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던 것이다.
<그림 1 인류의 이동도>
최근 에모리대의 월레스와 스탠퍼드대의 피터 언더힐 및 루카 카발리 스포르차의 자료들을 종합해 ‘뉴욕타임스’의 스티브 듀에네즈 기자가 그린 인류의 이동도. (주: 위 그림은 현 인류는 약 20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살던 한 여성의 후예들이 차차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분석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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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뿌리는?
아프리카에 있던 네안데르탈인에서 현 인류의 조상이 나왔고, 이들이 세계 각처로 이동하였다면, 한민족의 뿌리는 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한민족의 뿌리찾기란 결국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유전자 풀은 어떤가 하는 것이다.
한국인과 아메리카 인디언은 한뿌리
유전자 풀의 분석을 통하여 세계 각지 사람들의 이동을 오랫동안 조사해온 사람이 루카 카발리-스포르차 교수다.
그는 각 지역의 농경문화가 이동하는 것과 유전자 풀의 변화를 연계시켜 사람들의 이동이 농사기법의 전파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1988년에는 미국 과학원회보에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차이가 유전자 풀의 차이와 가까움을 통합해 전세계인을 분류하였다. 이것을 변경한 1995년판 ‘세계인 분류도’를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 티베트인, 몽골인들은 에스키모,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유전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한묶음이 된다. 또 중국 남부인들은 캄보디아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들과 함께 묶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의문의 하나는 ‘북부 아시아인들은 언제 남부 아시아인들과 나뉘었을까’ 하는 점이다. 1986년 호라이와 마쓰나가가 보고한 일본인의 mtDNA 유전형 분포 패턴을 보면 일본인 중에 두개의 커다란 mtDNA 클러스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약 20%와 80%를 차지하는 이 두 그룹은 분자시계로 보아 약 12만년 전에 분지(分枝)된 것으로 보고된다. 이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남북 아시아인들은 12만년 전에 분지되었다가 다시 만난 한핏줄의 사람들인 것이다. 김욱 교수의 Y염색체를 이용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 30%는 남부 아시아인의 유전형을 보인다고 하니까,
아마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인구집단 중 20∼30%는 남부 아시아인이 조상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한민족의 뿌리는 두 갈래다. 그리고 그 주류는 인구 숫자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북방 아시아인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간 많은 고고학적 연구나 문화인류학적 연구 결과와 합치한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보면 인디언들의 중심 그룹이 동북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한 때를 1만4천년 전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이 현 아메리카 인디언의 선조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 있다. (펀주: 동북아시아(시베리아)에서 약 1만 4천년전에 건너간 사람들이 당시 이미 먼저 건너가서 아메리카에 살던 사람들과 만나서 지금의 아메리카 인디언이 되었다고 추정. 스탠포드 대학의 조세 그린버그 교수,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제구라 교수,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크리스티 터너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언어, 혈액형, 현존하는 고대 인디언들의 치아(齒牙-이빨)형태 등을 연구한 결과, 세 개의 주축을 이루는 이주자들이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주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 그 첫 번째는 1만 4천년 전에 시베리아에서 이주, 둘째는 6천년 전에 역시 시베리아에서 이주, 셋째는 4천년 전에 만주 아무르강 유역에서 이주.)
그리고 이 시기 (1만 4천년 전)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이므로, 빙하가 녹으면서 동북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이동했다는 것도 상식처럼 되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그전까지는 이동할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
즉 빙하가 녹으면서 사람이 이동할 수 없는 장벽이 제거된 셈이다. 필자는 히말라야산맥에서부터 몽골 지역과 시베리아를 잇는 광대한 지역이 마지막 빙하기에는 빙하로 덮혀 있었거나 광대한 동토(凍土-얼어붙은 땅)여서 사람들이 이동할 수 없는 장벽을 만들고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앨러스테어 도슨이 쓴 ‘빙하기 지구(Ice Age Earth)’를 보면 이 시기의 시베리아는 동토로 사람이 살 수 없었고, 히말라야산맥으로부터 이어지는 산맥이 얼음으로 뒤덮히거나 좀 낮은 지역은 빙하-동토대로 이루어져 사람의 이동이 불가능했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바이칼 호수는 원래 저지대
바이칼호수는 길이가 636km, 최대 너비 79km, 면적 3만1500㎢로 유럽의 중소국가 벨기에의 크기와 같다.
