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

문화. 역사마을로 지정된 의령 입산마을 탐방기

영지니 2007. 3. 3. 17:52

 

 

 

문화. 역사마을로 지정된 의령 입산마을 탐방기

  문화. 역사마을로 지정된 의령 입산마을 입구

 

- 현장 탐방기-

 

나는 일붕 서경보스님이 불사를 일으킨 일붕사를 방문하여 큰 감명을 받았다.그런데 이와같은 감격을 의령의 또 다른 곳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일붕사에서 나와 홍의장군으로 통하는 곽재우장군 생가지를 들려 나오니, 멀지 않은 곳에 독립운동가이신 백상 안희제선생 고택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안내원도 없이 물어물어 안희제선생의 고택을 찾아가 둘러보고 나오는데 문득 내가 평소 늘 존경해 온 고 안호상박사님의 고향이 바로 의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바로 이 동네가 안호상 박사님의 고향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호상박사님은 평생을 통하여 우리 민족 뿌리 찾기운동을 벌려오신 분이다. 나는 젊은 날에 삼선교에 있는 안박사님의 자택을 방문한 일이 있다. 안박사님의 집에는 거실이며 방이며 벽을따라 삥삥둘러 방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책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그 속에 파뭍혀 사셨다. 안박사님은 언제나 나를 보면 이름을 불러주시고 반갑게 대해 주셨다. 80세가 훨씬 넘었을 때에도 그토록 기억력이 좋으셨다. 난 지금도 "젊은 사람이 우리역사에 대하여 그토록 관심을 가져주니 자랑스럽다."고 하시며 직접 집필하신 <한웅과 단군과 화랑>이라는 책에 사인을 하여 건네주시던 그 다정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그분의 고향에 와서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만남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가!

 

내가 무척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동네 아주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앞장을 서며 "제가 안내를 할테니 따라 오세요."라고 말했다. 난 안호상 박사님의 집 앞에 이르러 또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박사님 뿐만아니라 독립운동가 안기종선생, 안창제 선생, 안호제 선생, 제헌국회의원 안준상의원, 등의 집이 나란히 붙어있고 집집마다 앞에 대리석에 글씨를 새긴 안내 표지석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한민국에 이런 동네가 있다니......'하고 감탄을 하고 있는데 나 보다 좀 연상으로 보이는 점잖은 분이 닥아와 인사를 청했다. 그 분은 '문화. 역사마을 꾸미기 추진위원인 안찬달 선생이었다. 난 그 분을 통하여 이 부락이 전국의 10대 문화. 역사마을로 지정된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분과 함께 한집 한집 차례로 방문하여 설명을 듣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동구밖 느티나무 밑에 있는 설산정과 신선같은 노인들 모습


문화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역사마을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선정된 의령 입산마을은 문화와

환경이 잘 조화된 전통마을로 평가돼 작년 10월 지원마을로 선정됐다.

동네 입구에는 길 양쪽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서 있다. 오른쪽엔 설산정(雪山亭)이라는 정자가 서있고
그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마치 신선처럼 느껴졌다. 왼쪽 나무 밑의 커다란 평상에는 동네 할머니 10여 명이 둘러 앉아 더위를 식히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 500여m 더 달리다 좌회전을 하여 논 가운데 길로 들어가니 백상 안희제선생의 고택이 나오고 그 앞에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백상 안희제선생 생가]

 

백산 안희제(白山 安熙濟)선생 생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

 

이곳은 백산 안희제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그분은 1885년 이곳 입산리, 속칭 설뫼마을에서 발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산선생은 일제 압제기에 근대화 운동에 앞장섰던 선구자이며, 조국의 광복운동에 앞장섰던 실업가이며, 조국의 광복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이다.

 

기와집 안채와 초가집 사랑채

 

근대적인 교육을 받은 선생은 근대학교 설립운동에 착수하여 부산과 의령등지에서 여러 학교를 세우는 한편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이 후 백산상회를 경영하여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3.1운동에도 헌신적으로 참여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기미 육영회를 조직하여 청년교육을 앞장서 지원하였으며, 중외일보를 인수하여 민족언론 활동에도 선구자적 역할을 다하였다.

 

 

 

 돌담과 돌로쌓은 우물

 

1930년대에는 대종교에 입교한 후 만주로 건너가 발해농장과 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에 전념하다가 일제에 의해 검거 투옥되었다. 선생은 일제의 혹독한 옥고에서 9개월만에 풀려났지만 이미 건강을 해친 상태였고 계속 감시를 받는 생활을 하시다가  마침내 1943년에 향년 59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감하였다.

