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간에 혹은 모녀간에 그리고 이웃과 함께 하던 다듬이질
예전 어릴 때의 기억에 아련한 소리가 있다.
‘따다다닥 따다다닥 투다다닥 투다다닥’
일정한 리듬에 따라서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소리는 심란했던 마음도 차분하게 만드는데 그 소리가 골목길을 돌아서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가고는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혹은 어머니와 딸이, 그리고 동서 간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쉴새없이 나무 방망이로 다듬잇돌을 번갈아 내리친다. 다듬이질은 우리 전통 풍습 중 하나이며 잊힌 소리 가운데 가장 듣고 싶은 소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듬이질은 옷이나 이불호청 등 옷감을 다듬는 전통방식의 하나로 옷이나 이불호청 등을 세탁한 후 풀을 먹여 약간 말려 손질한 다음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려 곱게 펴는 과정을 말한다. 옷을 빨면 그것이 세탁과 밀리는 과정에서 쭈글쭈글하다. 지금처럼 드럼세탁기로 곱게 말려 펴거나 혹은 세탁소에 맡겨 옷을 손질하지 못하던 지난날에는 이 다듬이질이 세탁에 필수적인 한 과정이기도 했다.
남산골 한옥마을 찾은 어린 자매가 할머니 앞에서 다듬이질을 하고 있다.
다듬이질을 할 때는 마풀을 먹여 두드리면 천이 견고해지고 매끄럽게 된다. 골고루 두드리기 위해서는 여러 번 접어가면서 윤이 나도록 다듬는다. 우리의 옷감들은 대개가 자연섬유였기 때문에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섬유 특유의 광택과 촉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듬잇돌은 옷감을 다듬을 때 밑에 받쳐놓는 돌로 결이 단단하고 매끄러운 돌로 만든다. 중앙부분이 약간 위로 올라와 완만한 곡선을 이룬 장방형으로 윗면은 반드럽게 손질되어 있다. 양쪽 밑으로는 손을 넣어 들 수 있도록 둥그런 홈이 파여 있다. 이 홈은 오랫동안 두드리면서 손에 오는 충격을 피할 수 있고, 소리를 울리게 하는 공명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니 돌 하나에도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다듬이 방망이는 박달나무같이 단단한 나무를 깎아서 쓴다.
다듬이소리는 가장 듣고 싶은 잊혀진 소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듬이질은 우리나라 생활풍습 상 매우 운치 있는 멋의 하나이다. 흔히 아낙네들은 품앗이로 넓은 대청에 모여 이불 호청을 마주 붙들고 잘 접어 다듬잇돌 위에 올린 후 발로 밟고 올라 다져서 천을 가지런히 해두고 방망이질을 한다. 혼자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마주보며 두드린다. 깊은 밤 다듬이질 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풍치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墨客)들의 시에도 등장했다. 당시(唐詩)에도 ‘바람결에 곳곳에서 다듬이소리’라 했으니 다듬이질은 예로부터 중국에서도 성했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진홍다듬기는 대왐풀에 아교를 섞어 먹이고, 무명과 모시는 풀을 매우 세게 말아야 하고, 옥색은 대왐풀로 다듬되 아무 풀도 먹이지 말고, 야청(野靑)은 아교풀을 먹인다.’고 하여 다듬이질의 세세한 면을 언급하고 있다.
어린 날의 기억 중에서 어머니가 그리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듬이질이다. 마루에 마을 아낙들과 함께 다듬이질을 하는 모습과 그 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하다. 그러나 역시 다듬이소리는 밤에 듣는 것이 더욱 운치가 있다. 다듬이질을 밤에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낮에는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지난날에는 밤이라야 시간을 내어서 집안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 밤에 방안에서 하는 다듬이질을 많이 보고는 했다. 가끔 영상으로 문창에 비치는 다듬이질을 하는 모습을 본다. 그럴 때면 더욱 어머니의 소리가 그립다. 이제는 사라지고만 우리의 소리. 다듬이질을 들을 수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참고/다음 朴聖美글
출처 : | 누리의 취재노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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