그 둘레는 2200km이며, 최대심도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가장 깊은 (담수-민물)호수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곳이 마지막 빙하기에는 어떠했을지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필자는 바이칼호수가 마지막 빙하기에는 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이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과 물고기들이 풍부해 고대인들이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도 바이칼호에서만 사는 동물의 종이 무려 1200종이나 되는데,
이들은 세계 어느 지역의 생물과도 다르고 유전적으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 생물은 바이칼호에서 진화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2001년 11월 MBC 방송국에서 방영한 ‘시베리아, 시베리아’를 보면 소련 이르쿠츠크대의 올가 이바노브나 박사와 캐나다의 안제이 베베르 박사 등 발굴팀에 의해 바이칼호 주변의 고고학적 발굴이 5차에 걸쳐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업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이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 어떻게 그런 복잡한 문화가 발달했는지는 수수께끼이며, 그 문화는 세계 어느 곳의 문화와도 다르다는 말도 하고 있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격리된 지역에서 장기간 살면서 진화해야만 그 지역에 적응된 형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하여 적응된 것으로 해석되는데, 낮은 코, 두꺼운 눈꺼풀, 가는 실눈 등이 그렇다.
필자는 북부 아시아인의 조상이 간빙기(빙하기 사이의 따뜻한 시기)에 이곳으로 이동했다가 오래 머물면서 추위에 이기는 특성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지막 빙하기에 시베리아의 다른 지역이 모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는데 반해 이 (바이칼 호수) 부근에서는 북방 아시아인의 유전자 풀이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또 (당시 시베리아에서) 이곳만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랴트인들(지금 바이칼호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에스키모를 유럽인과 대비하면 서로 비슷함과 차이점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차이가 5만∼7만년 전 사이에 생긴 것이다. ‘신동아’ 2001년 11월호에 실린 동국대 윤명철 교수의 바이칼호 기행문을 보면 바이칼호의 미즈반도에는 불한바위라는 곳에, 무당들이 제사를 지내는 동굴이 있다고 한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물이 바로 아래에서 찰랑거리는 벼랑의 중간쯤에 굴이 있다. 샤먼스카쉐바라는 이 동굴은 폭이 2m가 조금 넘고, 높이가 2.5m로 불규칙한 형태의 입구와 내부를 가진 동굴이다. 흡사 고분 속 같은 내부에는 평평한 터가 없고 안쪽으로도 무너져 내린 흔적이 역력하다. 무너지기 전에는 양쪽으로 뚫려 있어서 한쪽의 좁은 구멍으로 햇빛이 비쳐들게 돼 있었다.” 즉 이 동굴은 인위적인 구조물이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90년 6월 미·소(러시아) 합동조사단은 초음파를 이용해 바이칼호를 광범위하게 탐사한 바 있는데, 그 결과는 꽤 흥미롭다. 가령 호저(湖底) 420m의 깊이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했는데, 과거 이 부근이 마른땅이었다면 사람들이 극히 선호하는 지역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이곳의 저지대가 (빙하 녹은) 물에 잠겼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현상은 세계 곳곳에 전해져 내려오는 대홍수 이야기와 연결할 수 있다. (주: 빙하 녹은 물이 엄청나게 흘러내린 현상.)
나는 북부아시아인의 선조들이 거대한 홍수를 만나 바이칼호를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빙하가 녹으면서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남쪽으로 생기는 새로운 통로들을 발견하고 먼저 이동했을 가능성도 크다.
결국 유전적으로 보아 우리 민족의 뿌리는 크게 두 갈래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중 70∼80%는 북방계이고 20∼30%는 남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타 일부 유럽인과 다른 그룹이 섞여 있다.
필자는 이러한 유전자 구도가 구한말 이제마 선생이 주창한 사상체질의학(四象體質醫學)의 유전적 근거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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