 

솟을대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에 있는 정원

 

백산선생의 이곳 생가는 단순한 배치의 일반농가형 가옥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부속사로 이루어져 있다. 동향으로 마루, 방, 대청, 부엌을 배치하고, 다시 남향으로 1칸 마루를 배치하여 사랑방 구실을하게 만든 것이 특이하다. 이같이 다양한 기능을 겹집 형식을 통해 한 건물로 처리한 것은조선 말기 주택의 특징이다. 초가로 된 사랑채는 안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유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를 끼고 왼쪽에 있는 담과 화단

 

초가집 사랑채

 

기와집 안채

 

안채 가운데 있는 현판 <백산고가>

 

안채 앞면의 아름다운 문창살 모습

 

안채 왼쪽에 걸린 현판 <백산구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 커다란 벌집이 시선을 끈다.

 

바람막이를 잘 해 놓은 장독대

 

 

           

       

         

 

[한뫼 안호상박사 생가]

 

 

  앞에 세워놓은 대한민국 초대문교부장관 한뫼 안호상박사 생가표지판.

 안호상박사는 돌아가신 후 사회장을 치루었고, 묘소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 대문이라고 하기에는 문이 좀 좁다는 생각이 든다.

 

안호상박사 생가 안마당에는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다.

 

안채 문 앞에 붙여 놓은 안호상박사 생가 표지판

 

안채 오른쪽에 있는 곡간, 광.   이 건물은 담을끼고 밖에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고 밖에 있는 방은 사랑방으로 사용한듯 하였다.

 

 

[지헌공 안기종선생 고택]

 

 

 지헌공 안기종(止軒公  安起宗) 고택 표지석

 

솟을 대문

 

지헌공 안기종(止軒公 安起宗)선생은 탐진안씨 헌납공파(耽津安氏 獻納公派) 입항조이다. 곽재우 장군과 함께 충익사(忠翼祠)에 모셔져 있는 17장령 중의 한 분이다. 곽재우장군의 의병활동을 돕기위해쌀 100석을 내 놓은 일이 있고, 후에 이조참의로 증직되었다.

 

안채

 

지금 이 집에는 입항조 안기종선생의 15세손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울산현대중공업의 부장직에 있는 안호종(安鎬宗)씨가 살고 있다.

 

사랑채

 

 

[사업가 안범준씨가 살고 있는 집]

 

이 집은 원래 종가집으로 같이 쓰던 집인데 현재는 종가집 종손인 안호종(安鎬宗)씨의 사촌, 안범준씨가 살고 있다.

 

이 집은 동네에서 가장 큰 집으로 건평이     평이나 된다. 카메라에 다 들어 오지 않아 대문이 있는 앞 왼쪽 측면에서 찍었다.

 

이 사진은 정문 오른쪽 담벽을끼고 골목길로 들어가 집 뒤쪽에서 앞쪽을 바라보고 촬영한 것이다.

 

 

 

[제헌국회의원 근산 안준상의원 고택]

 

제헌국회의원 근산(槿山) 안준상의원은 안호상박사의 사촌형이다. 이 집은 담이 없어 밖에서 안채를 집접 볼 수 있다.

 

이 마을엔 현재 45호가 살고 있는데 그 중 41호가 탐진안씨이고 4집만 타성이 살고 있는 탐진안씨집성촌이다. 현재 이집에는 안씨가 아닌 타성씨가 살고 있다고 한다.

 

 

 

 

[독립유공자 송은 안창제선생 고택]

 

독립유공자 송은정 안창제선생 고택 표지석

송은정 안창제선생은 입항조 안기종선생의 10새손이며, 수파정 아효제(守波亭 安孝濟)의 4째 동생으로 한일 합방 후 만주에가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보산사건 때 전사하였다.

안채

 

안채 문 앞에 붙어있는 송은정 현판

 

 

 

 

[독립유공자 수파정 안효제선생 고택]

 

독립유공자 수파정 안효제선생 고택 표지석

 

 

수파정 안효제선생은 입항조 안기종선생의 10세손이며, 송은정 안창제(松隱亭 安昌濟)선생의 큰형으로 한일 합방 후 만주에가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그곳에서 전사하였다.

 

 

 

 

이 마을은 작년에 문화관광부가 추진해 온 문화. 역사마을 가꾸기에 신청을 하여, 작년 10월 경상남

도 에서 신청한 4군데 중 유일하게 지정을 받았다.

 

앞으로 이 마을은 정부와 경상남도에서 26억을 지원할 예정이어서 지역주민들은 큰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지원금은  1. 안호상 박사 생가. 2. 안준상제헌국회의원 고택. 3, 종가인 지헌공 안기종선생

고택. 4. 현재 안범준씨가 살고 있는 집 등을 집중적으로 정비하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찾아가는길]

 

의령에서 19.1km지점에 위치하고 있음. 곽재우장군생가지에서 2km정도더 가면 됨.

 

함양쪽을 향해 달리다 왼쪽으로 세간교가 나오면 좌회전하여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진입하면 됨.